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尹, 국정원장에 '특정라인 솎아내라' 작년말 지시"
국정원 인사 파동…대통령실, 김규현 거취 고심
국가정보원 인사를 둘러싼 파열음이 김규현 국정원장 거취 문제로 직결되고 있다. 현재 대통령실은 국정원 1급 인사를 중지시켰고, 관련 대상자 5명은 대기발령 상태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15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대통령실이 국정원에 대한 정밀 진단에 착수했다. 다음 주 윤석열 대통령의 프랑스·베트남 순방이 예정돼 있어 김 원장의 거취를 당장 결정짓기는 쉽지 않지만, 순방 이후는 국면이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교체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다른 여권 핵심 관계자도 “김 원장의 입지가 견고하지 않은 건 사실이라고 들었다”고 했다.
중앙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국정원 인사 파동의 발화점은 김 원장 최측근으로 꼽히는 A씨가 주도했다는 일련의 인사다. A씨는 박근혜 정부 때 청와대에 파견되는 등 역량을 인정받았지만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 한직을 전전했다고 한다. 그러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자 다시 처지가 바뀌었다.
윤석열 정부 초대 국정원장으로 임명된 김 원장은 얼마 지나지 않아 윤석열 대통령과도 가깝다는 검찰 출신 조상준 기획조정실장과 불편한 기류가 형성됐다.
“김규현 측근, 문 전 대통령 평양연설문 관여자도 중용”
특히 인사를 둘러싼 갈등이 컸는데, 이 과정에서 내부 사정에 밝은 A씨 조언이 김 원장에게 도움이 됐고, 결과적으로 지난해 10월 조 실장이 사퇴하면서 A씨가 김 원장의 최측근으로 부상했다고 한다.
이와 동시에 국정원은 문재인 정부 때 쌓인 폐단을 바로잡자는 취지에서 지난해 9월 1급 보임자 20여 명과 2·3급 100여 명을 대거 교체했다. 여권 관계자는 “이 과정에서도 국정원 공채 출신으로 내부 인사를 속속들이 알고 있는 A씨가 적잖은 역할을 한 것으로 안다. 다만 A씨가 논란의 소지가 있는 인사를 천거하면서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고 전했다.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인물이 B씨다. 2018년 9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세 번째 정상회담을 위해 평양을 방문한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능라도 경기장에서 평양시민에게 연설했다. 초유의 대형 이벤트를 앞두고 여러 부처가 연설문 작성에 관여했는데, 국정원 버전 연설문을 쓰는 데 B씨가 참여했다고 한다.
여권 관계자는 “A씨 눈에 들었다는 이유로 B씨가 윤석열 정부 들어서도 주요 보고서에 접근할 수 있는 보직에 보임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B씨 외에 내부 감찰을 맡고 있는 C씨도 비슷한 경우로 입방아에 오르내린다고 한다. 박근혜 정부 청와대에 파견갔던 C씨는 국정원장을 ‘패싱’하고 당시 우병우 민정수석에게 직보했다는 의혹으로 2016년 최순실 국정농단 청문회에서도 거론됐던 인물이다.
소식통들에 따르면 국정원 안팎에서 관련 보고를 접한 윤 대통령이 지난해 말, 김 원장에게 “특정 라인을 솎아내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이와 관련, 또 다른 소식통은 “윤 대통령의 지시 이후 김 원장은 A씨를 핵심 보직에서 뺐지만, 동시에 3급에서 2급으로 승진시켰다”며 “올해 들어 국정원이 방첩 사건에서 성과를 올리자 김 원장은 A씨를 공로자로 상신했고, 이를 감안해 이번 인사 때 1급으로 승진시키려다 문제가 터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원장이 취임 이후 A씨를 1년여 만에 ‘핵심 3급 보직 임명→2급 승진→1급 승진 시도’를 꾀하다 이번 사태가 벌어졌다는 것이다.
대통령실의 인사 재검토 지시로 A씨도 현재 대기발령 상태가 됐다고 한다. A씨뿐 아니라 핵심 보직 인사가 멈춰섰고, 대통령실의 정밀진단이 가시화되는 ‘제2의 인사 파동’이 발생한 셈이다. 1차 파동이라 할 만한 ‘김규현 vs 조상준’의 갈등 국면에서 대통령실이 김 원장의 손을 들어줬다면, 이번 사태로 김 원장이 다시 시험대에 올랐다는 관측이 나온다.
여권에선 “김 원장을 교체할 때가 아니다. 하려면 진작 했다”는 말이 나오지만, 여러 경로를 통해 이번 사태를 파악한 윤 대통령이 김 원장을 질책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국회 정보위 관계자는 “외교관 출신으로 국정원 내부를 속속들이 장악하지 못한 김 원장이 A씨를 전적으로 신임하면서 벌어진 일”이라며 “문제가 백일하에 드러나다시피 한 상황에서 김 원장이 어떤 리더십을 발휘하는지가 중요해진 국면”이라고 말했다.
김준영·윤지원 기자 kim.ju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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