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로운 척, 가난한 척… ‘김남국 코인 파문’ 청년들의 분노
더불어민주당 김남국 의원의 코인 사태에 대한 2030세대 분노가 커지고 있다. 60억원, 88억원 등 전체 규모조차 해명하지 않은 상황에서 “법적으로 문제없다” “한동훈 검찰 작품” 같은 김 의원 주장은 청년 세대의 분노 지수를 높이고 있다. 2030세대는 문재인 정부 시절 부동산 폭등에 대한 출구로 코인 투자에 나섰다가 대부분 실패를 맛봤다. 세대 전체의 ‘집단적 박탈감’이 막대한 이슈인데도 김 의원 본인은 물론 당 지도부까지 소극적으로 대응했다. 이런 와중 김 의원이 애초 위믹스뿐 아니라 여러 ‘잡(雜)코인’에 손을 댔다거나, 심지어 국회 상임위 회의 도중 코인 거래를 했다는 추가 의혹도 계속 터지는 상황이다. 2030 청년들은 김 의원 문제를 “제2의 조국 사태”로 규정했다. ‘조국 사태’가 공정 문제였다면 김 의원 문제는 자산(資産) 방면 ‘내로남불’에 대한 반감을 건드렸다.
한국갤럽은 12일 김 의원 코인 사태 이후 민주당의 2030 청년 지지율이 10%포인트가량 떨어졌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갤럽이 지난 9~11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지난주 31%였던 18∼29세 지지율은 19%로 12%포인트 하락했다. 30대 지지율도 42%에서 33%로 9%포인트 떨어졌다. 선거 승패를 가르는 ‘스윙 보터’인 2030세대 여론에 김 의원 코인 사태가 결정적 악재로 작용한 셈이다. 전체 지지율은 32%로 직전 조사와 동일했다.
민주당 내에선 세대 반란 조짐마저 나타나고 있다. 민주당 2030 청년들은 이날 김 의원 코인 사태와 관련, “당의 도덕성이 무너졌다”며 의원직 사퇴를 요구했다. 민주당 전국대학생위원회와 17개 시·도당 대학생위원회는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청년 정치인을 자처했던 김 의원의 몰빵(집중) 투자는 수많은 청년들에게 박탈감을 느끼게 했다”며 “민주당의 무너진 도덕성을 상징하는 사건”이라고 했다.
전직 최고위원 등 청년 정치인들도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촛불의 열망으로 집권, ‘적폐 청산’에 앞장섰던 민주당이 이제 ‘적폐’로 평가받아야겠느냐”며 “쇄신의 기준은 엉망진창인 국민의힘이 아니다”라고 했다. 청년들은 김 의원 코인 보유, 전당대회 돈 봉투 사태에 대해 ▲철저한 진상 조사 ▲코인 보유 내역 전수 조사 ▲‘내로남불’ ‘남탓’ 태도 청산 등을 요구했다. 이들은 “우리 편은 감싸고 상대편만 공격하는 내로남불 정치, 국민의 눈높이와 괴리된 당내 도덕불감증을 끊어내야 한다”며 “민주당이 끊어내야 할 적폐가 있다면 검찰이 아니라 우리 손으로 끊어야 한다”고 했다.
민주당 청년들의 이날 집단행동은 이례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청년들은 현 민주당 상황을 ‘적폐’ ‘내로남불’ 같은 강도 높은 표현으로 비판했다. 양소영 전국대학생위원장은 “민주당은 국민 상식과 눈높이와 벗어난 정당이 됐다”며 “국민 다수가 불신을 보낸다”고 했다. 이학준 서울시당 대학생위원장은 “청년 정치가 가난 프레임과 내로남불로 얼룩졌다”고 했다. 그는 김 의원에 대해 “앞에서는 가난함을 강조하고 뒤에서는 막대한 시세 차익을 챙기는 위선적 행태”라고 했다.
김 의원이 한동훈 법무부 장관 인사청문회를 비롯, 검수완박, 핼러윈 참사 논의 상임위 회의 도중 코인 거래를 했다는 등 추가 의혹이 꼬리를 물고 있다. 그간 김 의원은 김건희 여사를 향해 “주가 조작 에이스” “제대로 수사하면 주가 조작 범죄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고 했다. 곽상도 전 의원 아들의 50억원 퇴직금 논란에 대해서는 “실제로는 뇌물일 것”이라며 “철저한 수사를 통해 진실을 규명해야 한다”고 했다. 정의로운 언사로 여권(與圈) 인사들을 공격한 것이다.
그러는 동안 변동성과 투기성이 심해 거래 자체가 시장에 해악을 끼친다는 코인을 국회 회의 중 대규모로 거래한 정황이 나타났다. 국회의원 신분을 망각했다는 비판이 거세다. 의혹과 논란이 일파만파인데도 해명은 앞뒤가 안 맞고 정식 기자회견조차 열지 않았다. 박성민 전 최고위원은 “김 의원 본인 해명이 서로 일치하지 않는 상황이 계속 발생해서 국민의 의혹이 커지고 있다”며 “언론 보도 내용이 사실이라면 의원직 사퇴도 할 수 있다”고 했다.
민주당 안팎의 2030 청년들은 이런 김 의원에 대해 ‘제2의 조국’ 같다고 했다. 한 청년 당직자는 “떨어진 운동화 신고 다닌다던 김 의원이 실제로는 코인으로 큰돈을 만진다는 소문이 돈 지 꽤 됐다”며 “굳이 가난한 척은 왜 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앞에서는 “모두가 용이 되지 않아도 개천에서 가재, 붕어, 개구리로 살아도 행복한 세상을 만들자”면서도 뒤로는 자녀 입시 비리, 사모 펀드 조성 같은 부도덕을 저질렀던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떠오른다는 것이다. 김 의원은 “조국 교수님 사진을 머리맡에 두고 기도하면서 잔다”고 한 친(親)조국 인사다.
명지대 신율 교수는 “2030세대가 가상 화폐로 큰 손해를 본 이유는 문재인 정권에서 투자자 보호 대책이 미흡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며 “그런 시절 당에서 공천받아 당선돼서 잘나가던 정치인이 돈을 그렇게 많이 벌었다면 분노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2030세대의 배신감과 박탈감이 임계치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돈 봉투 사태에 대해서도 민주당 청년들은 “매듭짓지 못한 내부 문제가 쌓여 적폐가 된다”며 “‘위법이냐 아니냐’ ‘수사권이 있냐 없냐’ ‘국민의힘보다 나은가 아닌가’가 중요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간 국민 보편 상식보다 내부 논리를 우선해온 폐쇄적 86운동권 문화에 대한 2030세대의 비판적 의식이 반영된 것이다. 이들은 “국민이 선거에서 세 번 연속 국민의힘을 선택했다는 냉정한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며 “우리 기준은 국민의힘이 아니라 국민”이라고 했다.
용인대 최창렬 특임교수는 “김 의원이 대단히 위선적 행태를 보였기에 충분히 제2의 조국 사태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돈 봉투에 코인 사태까지 겹친 민주당에 대해서는 “도덕적 권위를 상실한 민주당은 더는 진보 의제를 선점하기 어려워졌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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