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도 못 쒀요" 안 통한다…도토리 무단 채취족 공중서 잡는다

장서윤 2023. 10. 2.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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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오후 연세대 내 숲인 청송대에서 무단으로 도토리를 채취하던 A(75)씨가 배낭에 가득 담긴 도토리를 보여주고 있다. 장서윤 기자


“추석이라 나왔지. 단속 안 하잖아. 학교 문 열면 줍지도 못해.”
2일 오후 연세대 캠퍼스에서 만난 A씨(75·여)가 배낭에 가득 찬 도토리를 보여주며 말했다. 배낭이 도토리로 가득 차 한손으로 들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도토리를 무단 채취하면 벌금을 낼 수도 있는 것 아니냐’고 묻자 A씨는 “조금밖에 안 돼서 묵도 못 쑨다. 이거 갖고는 어림도 없다”라며 외려 불평을 했다.

추석 연휴 막바지 기온이 갑자기 떨어지면서 산림을 낀 국립공원과 대학 캠퍼스에서 도토리·버섯 등 임산물을 무단 채취하는 이들이 크게 늘고 있다. 실제 임시 공휴일인 2일 오후 찾은 연세대 캠퍼스 안에서는 도토리를 줍는 이들을 5분에 한 명꼴로 발견할 수 있었다. 캠퍼스 내 숲인 청송대 곳곳에는 다람쥐 그림과 함께 ‘도토리는 저의 소중한 식량입니다. 가져가지 말아 주세요’라고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었지만, 도토리 채취족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취재진이 다가가자 “알겠어요. 안 할게요”라며 황급히 자리를 피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지만, 아랑곳 않고 임산물을 계속 줍는 이들도 있었다. 나뭇가지를 들고 도토리 나무를 툭툭 친 뒤 도토리를 줍던 채모(60)씨는 “손주들도 보여주고 장식품으로 쓰려고 길거리에 있는 것만 조금씩 모은 것”이라고 말했다. 바위에 앉아 주운 밤송이를 골라내던 임모(75)씨는 “도토리는 몰라도 밤은 주워도 되는 것 아니냐”며 “작은 밤은 다람쥐 먹으라고 놓고 가려고 한다”고 했다.

2일 오후 연세대 내 숲인 청송대에서 임모(75)씨가 인근 산에서 주운 밤을 꺼내보였다. 임씨는 ″작은 밤은 다람쥐 먹으라고 놓고 가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장서윤 기자
2일 오후 연세대 내 숲인 청송대에 '도토리는 저(다람쥐)의 소중한 식량입니다. 식량을 가져가지 말아주세요'라고 적힌 현수막이 걸려있다. 장서윤 기자


전국 임야와 국립공원을 관리하는 산림청·국립공원공단에도 비상이 걸렸다. 산림청은 지난달 15일부터 이달 31일까지 산림 내 불법행위 집중단속을 벌이고 있다. 송이·능이·싸리버섯·잣·도토리, 각종 약초 등 임산물의 불법 채취 행위가 단속 대상이다. 국·사유림 구분 없이 단속한다. 국립공원공단도 7일부터 본격적으로 단속 강화에 나설 예정이다. 산주의 동의 없이 임산물을 채취하는 경우 ‘산림자원의 조성 및 관리에 관한 법률’ 등에 따라 최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산림청 직원들이 산에서 무단으로 산나물을 채취한 이들을 단속하는 모습. 산림청 제공


산림청은 불법 채취 단속을 위해 자체 드론 감시단(5개 지방산림청 및 27개 국유림관리소)도 투입해 운영하고 있다. 산림청 보유 드론 339대 중 산불·산사태 등 재난 임무를 제외하고 100여대가 단속에 동원된다. 산림청은 드론 등 장비·인력 단속을 포함해 지난해 총 128건의 임산물 불법채취 현장을 단속했다. 산림청 관계자는 “통제되지 않은 사람들이 산에 들어가 무단으로 임산물을 채취하면 산림을 훼손하고 산불 등 재난 위험과 직결될 수 있는 데다, 국유림의 경우 임업 생산자 등 허가받고 채취하는 주민의 정당한 권리를 뺏는 행위”라며 “최대 역량을 동원해 임산물 불법채취 단속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장서윤 기자 jang.seo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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