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100마리 뒤엉킨 그곳 급습…"천만원 포메는 안돼" 황당 호소 [영상 르포]

장서윤 2023. 5. 2. 17:02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2일 오전 10시 전북 진안군의 산골 비닐하우스에서 강아지 수십 마리가 한꺼번에 짖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방호복을 입은 동물보호단체 관계자와 경찰관, 진안군청 공무원 등 20여명이 외딴 섬 같은 이 비닐하우스로 몰려간 건 “반려동물 번식장에서 강아지들이 굶어 죽고 있다”는 신고가 접수됐기 때문이다. 번식장 소유주인 A씨는 “여기에 내 인생을 바쳤다. 들어가면 내가 죽겠다”고 반발했다. 현장에선 대치가 이어졌다. A씨는 이곳 비닐하우스 3개 동과 컨테이너 1개를 번식장으로 사용했다.

불법 운영되던 전북 진안의 한 강아지 번식장 현장. 남윤우 인턴

대치는 2시간 여가 지난 정오쯤 풀렸다. 경찰과 군청 공무원들이 “긴급한 상황이니 강제집행을 할 수도 있다”며 압박한 끝에 A씨가 번식장에 있는 개에 대한 소유권 포기 각서를 쓰고 현장에서 물러났다.

잠시 후 비닐하우스와 컨테이너 박스의 문을 열자 개 짖는 소리가 폭발적으로 커졌다. 오랫동안 분뇨를 치우지 않은 듯 냄새도 코를 찔렀다. 물이나 사료도 없었다. 수십 개의 케이지가 탑처럼 3층으로 쌓여있었고, 케이지 한 곳에 개 서너 마리가 들어가 엉켜있었다. 비숑, 포메라니안, 푸들 등 개 100여 마리가 이곳에서 발견됐다. 바닥엔 각종 약물과 주사기도 널브러져 있었다.

전북 진안의 불법 개 번식장 내의 냉동고에서 개 사체가 발견됐다. 남윤우 인턴


안쪽 비닐하우스에 있는 냉동실에서는 개 사체도 발견됐다. 사료 포대 안에 돌돌 감싸진 상태였다. 마당의 잿더미 속에는 개 사체를 태운 흔적이 남아있었다. A씨는 미숙아나 병든 강아지들을 불에 태운 흔적이라고 설명했다.

전북 진안의 한 불법 개 번식장 마당에 개 사체가 탄 흔적이 남아있다. 남윤우 인턴

오후 12시 18분부터 갇힌 개들에 대한 구조가 시작됐다. 동물보호단체 비마이독의 김정현 대표는 강아지를 안고 나오며 “햇빛 처음 보지. 여기서 어떻게 살았어. 이 조그만 몸에서 평생 새끼를 뺐다는 게 너무 슬퍼”라며 흐느꼈다. 구조된 강아지들은 몸을 벌벌 떨었다. 눈은 떼지 않은 눈곱이 덕지덕지 붙어 붉게 변해있었다.

강아지들을 구조하는 데는 3시간이 넘게 걸렸다. 동물보호단체 티비티레스큐 운영진 전주은 씨는 한 막대기를 들고나오며 “불법 번식 도구”라며 “수의사 자격증도 없는 사람이 어디서 약도 어디서 구했는지 모르겠다. 어떤 수의사가 약을 제공한다는 뜻”이라고 주장했다. 비글구조네트워크 김세현 부대표는 “말 그대로 강아지 공장”이라며 “강아지들을 펫숍으로 팔고, 안 팔리면 다시 데려와서 저렇게 태워 죽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케이지 안에서 방치된 강아지들의 모습. 남윤우 인턴


30대 A씨는 생산업 허가를 받지 않고 8년째 이곳에서 강아지들을 번식해왔다고 주장했다. A씨는 ‘강아지들을 어디로 보내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어디로 보내지 않고 품종 개량을 하는 것”이라며 “국내에서 유전병을 다 제거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1000만 원짜리 포메라니안 등 비싼 강아지만은 데려가지 말라”고 사정했다. A씨는 생산업 허가 자격이 없기 때문에 경매장이 아니라 아는 펫숍에 알음알음 판매를 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당국과 동물보호단체 등은 추정하고 있다.

동물단체들에게 구조된 새끼 강아지의 모습. 남윤우 인턴

관할 지자체인 진안군청은 경찰에 수사 의뢰를 검토 중이다. 진안군청 김채오 동물방역팀장은 “불법 영업에 대해서는 다시 영업 행위가 이뤄지지 않도록 조치하고, 내부 환경을 봤을 때 강아지의 상태들이 많이 안 좋아 보이기 때문에 동물 학대 혐의로 경찰에 수사 의뢰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또 “예상보다 많은 강아지가 발견돼 동물 보호 단체가 당장 보호하지 못하는 강아지에 대해서도 임시로 보호할 장소를 알아보고 있다”고 밝혔다.

진안=장서윤 기자 jang.seoyun@joongang.co.kr 사진·영상=남윤우 인턴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