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부, 기업 위해 화학물질 규제 완화···시민은 안전할까
환경부가 규제 완화를 명분으로 신규 화학물질 등록기준을 낮추기로 했다. 시민단체는 기업 이익을 위해 규제를 완화하면 소비자 생명과 안전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환경부는 24일 윤석열 대통령이 주재한 킬러규제 혁파 규제혁신전략회의에서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이하 화평법)’과 ‘화학물질관리법(이하 화관법)’ 개정을 올해 하반기 내에 완료하겠다고 밝혔다.
환경부는 먼저 기업의 화학물질 등록비용을 절감시키겠다고 밝혔다. 현재 ‘연간 0.1t 이상 사용기업’인 인 신규화학물질 등록기준을 유럽연합과 동일하게 연간 1t 이상으로 조정한다. 환경부는 반도체·전자 등 첨단업종을 중심으로 700여개 기업이 화학물질 등록비용을 절감하고, 제품을 조기에 출시하는 것이 가능해지면서 2030년까지 총 2000억원의 경제적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화학물질 규제를 위험도에 따라 차등적으로 적용하는 위험비례형 규제로 전환하는 내용도 포함했다. 이를 통해 취급량이 적은 중소기업은 취급시설 기준, 정기검사 등의 규제를 면제받거나 완화된 규제를 적용받을 수 있다.
시민단체들은 정부가 기업 편의만을 위해 화학물질 규제를 완화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신규화학물질 등록기준은 2011년부터 드러나기 시작한 가습기 살균제 참사와 2012년 발생한 구미 불산 사고 이후 강화한 것인데 이를 되돌린다는 것이다.
등록기준을 1t으로 완화하면 지금보다 훨씬 많은 기업이 규제 사각지대에 놓인다. 시민단체들은 실제 과거 가습기살균에 참사를 일으킨 가해기업들 중에도 신규화학물질을 0.1t에서 1t 사이로 수입해 사용한 사례들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환경단체들의 연대기구인 한국환경회의는 이날 성명을 통해 “화평법과 화관법은 화학사고의 위험성으로부터 국민 건강 및 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이라며 “제도 강화에 나서도 모자란 상황에서 기업의 편의와 비용 절감을 위해 규제를 완화하겠다고 나섰다는 점에서 환경부는 ‘산업부 2중대’로 전락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은 “지금도 가습기살균에 피해자들이 후유증으로 사망하고, 폐암환자가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시민들은 유사한 참사가 발생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환경부는 이런 상황에서 재발 방지 법안을 누더기로 만들고, 기업 이익만을 위해 규제를 완화하면서 소비자 생명과 안전을 위태롭게 하려 한다”고 주장했다.
환경부는 또 환경영향평가 관련 규제도 대폭 완화하기로 했다. 특히 하천기본계획에 포함된 하천 정비사업은 환경영향평가를 면제받도록 할 방침이다. 환경부는 하천기본계획에 전략환경영향평가가 실시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재난 대응을 위한 사업은 기존에도 환경영향평가를 면제받고 있어 환경부가 4대강사업과 비슷한 하천정비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환경영향평가를 무력화하려는 것이란 비판이 나온다. 환경회의는 “환경영향평가의 효율성을 높인다는 명목으로 제도의 목적을 부정하고, 의무를 방기하는 부처가 ‘환경’이라는 이름을 달 자격이 있는가”라고 물었다.
하천의 환경영향평가 면제는 환경부가 자체적으로 시행령이나 지침을 개정하면 된다. 화평법과 화관법 개정은 국회 통과가 필요하다.
김기범 기자 holjja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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