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시 홍보맨? 우리도 있다”…지자체·공공기관 유튜브 성공하려면
기존 문법 따르지 않는 게 성공 요인
공무원인데 눈두덩이를 검게 칠하고 검은 양말을 머리에 뒤집어썼다. 인기 판다 푸바오 분장을 하고 생옥수수를 쩝쩝거리며 뜯어먹는다. “옥수수 맛있어요~?” “맛없어.” 동시에 자막이 뜬다. ‘익히면 맛있습니다. 충주대학찰옥수수.’
충북 충주시 공식 유튜브 채널(충TV)에 5개월 전 올라온 이 영상은 조회수가 90만회를 넘었다. “킹받네(화가 난다는 뜻)” “악마랑 계약해서 인간성을 버리고 예능감을 얻었다는 게 학계의 정설” “충주는 어떤 곳인가” 같은 열광적인 댓글이 달렸다. 푸바오 분장을 한 인물은 충주시 유튜브 채널 운영을 맡은 김선태(37) 주무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유행하는 콘텐츠와 밈(meme)을 활용해 충주시를 알려 연예인 수준의 유명세를 얻었다. 덕분에 2019년 개설한 충주시 유튜브 채널 구독자는 시 인구(20만7700명)의 세 배에 가까운 56만7000명이다. 전국 지자체 유튜브 채널 중 1위다.
이런 성공은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언급하기까지 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9일 국무회의에서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국민들께서 잘 몰라서 그 혜택을 받지 못하면 그 정책은 없는 것과 다름이 없다”며 “충주시 홍보를 맡은 젊은 주무관이 유튜브로 참신하고 재밌게 정책 홍보를 한다. “이런 혁신이 필요하다”고 했다.
◇상사 결재 없이 일단 만들고 보는 ‘B급 감성’
김 주무관은 대통령이 언급할 정도로 성공한 비결에 대해 지난 11일 라디오 방송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남들과 달랐다는 것”이라고 꼽았다. 예산이 적어도 재미있고 새로운 방식, 남들과 다른 콘셉트로 시민들에게 전달하려 했다는 설명이다. 또 그는 “홍보는 알리고 싶은 게 아니라 사람들이 보고 싶어하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며 “시민, 국민 눈높이에 맞는 홍보를 해야 인정받을 수 있다”고 했다.
이런 대표적인 영상이 지난해 11월 게시된 ‘홍보맨 슬릭백’ 영상이다. 김 주무관이 당시 유행했던 슬릭백 춤을 추다가 맨홀에 빠지며 “상수도 공사 안내, 시민 여러분의 양해를 구합니다”라는 자막이 뜨는 영상이다. 게시 두 달 동안 329만회 조회됐다. 뉴진스의 곡 ‘ETA’에 맞춰 충주시민사진관을 홍보하는 영상, 가나의 장례식장 관짝춤을 패러디해 코로나 거리두기를 독려하는 영상은 각각 조회수 230만회, 940만회를 기록했다.
충주시 유튜브는 연간 61만원의 예산으로 김 주무관이 기획, 출연, 촬영, 편집을 담당한다. 저예산 지자체 유튜브 채널이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에 대해 김 주무관은 TV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해 ‘결재 패싱’을 꼽았다. 그는 “결재를 받으려고 하면 (홍보가) 산으로 가더라. 무결재로 몰래 올렸다가 뚝배기가 깨지기도 했다”며 “그래서 정리했다. 결재는 없다. 소재와 내용에 대한 터치도 없다”고 말했다. 눈치보지 않고 자유롭게 영상을 제작한 결과 지자체에서 이례적으로 높은 유튜브 조회수를 기록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충주시 홍보맨 흉내는 NO…”기존에 없던 걸 해야”
충주시가 유튜브로 정책 홍보에 성공하자 다른 지자체와 공공기관이 앞다퉈 유튜브에 뛰어들고 있다. 기존에는 정책이나 행사를 그대로 자막으로 옮겨 설명하는 정도였다면, 요즘은 틀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B급 감성으로 시청자들에게 다가간다. 핵심은 기존의 문법을 따르지 않는 것. 보수적이고 딱딱한 공무원 이미지를 벗어 던지고 시정 홍보를 더하자 시민들이 쌍방향 소통하며 반응하기 시작한 것이다.
서울시는 지난해 ‘충주시 홍보맨 흉내 노(NO)’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직원 가운데 서울시를 알릴 유튜버를 뽑았다. 1대 서튜버(서울시 유튜버)로 선발된 정규현 주무관은 “남자친구가 생기면 서튜버 임기가 끝난다”는 콘셉트로 서울시 정책을 홍보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오세훈 서울시장의 교통 정책인 ‘기후동행카드’를 홍보하는 영상을 올렸다. 교통정책과 박준희 주임이 출연해 월 6만5000원에 시내버스와 지하철, 공공자전거 따릉이를 무제한 탑승할 수 있고, 모바일 앱으로도 이용할 수 있다고 홍보했다.
서울 강서구는 지난해 3월 전국 지자체 최초로 버튜버(버추얼 유튜버) ‘새로미’를 선보였다. 버튜버는 신상 노출 없이 유튜브 영상을 올리는 가상의 캐릭터로, 가수 김장훈(61)이 활동하는 2006년생 만 18세 고교생 콘셉트인 버튜버 캐릭터 ‘숲튽훈’이 대표적이다. 강서구 버튜버 새로미가 등장하면서 “갈수록 치열해지는 유튜브 채널 경쟁. 지자체도 예외는 아니다” “이 방송은 강서구와 관련된 아무말 대잔치입니다”라고 솔직하게 발언하는 영상은 조회수 15만회를 넘겼다.
전북 익산시는 버튜버 ‘서동’을 선보였다. 훗날 백제 무왕이 되는 서동요 주인공 ‘서동’이 지역 역사, 유적, 관광지, 맛집, 행사 등을 홍보하는 콘셉트다. 최근에 올린 영상을 제외하면 평균 조회수가 1만회에 달한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는 최근 서울 지하철 1호선 열차를 운전하던 기관사 강하영(28) 주임에게 유튜버 활동을 맡겼다. 강 주임은 ‘미스기관사’로 활동하면서 TV조선 ‘미스트롯3′에도 출연했다. 강 주임은 ‘충주시 홍보맨’ 김선태 주무관과 함께 판교~충주 구간에 KTX-이음이 운행을 시작한다고 홍보하는 영상도 만들었다.
국가정보원도 유튜브로 눈을 돌렸다. 국정원은 지난 8일 나이지리아에 체류하던 국민 2명이 무장단체에 억류됐다가 풀려난 것을 계기로 해외 여행을 떠난 우리 국민을 대상으로 테러 피해를 입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영상을 제작했다. 영상은 ‘슈카월드’ ‘빠니보틀’ ‘곽튜브’ 등과 함께 만들었고, 해외 여행 중 테러가 나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알기 쉽게 전달했다.
전문가들은 기존의 문법을 따르지 않는 게 지자체 홍보의 성공 조건이라고 말한다. 황장선 중앙대 광고홍보학과 교수는 “기존에 공직자나 행정기관은 딱딱하고 드라이하게 홍보하는 느낌이 있었는데 (충주시는) 그러지 않았다”며 “단순히 B급이라서 성공한 건 아니고 기존에 없던 것을 했기 때문에 주목받은 것”이라고 했다.
황 교수는 “다른 지자체들이 (충주시의 사례를 보고) 똑같이 따라가면 식상할 수 있기 때문에 계속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한다”며 “한 두 개 플랫폼에 집중해서 해당 지자체, 기관의 특성에 맞춰 콘텐츠를 제작하면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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