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장이 장례식장으로…세계가 보는 한국의 저출산 [특파원 리포트]

김원장 2023. 8. 19.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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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전쟁 통에도 남한에서는 67만 명이 태어났다. 지난해 한국에선 25만 명이 태어났다. 삶이 전쟁만큼 힘든가 보다. 지하철역에 붙은 한 동네의원 광고. ‘낮엔 업무, 밤엔 투석’, ‘바쁜 직장인을 위한 슬기로운 야간투석’. 한국인들의 고달픈 삶을 말해준다.

코로나 초기 확진자의 동선을 따라가 봤더니 콜센터에서 일하다 확진을 받은 아주머니는 새벽에는 녹즙을 돌리고 있었다. 또 다른 직원은 주말엔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하고 있었다. 30살의 한 여성은 콜센터에서 일하면서 긴급 돌봄 교사 일을 하고 있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바쁘기만 한 이 나라 젊은이들은 이제 아이를 낳지 않는다.


1. ‘Workism’

미국 공영라디오 NPR은 한국의 저출산을 분석하면서 한국만의 ‘workism(일 중심 사회)’을 소개했다. '한국은 OECD 국가 중 주당 노동시간이 가장 긴 나라 중 하나'라고 소개하면서, 주당 50시간 이상 근로의 비율이 덴마크는 6%, 프랑스는 10%인 반면 한국은 19%나 된다(자료 OECD)고 지적했다.

특히 "한국인들은 직장에서 더 기여를 하고 더 높은 자리에 있으면 그것이 자신을 더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믿는 경향이 강하다"고 분석했다. NPR은 "이렇게 가족보다 일을 중시하는 나라일수록 출산율이 떨어진다"고 했다.

우리는 일을 열심히 할수록 보상이 뚜렷한 성과 사회다. 그리고 경쟁에서 밀리면 그만큼 차가운 대가가 기다린다. 그런데 이 복잡계 사회에서 누군가는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너는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지배하면서, 시민이 견뎌야 하는 한계치에는 무관심한 사회. 우리가 바라는 삶은 ‘갯마을 차차차’지만 현실은 ‘오징어 게임’이다.

2. 결혼과 출산에 대한 이중적 시선

유럽 국가 중에 비교적 출산율이 높은 프랑스와 덴마크는 출산과 육아로 직장에서 불이익을 받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낮다. 이코노미스트지의 유리천장 지수(The Economist magazine's glass ceiling index)에서 이 두 나라는 여성들이 일하기 좋은 나라 6위와 9위다. 한국은 꼴찌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홈페이지 인사말에는 "아이를 낳고 키우는 즐거움과 자아실현의 목표가 동시에 만족될 수 있도록 국가가 확실히 책임지고 보장한다는 그런 목표 하에 과감한 대책을 마련하고 필요한 재정을 집중 투자해야 합니다"라는 위원장의 인사말이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 즐겁게 아이를 키우고, 자아실현을 하면서 살면 "그럼 회사는 왜 다니는거냐"라는 말을 들어야 한다.

중소기업을 경영하는 한 사장님이 “여직원들은 뽑아만 놓으면 출산휴가니 육아휴직이니…도대체 일은 언제 하느냐” 탄식을 하고 집에 돌아왔다.
대기업에 다니는 딸에게 전화가 왔는데, 눈치가 보여서 출산 휴가를 길게 못 쓰겠다고 한다. 사장님은 “그 회사 사람들은 엄마 뱃속에서 안 나왔다더냐” 버럭 화를 냈다.

누군가 만들어낸 우스갯소리겠지만, 출산과 육아에 대한 우리의 이중적인 시선을 말해준다. 한국에서 출산과 육아를 택한 여성은 직장에서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뉴욕타임스는 “내가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의심의 여지가 없어요. 출산이나 육아로 내 경력을 끝낼 수는 없어요”라는 청주의 한 여대생의 인터뷰를 실었다.

이른바 '비비탄' 사회, '비'혼 '비'출산이면 직장에서 '탄'탄대로다. BBC는 이런 한국을 ‘직장과 가족이 양립하기 힘든 사회’라고 표현했다. 한국에서는 실제 ‘책임감 있는 모성이 발휘되면 책임감 없는 직장인’이 된다.

이코노미스트의 ‘유리천장지수’. OECD 회원국들의 노동시장에서 여성의 역할과 영향력을 말해준다. 스웨덴, 아이슬란드, 핀란드, 노르웨이 등 4개의 북유럽 국가들이 높은 점수를 받은 반면, 가족과 직장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일본과 한국이 ‘일관성’ 있게 꼴찌를 유지하고 있다.


미 공영라디오 NPR은 또 여전히 ‘결혼’이라는 제도 밖에서 태어난 아이를 존중하지 않는 한국사회를 지적했다. 2020년 한국은 혼외자녀의 비율이 2.5%였지만, 같은해 미국은 40.5%를 기록했다(노르웨이는 56%, 스웨덴은 54%를 넘었다/2018년 기준 OECD Family data). 점점 더 많은 젊은이들이 결혼이라는 제도 밖에서 출산을 택하지만, 한국은 여전히 출산은 ‘결혼’ 안에서만 가능하다고 믿는다.

프랑스는 ‘저출산대책’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는다. 대신 ‘가족대책’이라고 표현한다. 우리는 낳는 게 중요한데 다른 선진국들은 기르는 게 중요하다. 선진국들은 ‘아이는 엄마가 낳고 사회가 기른다’고 생각하지만, 한국 사회는 여전히 아이는 친부모가 길러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애 아빠가 누구냐?”라고 묻고, 육아의 책임을 무한정 부모에게 돌린다. 그래서일까. 저출산 극복이 지상 최대과제라고 하는 한국은 지난해 또 142명의 아이들을 해외로 입양보냈다(자료 보건복지부).

한국에서 결혼과 육아는 매우 비싸다. 큰 비용을 요구한다. 알 자지라 Al Jazeera는 '고용시장의 불확실성, 비싼 주택가격, 잔인하게 경쟁하는 사회에서 아이를 기르는데 막대한 비용이 들어간다'고 한국의 저출산을 분석했다. 아이를 낳으면 직장에서의 불이익과 막대한 비용을 떠안아야 하는 사회에서 결혼과 출산을 하지 않겠다는 한국 젊은이들의 선택은 ‘합리적’이다.

3.'한국은 수준이 다르다'

저출산은 사실 거의 모든 선진국이 당면한 과제다. 그런데 우리는 수준이 다르다. 지난 5월 CNN은 이탈리아가 얼마나 심각한 저출산에 직면했는지 보도했다. 1980년에 태어난 43세 여성 중에 아이를 낳은 여성은 1/4도 안된다. 아이가 7명이 태어날 때 12명이 사망하는 이 고령화 국가에 경제 암흑기가 찾아올 수 있다고 했다. 이탈리아에서는 2030년까지 200만 명의 근로자가 은퇴를 하는데 이들의 연금을 채워줄 젊은이들이 턱없이 부족하다.

CNN은 육아휴직이 3년까지 가능한 독일의 사례를 설명하면서, 이탈리아 정부와 카톨릭교회가 저출산을 한탄하지만 대책에는 눈감고 있다고 했다. CNN이 소개한 이탈리아의 출산율은 ‘1.25명’이다. 우리는 ‘0.78명’이다.

14년째 인구가 줄고 있는 일본은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47개 모든 현에서 인구가 줄었다. 지난해 77만 명의 신생아가 태어났고 156만 명이 사망했다. 그렇게 또 79만 명이 줄었다. 우리로 치면 청주시 전체 인구가 사라졌다. 지난 1월 기시다총리는 “사회기능을 유지하지 못할 만큼 심각하다”고 고백했다. 그런 일본의 합계출산율은 1.26명이다. 우리는 0.78명이다.

CNN은 지난 2017년 4만여 개였던 한국의 아동 보육시설이 2022년 말 3만여 개로 급감했다고 전했다. 대신 요양병원 등 노인시설은 2017년 7만7천여 개에서 지난해 8만9천여 개로 늘었으며 이는 한국의 저출산대책이 실패했음을 말해준다고 분석했다.

외신들은 그래서 이제 한국의 노인들은 누가 부양할 것인가를 묻는다. 덧붙여 뉴욕타임스는 65세 이상 한국인의 자살율이 세계에서 제일 높다고 했다. 지난 수십년 동안 경제와 문화에서 최고의 역동성을 보여줬던 한국은 저출산으로 힘든 미래를 경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저출산이 심각한 나라의 출산율 그래프. 한국의 그래프 기울기가 단연 가파르다. 그래픽 VISUAL CAPITALIST지 캡쳐


친구 아버지의 장례식장은 친구가 결혼했던 결혼식장이였다. 그렇게 전남 구례에서 태권도장이 사라지고, 경북 영덕에선 산부인과가 사라진다. 우유도, 피아노도, 야구 글러브도 매출이 줄어든다. 유아용기저귀 매출은 급감하고 성인용 기저귀 매출이 급증한다.

우리는 그렇게 인류 존속의 법칙을 거슬러 ‘무자식 상팔자 사회’를 완성했다. 90만 명을 넘었던 고 3수험생은 지난해에는 40만 명으로 줄었다. 20년 후에는 20만 명 정도로 줄어든다. 앞으로 고3 교실에서만 책걸상 20만개를 버려야한다. 관련 일자리는 얼마나 줄어들까.

기업의 내수도 줄고, 당신 가게의 매출도 줄고, 그렇게 세금을 내는 국민들도 줄어든다. 세계는 심각한 눈으로 한국의 저출산을 바라보고 있다. 그런데 혹시 우리만 애써 모른척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유래없이 빠른 경제성장을 이룩한 한국은 그 대가로 그 성장의 열매를 받을 세대가 소멸하고 있다’. 미 라디오 공영방송 NPR의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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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장 기자 (kim9@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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