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K 르포] “'빨갱이' 홍수 단톡방에 진저리···이젠 文핑계 멈출때"
정쟁난무·민생실종에 TK민심도 싸늘
"고물가 난리통인데 이념전쟁에 바빠"
정체된 대구경제에 젊은층 "제3당 뽑을 것"
"대구서 보수는 본능···尹, 200% 지지할때"
"용산 참모, 험지가야. 대구 물갈이도 그만"
尹 창당설엔 "그게 되겠나" 보수분열 우려
“대구에서도 ‘대통령 좋다’ 쏘리 안합니더. 먹고살기 바쁜데 경제·사회보다 이재맹이 수사를 우선하는 게 ‘다 싫다’ 이거지요. 휴대폰 (단체 대화방)을 보면요, 대단해요. ‘빨갱이’ 이카는 걸 얼마나 많이 보내는지요···난 다 치워뿝니다”
이달 19일 동대구역에서 만난 70대 택시기사 강모씨의 말은 차갑게 식고 있는 대구·경북(TK)의 민심의 현주소를 보여줬다.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대통령에게 절대적 지지(75.1%)를 보낸 TK주민들이지만 ‘정쟁 난무·민생 뒷전’ 정치에 이들의 민심도 출렁거리고 있었다.
바닥민심을 듣기 위해 찾은 서문시장 시민들의 평가도 꽤나 인색했다. 서문시장은 윤 대통령,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 등이 연거푸 찾으며 지지기반을 다진 곳이라 ‘보수의 성지’로 불리기도 한다. 상인과 시민들은 정치 현안에 대해 말하기를 꺼리면서도 대화에 응한 이들은 20분 넘게 정치 현안에 대한 견해를 쏟아냈다.
싸늘한 민심은 팍팍해진 살림살이와 연관이 깊었다. 서문시장에서 18년째 곡물가게를 운영 중인 상인 이모씨는 “고물가에 사람들이 다 까칠해져 있는데 나아진 게 없다”며 “경제고, 통합이고 대통령이 말한 대로 된 게 뭐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장을 보러 온 30대 이씨 부부는 “전쟁에 물가 뛰고 난리가 났는데 (당정은) 이념전쟁 하느라 바쁘다”며 “경제를 살리겠다고 해서 뽑아 놨는데 정작 받은 일자리·주택 혜택은 하나도 없다”고 미진한 공약 이행을 질책했다.
서민들의 허리가 휘는 사이 민생과 동떨어진 이념논쟁에 한창이었던 정치권에 대해 ‘한심하다’는 질타도 잇따랐다. 올 여름 광주광역시의 정율성 공원 조성, 육군사관학교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계획을 두고 여야가 핏대를 세운 가운데 윤 대통령까지 국정의 최대 지향점으로 ‘이념’을 지목하면서 논란이 일파만파 커졌다.
강씨는 ‘빨갱이 척결’ ‘좌파는 배신자들의 집단’ 등이 올라온 본인의 모바일 단체대화방을 보여주며 “이 정부가 들어서고 나서 ‘빨갱이 논쟁’이 팍 심해졌다”며 정을 나눠야 할 향우회가 이념의 전장터가 되버렸다고 푸념했다. 경북대 4학년 최모씨도 “역사 인물은 해석의 여지가 많기 마련”이라며 “민주주의 근간인 다원성을 무시하고 힘 있는 정부가 한 쪽의 해석을 정설로 몰고가는 게 맞냐”고 나무랐다.
국민이 아닌 용산의 심부름 꾼으로 비춰지는 여당에 대한 실망의 목소리도 터져 나왔다. 특히 수십년간 대구가 ‘보수의 심장’ 역할을 해줬지만 정체된 대구 경제 상황을 풀 복안 하나 마련하지 못한 여당에 대한 심판심리도 엿보였다. 과거 대구는 ‘섬유 도시’로 각광을 받았지만 이후 신산업 체제로 탈피하지 못하면서 ‘1인당 지역내총생산(GRPD) 꼴지’란 꼬리표를 달고 있다. 실제 서대구일반산업단지에는 저층의 영세 공장과 정비소가 주를 이뤘고 폐업 업체도 드문드문 보여 활력과는 거리가 있어 보였다.
상인 이씨는 “부산처럼 관광지라도 만들어 돈을 쓸 수 있게 만드는 게 정치인들의 역할 아니냐. 송해공원, 서문시장에 와서 관광객들이 뭘 하겠냐”고 꼬집었다. 젊은 세대에선 야권을 지지하겠다는 의견도 나왔다. 경북에서 나고 자랐다는 경북대 경제통상학과 4학년 이모씨는 “대구에 일자리가 없어 사기업 취업을 준비하는 친구들은 다 서울로 간다”며 “젊은이들의 불만을 표출하고 싶어 차기 총선에서 제3당을 선택할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대구 시민들에게 보수는 본능과 같다”며 정부의 성공을 아낌없이 지원할 때란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서문시장에서 한복가게를 운영 중인 이모씨는 “이·팔 전쟁을 보며 참 무서웠다”며 “윤 대통령이 (미국·일본 공조체제를 확립하는 등) 문재인 전 대통령이 허름하게 풀어놓은 걸 다독거려 이제 국민 한 사람이라도 덜 죽게 됐다. 정부를 200% 지지를 해 기운나게 해줄 때”라고 후한 평가를 내렸다.
애정 어린 충고를 여권에 전해달라는 시민도 있었다. 대구 달성군에서 섬유 업체를 운영하는 조모씨는 “여당이 쪽수로 못 싸우니 지금도 ‘문재인 정부’ 핑계를 댄다. 비전으로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 걸 해야할 때”라며, 대통령실 참모진들의 TK출마설을 두고는 “대통령실 명함 하나로 승부를 볼 자신이 없으니 쉬운 길을 찾는다. 험지로 가라”고 꾸짖었다. ‘대구 물갈이설’에 대해선 “매 총선마다 현역 절반을 교체하니 대구가 초선 밭이 됐다”며 “서울에서 다선 의원을 만들 수가 없으니 대구에서 전략적으로 큰 정치인을 키워야 한다”고 주문했다.
여의도 일각에선 ‘김기현 2기 지도부’가 연말까지 자리를 못 잡으면 윤 대통령 신당, 이준석 전 대표의 신당 등이 나올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내놓는다. 대구 시민들은 여권 정계 개편 시나리오에 대해 대체로 냉소적 반응이었다.
60대 박모씨는 윤 대통령의 창당설에 대해 “그게 되겠냐”며 “정치 경험이 짧은 윤 대통령이 영입하는 인물이 대체로 검사일 텐데, 야당이 물고 뜯었던 ‘검찰 공화국’ 대로 가는 셈”이라고 회의적 반응을 보였다. 여권의 분열상에 대한 우려, 제3당의 성공 사례가 없었다는 점도 이들이 고개를 갸우뚱한 이유다. 이씨 부부도 “(제3지대를 지향했던) 안철수 의원한테도 많은 기대를 했는데 정말 많은 실망을 했다”며 “이 전 대표가 신당을 만들어도 결국 선거 뒤엔 국민의힘에 흡수되는 등 지금과 상황이 별반 다르지 않을 거라고 본다”고 잘라 말했다.
이승배 기자 bae@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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