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 뒷담화의 진화

2023. 11. 9. 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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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담화는 4만여년 동안 인류
생존과 번영을 위한 수단으로
인간에게 체화…인터넷 기반
사회에서도 경쟁 시대를 맞아
뒷담화 욕구는 이전보다 커져

사회 구성원들이 각자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아군과 적군을
구분하고 세력을 확장하려고
뒷담화의 기능을 확대해 활용

SNS 등장으로 진위 확인도
않은 뒷담화 파급력이 커지며
부작용도 심해진 만큼 뒷담화
공유 때는 신중한 자세 가져야

음식을 나눌 때도, 술잔을 기울일 때도 누군가의 뒷담화로 수다를 떨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다. 오죽하면 가장 맛있는 안주는 뒷담화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일까. 자연과 마주하며 건강을 지키기 위해 산을 오르면서도 삼삼오오 짝을 지어 누군가의 뒷담화를 즐기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도대체 왜 우리는 뒷담화에 중독된 것일까.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지구에 등장한 이후 지난 400만년의 인류 역사 중 농경사회로 진입하던 시기인 1만년 전까지 99.99퍼센트는 잔인한 원시시대였다. 먹잇감을 얻기 위해 소규모로 집단을 형성해 끊임없이 이동하면서 타 집단과 경쟁하고, 때로는 집단 내에서도 먹잇감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 죽이기를 서슴지 않던 시간이었다.

20만년 전에 지구상에 등장한 호모 사피엔스는 4만년 전에서 7만년 전 사이 유전자 돌연변이에 의해 인지혁명을 경험한다. 이 과정에서 인간은 제한된 소리와 기호, 몸짓을 통해 문장을 구성해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된다. 그 이전에도 언어는 존재했지만 먹잇감의 존재나 위험한 상황을 서로에게 알리는 단순한 의사소통 기능밖에는 하지 못했다.

하지만 인지혁명을 통해 언어는 단순히 존재하는 사실을 현장에서 공유하는 도구가 아닌 소문을 만들고 수다를 떠는 도구로 기능하면서 언어를 매개로 하는 협력관계는 생존과 번식을 위한 핵심적인 도구로 자리매김한다. 즉 생존을 위한 처절한 경쟁 속에서 제거해야 할 대상과 협력해야 할 대상을 집단 구성원 간에 전해지는 소문으로 구분했으며, 때로는 뒷담화를 통해 제거해야 할 대상을 집단 내에서 고립시키는 노력도 필요했다.

직접적인 뒷담화로 응집력을 유지할 수 있는 집단의 규모는, 인간이 안정적으로 상호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상대의 수로 진화심리학자 로빈 던바 교수가 제시한 150명 내외다. 하지만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 허구를 만들어 일면식도 없는 상대와도 공유하면서 신뢰 관계를 구축하고, 그 과정에서 집단 규모를 키우고 응집력을 강화했다. 부족과 고대 국가의 기반이 됐던 신화와 사회제도 등이 이런 허구에 해당한다. 허구는 거짓이 아닌 다수가 믿는 가상의 실재, 즉 집단적인 상상을 의미한다.

뒷담화는 최소한 지난 4만여년 동안 인류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중요한 수단으로 인간에게 체화됐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정보의 진위를 확인할 수 있는 다양한 경로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뒷담화에 귀 기울이고 뒷담화에 기대어 의사결정을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는 아직도 DNA에 담겨 있는 습관을 통해 무의식 중에 수렵 채집 사회를 살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수렵 채집 사회보다 경쟁이 더 치열한 시대를 살아가면서 뒷담화에 대한 욕구가 이전보다 더 커지는지도 모르겠다. 인지혁명 이후 농업혁명과 과학혁명을 통해 인류는 역사상 그 어느 시기보다 풍요롭고 평화로운 시대를 살고 있지만, 사회 양극화가 심화되고 집단적인 상상과 개인적인 상상의 간극이 발생하면서 소외감과 박탈감을 느끼는 인구가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뒷담화를 공유하면서 서로를 위로하고 세력을 결집해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고자 처절한 노력을 하고 있다. 또한 인터넷의 등장으로 사회 구성원들의 다양한 욕구가 분출되면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기존의 전선이 허물어진 시대를 살아가는 사회 구성원들이 각자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이합집산하는 과정에서 아군과 적군을 구분하고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 뒷담화의 기능을 확대해 활용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문제는 인터넷 기반의 SNS가 등장하면서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뒷담화의 확산 속도가 빨라지고 파급력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직접적인 대면 소통을 통해 뒷담화가 확산되는 과정에서 뒷담화를 듣고 전하는 이들의 의견이 더해지기도 하고 전해 듣는 이들의 의견에 반하는 뒷담화는 더 이상 전해지지 못하고 소멸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내용의 진위를 확인할 겨를도 없이 뒷담화는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사실로 받아들여지면서 뒷담화의 대상은 사회에서 매장되기도 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뒷담화는 극한의 경쟁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한 수단으로 그 쓰임새가 점차 확대되겠지만, 특히 SNS를 통해 뒷담화를 공유할 때는 좀 더 신중한 자세를 가졌으면 한다.

박희준(연세대 교수·산업공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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