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주행 트럭 첫 상용화, 엔비디아 제친 AI 반도체... 세계 1위 도전 스타트업들

임경업 기자 2023. 1. 10. 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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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무대의 혁신기업들] [2] 세계 1위에 도전한다
퓨리오사의 반도체 ‘워보이’ - 지난달 28일 서울 강남구에 있는 반도체 설계 스타트업 퓨리오사AI 연구실에서 백준호(가운데) 대표와 직원들이 자사 AI(인공지능) 전용 반도체 ‘워보이’가 장착된 기판을 바라보며 웃고 있는 모습. 워보이는 퓨리오사AI가 세계시장을 겨냥, 약 6년에 걸쳐 독자 개발한 것이다. /오종찬 기자

지난달 28일 오후 국내 자율주행 스타트업 마스오토의 11.5t 트럭이 세종시 이마트24 물류센터를 출발해 경부고속도로에 진입하자마자 운전자가 자율주행 버튼을 눌렀다. “자율주행을 시작합니다.” 음성 안내가 나오자 운전자는 핸들과 페달에서 손발을 모두 뗐다. 전방에 다른 차가 끼어들자 트럭은 안정적으로 속도를 줄였고 좌우 방향지시등을 켜는 것만으로도 차선을 알아서 바꿨다. 경남 양산까지 약 250㎞를 달리는 동안 기계가 운전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트럭은 자연스럽게 운행했다.

마스오토는 세계 최초 자율주행 트럭 상용화에 도전하는 창업 5년 차 토종 스타트업이다. AI(인공지능) 전공 20대 청년 두 명이 1000만원짜리 중고 1t 트럭 한 대로 시작한 회사는 올해 1분기 중 대형 트럭 14대로 인천~부산 간 자율주행 화물 운송 서비스를 시작한다.

세계적으로도 자율주행 트럭 유상 운송을 상용화한 곳은 아직 없다. “무겁고 큰 트럭은 조작이 까다롭다”는 이유로 트럭 자율주행 기술은 기피 대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스오토는 지난 2년간 테스트를 통해 누적 30만㎞의 데이터를 쌓았고, 실리콘밸리 유명 투자자들로부터 투자를 유치했다. 창업자 박일수(32) 대표는 “정속·연비 주행을 학습한 AI가 트럭을 운전했더니 연료비의 15%가 절감된다”고 했다.

과거 한국 벤처·스타트업들은 ‘패스트팔로어’로 불렸다. 독창적인 기술보다는 미국 같은 IT 강국의 기술과 트렌드를 답습해 “빠르게 추격한다”는 의미였다. “기술을 베꼈다”고 해서 ‘카피캣’이라는 조롱도 들어야 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독보적인 기술을 무기로 삼은 한국 스타트업들이 글로벌 1등 기업에 도전하고 있다. 이택경 매쉬업엔젤스 대표파트너는 “한국 창업의 새로운 붐이 일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28일 서울 강남구에서 만난 백준호(46) 퓨리오사AI 대표는 삼성전자에서 위탁 생산한 첫 번째 AI 전용 반도체 ‘워보이(Warboy)’를 꺼내 보였다.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 스타트업 퓨리오사AI가 독자 개발한 워보이는 2021년 9월 AI 반도체 성능 테스트 대회인 엠엘퍼프(MLPerf)에서 세계 최대 AI 반도체 회사인 미국 엔비디아 칩을 제쳤다. 워보이를 설치한 PC에서 프로그램을 구동하자 카메라가 사람과 물체를 실시간으로 구별해냈고, 스마트폰으로 영자책 사진을 찍으면 2~3초 뒤 페이지 전체가 번역됐다. 백 대표는 “이미지 분석에 특화된 반도체로, AI 기반 사진·영상 서비스와 자율주행에 강점이 있다”며 “경쟁사 제품 대비 성능이 2~3배 뛰어나다”고 말했다.

기술로 무장한 한국 스타트업들이 전에 없던 시장을 개척하거나, 기존 시장을 독점한 공룡 기업에 겁 없는 도전을 시도한다. AI용 반도체 시장 90% 이상을 장악한 미국 엔비디아나 수술 로봇의 절대 강자인 미국 인튜이티브 서지컬을 상대로 시장 경쟁을 벌이는 것이다. 배터리 스타트업인 스탠다드에너지는 폭발 위험성을 줄인 바나듐 이온 배터리를 개발해 거대 배터리 대기업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세계 1등에 도전할 시장을 찾아

리브스메드는 2019년 세계 최초 다관절 복강경 수술 기구 ‘아티센셜’을 내놓았다. 기존 복강경 수술은 한 대 수십억원인 다빈치 로봇만 가능했는데, 이를 대체할 수 있도록 의사가 직접 손에 들고 조작하는 기계식 수술 기구를 개발한 것이다. 창업자 이정주(48) 대표는 “로봇을 쓰면 수술비가 1000만원이 넘다 보니 전체 외과 수술의 3%만 로봇이 쓰인다”며 “우리 기구를 쓰면 로봇 수술보다 비용이 5분의 1 수준으로 줄어 나머지 97% 환자도 복강경 수술에 접근 가능하다”고 말했다. 싸고 안전한 수술 도구로 소문을 타면서 아티센셜은 54국 200개 병원에 제품을 공급했다.

스탠다드에너지는 기존 리튬 이온 배터리의 단점을 극복할 대안을 찾아 나선 스타트업이다. 이들이 개발한 티슈 통 크기의 ESS(에너지저장장치)용 배터리는 리튬이 아닌 바나듐을 주원료로 사용한다. 리튬 배터리는 테슬라 화재 사고와 같이 열폭주가 일어나 화재 위험이 크고, 원자재인 리튬을 중국·남미 일부 국가가 50% 이상 점유하고 있어 공급망 리스크가 있다. 반면 바나듐은 한국에도 매장된 흔한 광물인 데다, 물과 바나듐을 섞어 만들어 화재 위험이 거의 없다. 김부기(38) 대표는 “바나듐 배터리의 원리는 30년 전 나왔지만, 그동안 아무도 상용화에 도전하지 않았다”면서 “해외의 글로벌 에너지 기업과 제품 공급 계약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술 개발까지 평균 76개월

스타트업 4곳이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데 걸린 시간은 평균 76개월이나 된다. 스타트업이 수익 없이 고통을 견뎌야 하는 기간을 부르는 말,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를 6년 4개월이나 견딘 것이다. 퓨리오사AI도 창업 초기 ‘AI 반도체는 인텔이나 삼성전자나 만들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았다. 조지아공대를 나와 미국 반도체 기업 AMD·삼성전자를 거친 백준호 대표는 “개인 빚을 지고도 4개월 동안 직원들 월급을 못 준 적 있다”며 “그런데도 ‘AI 반도체의 시대가 온다’는 확신으로 모두 퇴사 없이 버텼다”고 말했다.

고려대 의대 인공심장 연구교수였던 리브스메드 이정주 대표는 교수를 그만두고 나와 창업했다. 첫째 아이 돌반지를 팔아 300만원을 마련해 특허를 등록하면서 사업을 시작했다. 카이스트 기계공학 박사 출신인 김부기 대표는 “석·박사 인력 30명을 포함해 100명이 넘는 팀원이 7년 8개월을 버텼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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