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각되자 ‘영장은 영장일 뿐’ 태세 바꾼 한동훈
검찰이 조직 명운을 걸며 총력을 다했던 ‘이재명 ’구속에 실패했다. “윤석열 대통령 정적 제거 수단 아니냐”는 지적에도, 검찰은 지난 1년간 다른 사안은 제쳐놓고 인지수사(특별수사) 역량 대부분을 쏟아부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관련 의혹들에 올인해 왔다. ‘수사권을 남용한 무리한 표적 수사’였다는 비판에 힘이 실리게 됐다.
2023년 9월27일 새벽 유창훈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판사는 검찰이 청구한 이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입증은 커녕 소명조차 안 된 이재명 영장 사유
“피의자(이재명)의 관여가 있었다고 볼 만한 상당한 의심이 들기는 하나 이에 관한 직접 증거 자체는 부족(하다)”
먼저 10시간30분 가량 진행된 영장실질심사에서 검찰이 ‘사건 본류’라고 강조해 온 ‘백현동 개발 특혜 의혹’의 ‘소명’여부에 대한 유 판사의 판단이다. 검찰이 주장한 이 대표 혐의가 ‘입증’(증거로 증명)은 커녕 ‘소명’(검사 주장이 사실일 것으로 추측)조차 되지 않았다는 의미다.
‘야당 대표의 영향력’으로 관련자들을 회유해 향후 증거를 인멸한 염려가 크다는 검찰 쪽 주장에 대해서도 유 판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현재까지 확보된 인적, 물적 자료에 비추어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공적 감시와 비판의 대상인 점 등을 감안할 때,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 “피의자의 방어권 보장 필요성 정도와 증거인멸 염려의 정도 등을 종합하면, 피의자에 대하여 불구속수사의 원칙을 배제할 정도로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그간 ‘수사는 필요 최소한의 범위에 그쳐야 한다’는 형사소송법상 원칙 등을 근거로 야권 등에선 “‘구속=수사 성공’이라는 검찰의 낡은 인식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하지만 검찰은 “너희 편이라서 방어하는 것 아니냐”는 등의 논리를 내세워, 불구속수사 원칙 문제를 ‘정치적 이슈’로 몰아세워 왔다.
영장 기각은 정치권·국민 탓?
이 대표 영장 기각에 대해 검찰은 ‘남탓 전략’으로 대응하려는 모양새다. 이원석 검찰총장은 9월27일 출근길에 기자들에게 “사법은 정치적 문제로 변질돼서도 안 되고 정치적 문제로 변질될 수도 없고 변질되지도 않는다”고 지적하며 “국민들께서 차분하게 지켜봐 주시는 것이 가장 바람직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같은날 한동훈 법무장관도 “정치인이 범죄를 저지른다고 해서 사법이 정치가 되는 건 아니고 그래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이재명 영장기각 탄원서에 국민 90만명이 참여하는 등 정치권·국민 반응이 영향을 미친 것 아니냐는 뉘앙스로 비친다.
“구속영장 결정은 범죄 수사를 위한 중간 과정일 뿐이고 이번 이 대표에 대한 결정도 그 내용이 죄가 없다는 내용이 아니다”(한동훈 장관)
영장을 청구할 땐 ‘영장이 발부 안 되면 하늘이 무너진다’는 식으로 대응하다, 기각되면 ‘영장이 기각됐다고 죄가 없는 것은 아니다’라는 그간 검찰 영장 관련 단골 대응 논리를 되풀이한 것이다. 하지만 그간 ‘구속=사법정의 실현’이라는 기조 아래 이 대표 관련 압수수색만 376회를 하는 등 검찰 역량을 총동원했던 태도가 180도 바뀐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영장실질심사 때 검사가 제출한 의견서 분량도 이례적으로 긴 1500쪽이었다. 한 장관이 9월21일 이 대표 체포동의안 국회 본회의 표결에 앞서 사상 최장인 30분가량 이 대표의 혐의에 대해 자세히 설명한 것도 거론된다. 그는 “대규모 비리의 정점은 이재명 대표이고, 이 대표가 빠지면 범죄사실은 성립 자체가 안 되는 구조”라고 구속의 필요성을 구구절절 강조했다.
앞서 검찰총장 출신인 윤석열 대통령이 대통령에 취임한 뒤, 검찰은 이재명 대표에 대한 저인망식 수사에 돌입했다. 2022년 9월26일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이 검찰 조사에서 진술을 바꾼 것을 계기로 정진상·김용 등 이 대표 주변 인물들을 재판에 넘기는 등 관련 의혹들을 전면적으로 샅샅이 뒤지고 있다.
검찰, 영장 재청구 할까?
향후 검찰 대응에도 관심이 집중된다. 법원이 ‘불구속수사 원칙’까지 재확인했지만, 검찰이 구속영장을 재청구할 가능성은 크다. 그간의 검찰이 수사력을 총동원해 ‘사안이 엄청나게 중대하다’고 강조해왔는데, ‘구속 조차 못 할 사안’이라며 꼬리를 내리는 건 그간 수사 관성으로 봤을 땐 받아들이기 힘들든 선택지일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9월27일 ‘아군’격인 국민의힘도 논평을 내고 “검찰은 하루속히 보강을 통해 다시 영장을 재청구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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