'딱봐도 가짜' 장애인스티커에…"처벌 못 한다"는 경찰의 판단
지난해 11월 서울의 한 백화점을 찾은 A씨는 장애인주차구역에 주차된 차량의 장애인주차표지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언뜻 보기엔 장애인 마크와 ‘장애인주차구역 주차표지’ 표기가 있어 지방자치단체에서 발급한 정식 표지인 듯 보였지만, 차량 번호는 펜으로 쓰여 있었고 발급일자는 물론 기관장 직인도 없었다. A씨는 국민신문고를 통해 해당 차량을 신고했다. 양천구청은 해당 차량 소유주가 장애인주차표지를 부당 사용했다고 판단해 과태료를 부과했다고 같은 달 15일 A씨에 통보했다.
같은 사건에 대한 경찰 판단은 달랐다. 서울 양천경찰서는 지난 10일 해당 차량 소유주의 공문서위조·위조공문서행사 혐의에 대해 입건 전 사건 종결 결정을 내렸다. 과태료 행정처분은 가능해도 형사처벌은 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경찰은 “해당 차량 내부에 발급기관 정보가 없는 ‘장애인 전용주차구역 주차표지’가 비치되어 있는 사실은 인정된다”면서도 해당 차량 소유자에 대해 혐의가 없다고 판단했다. “실물처럼 ‘발급일자’ ‘유효기간’ ‘발급기관장’란이 작성돼 있지 않고 날인도 없어 해당 주차표지가 공문서로서 형식과 외관을 갖춘 문서라고 보기 어렵다”고 본 것이다.
경찰의 이런 판단은 대법원 판례에 근거했다. 대법원은 2020년 12월 공문서위조죄에 대해 “공무원 또는 공무소의 권한 내에서 작성된 문서라고 믿을 수 있는 형식과 외관을 구비한 문서를 작성하면 공문서위조죄가 성립하지만, 평균 수준의 사리분별력을 갖는 사람이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 살펴보면 쉽게 알아챌 수 있을 정도의 공문서로서 형식과 외관을 갖추지 못한 경우에는 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바 있다.
B씨 또한 지난해 6월 장애인주차표지 위·변조로 의심되는 차량을 신고했다가, 관할인 경북 봉화경찰서로부터 해당 차량 소유자의 공문서위조 등 혐의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연락을 받았다. B씨는 수사결과를 납득할 수 없어 같은 해 9월 수사심의신청서를 낸 상태다. B씨는 “지자체에서는 위법이라고 보고 과태료 처분을 내렸는데, 경찰에서는 처벌 대상이 아니라고 하니 허탈하다”며 “해당 주차표지는 육안으로 봤을 때 명백한 공문서로 보이고, 이를 위조한 것인데 경찰이 불법을 묵인하는 것이냐”고 질타했다.
현행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장애인등편의법)에 따르면 장애인주차표지를 위조 또는 도용하거나, 타인에게 양도하는 등 부당한 방법으로 사용하면 과태료 200만원이 부과된다. 이 중 주차표지를 위조하고 이를 사용했을 경우 공문서위조 및 위조공문서행사 혐의로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
실제 처벌 사례도 다수다. 지난달 서울남부지법 형사9단독 김윤희 판사는 공문서위조 및 위조공문서 행사 혐의로 기소된 40대 남성 김모씨에게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김씨는 지난해 4월 장애인주차표지 이미지를 온라인에서 내려받아 인쇄한 뒤 차량번호와 발급기관장을 적어 사용한 혐의를 받았다.
정경일 변호사는 “공문서위조에 대한 대법원 판례는 경찰도 법원도 아닌 일반인이 봤을 때 위조로 볼 수 있는지 여부를 판단 근거로 삼은 것”이라며 “경찰이 관련 판례를 과도하게 행정 편의적으로 적용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런 판단이 계속되면 단순히 개인이 부당한 이득을 챙기려는 것 뿐 아니라 공문서, 나아가 공권력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훼손시킬 수 있기 때문에 심각한 문제로 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경찰 관계자는 “형법상 ‘위조’는 ‘명의를 도용한 경우’를 뜻하는데 해당 사안은 공무소 등 명의 자체를 사용하지 않아 판례상 공문서위조 혐의가 성립될 수 없고, 장애인복지법 등에 따라 과태료 부과 대상”이라며 “법률 검토와 처리 규정을 근거로 사건을 적절하게 처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보람 기자 lee.boram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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