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부세 폭탄에 임대사업자 사라지자 전세사기단 판쳤다

차학봉 부동산전문기자 2023. 5. 4.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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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학봉의 R리포트]
전세사기단에 판 깔아줘

서울에서 소형 주택 26채로 임대 사업을 하는 A씨. 엄청난 다주택자로 보이지만 전체 가격은 강남 대형 아파트 한 채 값인 30억원대다. 자식들에게 손 벌리지 않고 노후를 보내겠다며 대출까지 받아 시작한 임대 사업은 문재인 정부의 정책 변경 탓에 악몽이 됐다. 2020년 400만원이었던 종부세가 2021년 7600만원, 2022년 9100만원으로 급증했다. A씨는 “세금과 오르는 금리를 견딜 수 없어 집을 처분하려고 알아봤지만 집값이 잘 안 오르는 소형 주택이라 매매 수요는 없었다”면서 “매매가와 전세 가격이 비슷해져 무자본 갭투자 등 전세 사기 조직이 집을 넘기라고 유혹했지만, 양심상 그럴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의 ‘종부세 폭탄’ 등 규제 정책이 빌라·오피스텔 등 서민 주택 공급자인 ‘임대 사업자’를 빈사 상태로 내몰고 전세 사기꾼들이 활개 칠 수 있는 마당을 깔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소형 빌라는 가격이 잘 오르지 않아 서민들이 매매가와 전세 가격이 비슷해도 구입하지 않고 세 들어 살려고 하는 임대 시장이다. 전세 사기가 빈발한 인천 미추홀구의 경우, 지난해 빌라의 전세가율(매매가에서 전세가가 차지하는 비율)이 94%까지 치솟았다.

빌라는 임대 수익으로 노후를 대비하려는 임대 사업자들이 사들여 청년층에게 임대하며 이른바 ‘서민 임대주택 생태계’를 형성해 왔다. 문재인 정부도 이런 점을 감안, 2017년 말 “서민 주거 안정”을 내세우며 종부세·재산세·건강보험료 감면 등 등록임대주택 활성화 방안을 발표했다.

◇임대 사업자에게 10배 늘어난 종부세 폭탄

문재인 정부의 정책은 3년도 안 돼 뒤바뀌었다. 문재인 정부는 집값이 치솟자 2020년 ‘6·17 대책’과 ‘7·10대책’ 등을 통해 종부세·양도세 중과(重課) 등 다주택자 규제를 본격화한다. 임대 사업자의 주택담보대출 금지, 단기 임대(4년) 및 아파트 장기 매입 임대(8년) 폐지 등의 규제를 쏟아냈다. 법인과 다주택자의 주택 취득세율을 12%까지 올렸다. 치솟는 아파트 가격을 잡겠다는 명분이었지만, 실제로는 임대 사업자의 신규 진입을 막아 서민 임대주택 생태계를 붕괴시켰다. 2018년 4000억원이던 주택 대상 종부세가 2021년 4조4000억원으로 10배로 불어났다. 3주택 이상 임대인에게 거둔 종부세는 같은 기간 2500억원에서 2조1775억원으로 증가했다. 무차별적이었다. 서민 임대용 주택을 보유하고 있는 서울시 산하 SH도 종부세가 2017년 117억원에서 2021년 462억원으로 늘었다. 조준현 한국리츠협회 본부장은 “저렴하게 임대하는 부동산 펀드의 소유 주택도 종부세를 중과해 10년간 주택 가격의 40%에 상당하는 세금을 내야 할 정도”라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의 정책 변경으로 연간 임대료 인상 폭이 5%로 제한되고 원하는 만큼 거주할 수 있는 서민용 등록임대주택은 급감했다. 등록임대주택의 전세 보증금은 미등록임대주택보다 45% 정도 저렴하다. 등록임대주택 사업자와 주택 수는 2017년 22만9000명, 85만가구에서 2020년 52만명, 160만가구까지 급증하다, 규제 정책이 도입되면서 31만명, 96만가구로 급감했다.

◇임대 사업자 퇴출 정책을 파고든 사기꾼

문재인 정부는 ‘4년 임대주택 사업’ 제도를 폐지하면서, 10년 의무 임대할 경우 종부세를 감면하는 정책을 들고나왔다. 안수남 세무사는 “10년 등록임대사업자의 경우 종부세 감면 혜택이 있었지만, 중간에 처분하면 한 채당 30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돼 임대주택 사업을 포기하는 사업자도 많았다”고 말했다. 최민섭 호서대 부동산 자산관리학과 교수는 “종부세 중과 등 과도한 규제로 건전한 임대 사업자가 위축되면서 사기꾼들이 활개를 치고 있다”면서 “사기 의도가 없었지만, 세금 체납으로 공매로 넘어가는 임대주택이 속출하는 만큼, 전세 사기 대책은 임대주택 생태계의 정상화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민 주택 생태계 부활시키지 못하면

빌라 등 비(非)아파트 주택 인허가 물량은 급격히 줄고 있다. 지난 1분기 1만1971가구로 지난 10년 같은 기간 평균에 비해 64.5% 감소했다. 작년 한 해 비아파트 인허가 물량은 9만4000여 가구로 지난 10년 평균보다 43% 감소했다. 김승배 한국 부동산개발협회장은 “과거에도 빌라 등의 건설이 급감한 것이 집값 폭등의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면서 “서민 주택의 안정적인 공급을 위한 생태계를 복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성창엽 대한주택임대인협회장은 “저가 주택 전세 사기 우려로 빌라 전세 계약을 꺼리고 보증금 반환을 요구하면서 많은 임대인이 파산 위기에 처했다”면서 “건전한 임대 사업자를 육성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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