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명 찌르러 간다” 살인예고 글…‘살인예비죄’ 처벌 가능할까 [주말엔]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서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삼은 살인 사건이 일어난 데 이어 3일 저녁에는 경기 성남시 분당구 한 백화점에서 흉기 난동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른바 '묻지마 범죄'가 또 일어난 겁니다.
이후 지금까지 서울 시내를 범행 장소로 지목한 살인 예고글이 잇따라 올라오면서, 시민들의 불안감도 높아진 상태입니다.
한 게시물은 "8월 4일 금요일 오후 6시에서 오후 10시 사이에 오리역 부근에서 칼부림하겠다. 더 이상 살고 싶은 마음도 없고 최대한 많은 사람을 죽이고 경찰도 죽이겠다. 나를 죽이기 전까지 최대한 많이 죽이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또 다른 게시글엔 흉기 사진을 첨부한 뒤 "서현역 금요일 한남들 20명 찌르러 간다"는 내용을 적었습니다.
만약 이런 '살인 예고' 글을 올리고 실행에 옮겼다면, 당연히 살인죄 등으로 처벌됩니다. 그런데 단순히 글만 올리고 실행을 하지 않은 경우는 어떨까요?
■ "무차별 살해 예고" 글 작성만으론 '살인예비죄' 어려워
우선 거론되는 혐의가 '살인예비죄'입니다. 이름이 생소하실 텐데요.
본래 우리 형법은 범죄를 실행하지 않은 경우 원칙적으로 처벌하지 않습니다. 예외적으로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에만 처벌하고 있는데, 살인예비죄가 그 예입니다.
살인죄는 매우 중한 범죄여서, 이러한 예비 행위 역시 별도로 형법에 규정해 10년 이하의 징역형으로 처벌하고 있는 것이죠.
따라서 단순히 글을 올린 행위를 '예비행위'라고 볼 수 있는지가 쟁점인데, 예비란 '범죄를 실현할 목적으로 행하여지는 외부적 준비행위'로 아직 실행의 착수에 이르지 않은 단계에서의 일체의 행위를 말합니다.
다만 판례상으로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형법 제255조에서 명문으로 요구하는 살인죄를 범할 목적 외에도 살인의 준비에 관한 고의가 있어야 하며, 나아가 실행의 착수까지에는 이르지 아니하는 살인죄의 실현을 위한 준비행위가 있어야 한다.
여기서의 준비행위는 물적인 것에 한정되지 아니하며 특별한 정형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단순히 범행의 의사 또는 계획만으로는 그것이 있다고 할 수 없고 객관적으로 보아서 살인죄의 실현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외적 행위를 필요로 한다"
풀어 말하면, 정말로 살인을 할 마음을 먹었더라도 이와 별도로 준비에 관한 고의가 필요하고, 그에 따른 구체적인 준비 행위를 했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어떤 게시물을 온라인에 올린 행위는 단순한 범죄계획, 범죄 의사의 표시일 뿐 살인의 구체적인 준비 행위라고 보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판례도 많지 않아 준비 행위를 구체적으로 규정하긴 어렵습니다. 다만 법원은 권총 등을 교부하면서 사람을 살해하라고 하거나 행동자금을 교부하는 경우, 살인을 청부하면서 대가의 지급을 약속한 경우 등에 살인예비죄로 판단했습니다.
살인 예고 게시물을 미리 올린 경우라면, 예컨대 살상 목적의 흉기를 실제로 사들여 소지·휴대하고 예고 장소에서 배회한다거나 하는 경우 등을 떠올릴 수 있을 겁니다.
■ '테러방지법' 적용 가능성도 미지수
일각에선 불안감을 조성하는 이러한 게시물을 일종의 '테러'로 보아 국민보호와 공공안전을 위한 테러방지법(테러방지법)을 적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하지만 테러방지법의 처벌규정은 '테러단체를 구성하거나 구성원으로 가입한 사람'에 한정하고 있어, 단순히 살인 예고 게시물을 올린 사람에게까지 적용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국민보호와 공공안전을 위한 테러방지법
제17조(테러단체 구성죄 등)
① 테러단체를 구성하거나 구성원으로 가입한 사람은 다음 각 호의 구분에 따라 처벌한다.
1. 수괴(首魁)는 사형ㆍ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
2. 테러를 기획 또는 지휘하는 등 중요한 역할을 맡은 사람은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
3. 타국의 외국인테러전투원으로 가입한 사람은 5년 이상의 징역
4. 그 밖의 사람은 3년 이상의 징역
② 테러 자금임을 알면서도 자금을 조달ㆍ알선ㆍ보관하거나 그 취득 및 발생원인에 관한 사실을 가장하는 등 테러단체를 지원한 사람은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③ 테러단체 가입을 지원하거나 타인에게 가입을 권유 또는 선동한 사람은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④ 제1항 및 제2항의 미수범은 처벌한다.
⑤ 제1항 및 제2항에서 정한 죄를 저지를 목적으로 예비 또는 음모한 사람은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대검찰청은 "불특정 다수의 공중 일반에 대한 안전을 침해·위협하는 '공중협박행위'를 테러 차원으로 가중처벌 할 수 있는 법령 개정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법무부에 입법 요청하겠다"고 밝혔습니다.
■ 처벌 못 하나?…협박죄·위계공무집행방해 적용 가능
다만 이런 글을 올리는 행위 자체가 아예 처벌되지 않는 건 아닙니다.
우선 협박죄가 우리 형법에 규정돼 있죠. 사람을 협박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5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으로 처벌하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흉기 구매 장면 사진과 함께 신림역에서 여성 20명을 죽이겠다는 구체적 내용의 글을 연이어 올린 20대 남성 이모 씨는 최근 협박 혐의로 구속돼 검찰에 송치됐습니다.
다만 게시물에 살해 대상자가 구체적으로 특정되지 않은 경우라면, 불특정 다수에 대한 협박을 상정하기 어려워 혐의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볼 소지가 있습니다.
형법 제137조(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위계로써 공무원의 직무집행을 방해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제283조(협박)
①사람을 협박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500만 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에 처한다.
만약 살인을 할 의도가 없었더라도 이러한 게시물을 올려 행정력을 낭비하게 했다면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혐의 등이 적용돼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
앞서 언급했던 '4일 저녁 6시에서 밤 10시 사이 오리역 부근에서 흉기 난동을 벌이겠다'는 내용의 글 때문에 경기남부경찰청은 범행 장소로 지목된 경기 성남시 분당구 일대에 100명 가까운 경찰 인력을 투입했습니다.
실제로 사건이 벌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만큼, 이렇게 경찰이 한 군데 집중적으로 투입됐다면 경찰력을 필요로 하는 다른 곳에 그만큼 공백 상태가 생기게 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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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성 기자 (isbaek@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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