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석의 100년 산책] 우리 정치에 미래와 희망이 있는가

2023. 2. 3. 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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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한때 행동과학 계통 사람들의 주장이 많은 영향을 남겼다. 사람은 주어진 운명을 바꿀 수 있는가. 옛날 그리스 비극작가들은 밖으로부터의 운명은 바꿀 수 없다고 했다. 반면 셰익스피어 비극에선 운명은 인간적 한계 안에서 바꿀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성격이 곧 운명일 수 있기 때문이다. 성격을 바꾸면 운명도 변한다는 것이다. 타고난 성격을 어떻게 바꾸는가. 습관을 바꾸면 자신도 모르는 동안에 성격이 달라진다. 습관은 행동을 계속해 바꾸면 달라질 수 있다. 행동을 바꾸는 일은 누구나 가능하다. 생각을 바꾸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결론은 간단하다. 성격은 누구나 바꿀 수 있고 또 바꾸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종교 교리주의와 정치 교조주의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문제는 생각을 바꾸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이다. 종교적 신앙을 교리주의로 받아들이면 신앙을 바꾸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도덕적 가치를 교조주의로 절대화하는 사람은 그 가치관 때문에 생각을 바꾸기 힘들어진다. 공산주의자들은 유물사관을 절대가치로 삼기 때문에 좀처럼 정치의 방향과 방법을 바꾸지 못한다.

우리 민족도 어떤 면에선 그런 인습에 젖어 있는 것 같다. 사람들은 흑백논리와 파벌의식 때문이라고 말한다. 해방 직후 분단 때문에 정치적으로 만든 사고방식도 그렇다. 북에서는 대한민국 정부가 이승만이 친일파와 합작한 정권이기 때문에 수용할 수 없고, 순수 우리 민족에 의한 정권이 민족 전통을 계승하는 정부라고 주장해왔다.

이런 습성과 정치의식이 합쳐져 마치 개인과 가문이 원수를 갚아야 하듯이 국가 간의 적대세력을 타파·극복하는 것이 국가적 의무라고 착각한다. 원수를 갚지 못하면 개인과 가문의 도리가 아니듯이 적대세력을 완전히 극복하지 못하면 국가 간 협력과 공동가치 추구는 불가능하다는 사고방식이다.

「 아직도 친일파 운운하는 사람들
흑백논리·파벌의식의 깊은 뿌리
과거 원한에 사로잡힌 한국정치
여야다툼에 젊은 세대만 희생양

지금 우리도 그런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해방 후부터 한·일관계는 시련을 거듭해 왔다. 문재인 정부가 되면서 항일을 애국이고 친일은 반국가적 행위라는 해방 이전까지의 선입견 때문에 막대한 국가적 손실을 보았다. 젊은 세대와 자유 세계를 위한 희망도 훼손되었다. 박정희 정권 때는 국가 간의 보상 문제가 있었고, 김대중 정부에서는 평화적 화해와 양국의 협력을 협약하기도 했다. 물론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된 것은 아니지만 세계사의 흐름과 함께 아시아의 희망을 되찾기 원했다.

위안부 문제가 지금까지도 끝나지 못했는데 문 정부 때 제기된 미쓰비시 회사와의 강제징용 문제가 다시 미해결 과제로 남게 되었다. 문 정부의 정치관에 따른다면 해결될 길이 열리지 못한다. 원수를 다 갚지 못하면 미래로 나갈 수 없다는 사고방식이다. 그런 방향으로 국민까지 유도해 가는 방법을 택했다. 그 점에서는 일본 아베 정권도 마찬가지였다. 보상은 이미 끝났기 때문에 일본에는 자기네 선택이 있을 뿐이라고 맞섰다.

두 잘못된 지도자 때문에 두 나라 국민의 고통과 피해가 얼마나 컸는가. 그대로 계속된다면 그 후유증과 불행의 결과를 누가 어떻게 해결할 수 있겠는가. 역사는 언제나 미래를 위한 현재의 선택을 원하며 양국 간의 문제는 세계의 평화와 인류의 자유를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을 망각하거나 배제해서는 안 된다.

위안부 문제는 인권의 문제다. 인권의 문제는 경제적 보상 여하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역사적 진실을 세계와 인류에게 알리는 일이다. 일본이 어떤 태도를 취하는가는 그 국민의 도덕적 수준에 속한다. 진실을 알린다는 것은 역사적 죄악이 무엇이며 다시는 그런 범죄를 저질러서는 안 된다는 의무와 호소이다. 대한민국은 그런 범악을 저지르게 해서도 안 되며 그런 가능성을 만들어서도 안 된다는 자기반성의 책임자다. 진실을 알린다는 의무는 여전히 남아있다. 위안부 문제를 둘러싸고 진행되어 온 국내문제는 더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미쓰비시 회사의 강제징용 문제가 과거 양국관계에서 어떻게 처리되었는지 국민은 잘 모른다. 이런 문제는 한 회사와의 문제이기 이전에 국가 간의 문제다. 나와 내 친구들은 학도병으로 전선에 끌려가 많은 젊은이가 목숨을 잃었다. 그 문제는 왜 다루지 않는가. 비슷한 사건은 수없이 많았다. 어떤 정권이 국내 문제를 위해 80년 전의 사건을 문제 삼았다는 오해를 받아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는 평화와 미래 얘기해야

아베 정부는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수출규제로 보복했다. 우리는 경제적으로 막중한 피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두 나라 정상이 역사와 세계정세의 미래를 어떻게 보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젊은 세대들의 장래와 아시아와 세계역사의 희망을 어둡게 만들고 있다. 21세기의 지도자답지 못했다. 과거를 미래로까지 연장하려는 정치를 반성하고 극복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미래를 위하는 정치이고 자유의 가치는 평화와 인간의 가치 창출을 위한 소중한 의무이다. 과거를 지키기 위해 미래를 포기하며 큰 결실을 위해 작은 것을 버리지 못하는 민족과 국가에는 희망이 없다.

지금 우리 정당과 정치인들의 자세를 보면 국내 문제까지 과거의 원한에 붙잡혀 새로운 희망을 찾지 못하고 있다. 구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젊은 세대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있는가. 오늘의 분열과 싸움이 그대로 계승·연장되는 대한민국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더불어민주당에는 미래가 없고, 국민의힘은 새로 태어날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집안싸움도 해결하지 못하는 정치계가 국제 문제를 이끌어 갈 수 있을까 걱정이다.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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