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서울 '역전세' 4만가구…"돈 못 돌려준대요" 비명 터진다

김원 입력 2023. 1. 5. 05:00 수정 2023. 1. 5.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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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시장 침체가 이어지는 가운데 강남권 아파트에서도'역전세난'이 발생하고 있다. 서울 강남구 대모산에서 바라본 강남권 아파트의 모습. 뉴스1


서울 서대문구의 한 아파트에 전세로 사는 40대 오모씨는 전세 계약 만료일을 3개월여 앞두고 걱정이 많다. 오씨는 2021년 6억원대에 전세 계약을 맺었는데, 최근 전세 시세가 4억원대까지 떨어졌다. 오씨는 “집주인이 2억원가량을 추가로 마련해야 전세보증금을 챙겨 나갈 수 있는데 집주인이 그럴 여력이 없다고 한다”고 말했다.

최근 서울 아파트 전셋값이 크게 떨어지면서 오씨 전셋집 사례와 같이 ‘역전세난’에 처한 경우가 늘고 있다. 역전세난은 전세 시세가 2년 전 전세계약 당시보다 하락해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전세보증금을 돌려주기 어려워진 상황을 가리킨다.

실제 4일 중앙일보가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을 통해 올해 전세 만기가 돌아오는 서울 아파트 13만2017건을 전수 조사한 결과 이런 역전세난을 겪을 수 있는 경우가 3만7774가구(28.6%)로 나타났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2021년 전세 계약 당시 보증금이 최근 3개월 내 동일 면적에서 계약된 전세보증금의 최고가보다 높거나 같은 계약 건을 집계한 것이다. 최근 3개월 내 계약이 없어 시세를 측정하기 어려운 2만4542건은 빠져 있는데, 최근 전셋값 하락세를 고려하면 역전세난에 처할 수 있는 서울 아파트는 4만건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또 앞으로 전셋값이 계속 하락할 경우 역전세난 아파트 규모는 많이 증가한다. 실제 전셋값이 지금보다 10% 더 하락한다면 역전세난 아파트는 전체의 39.6%인 5만2251가구로 늘어난다.

2021년 전셋값이 크게 올랐을 때 계약한 강남권 일부 아파트의 경우 최근 시세와 기존 전세보증금이 10억원 이상 차이를 보이는 사례도 있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 반포힐스테이트 전용 155㎡(19층)는 2021년 11월 36억원에 전세 거래됐는데, 최근 실거래가는 24억원 수준이며, 전세 최저 호가도 25억원까지 떨어졌다. 이 추세가 유지된다면 이 집주인이 신규 전세 계약을 맺어 기존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줄 경우 추가로 12억원을 마련해야 한다. 같은 지역 아크로리버파크 전용 178㎡(19층)도 2021년 10월 52억원에 전세 계약을 맺었는데, 최근 계약 가격와 전세 최저 호가 모두 40억원이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특히 2021년 높은 전셋값을 지렛대로 ‘갭 투자(투자 목적으로 전세를 끼고 아파트 매수)’에 나섰던 이른바 ‘영끌족(영혼까지 끌어모았다고 표현할 정도로 가능한 모든 대출을 통해 아파트 매수)’이 역전세난으로 인해 보증금을 제대로 반환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서대문구(35.3%), 성북구(35.2%), 금천구(32.9%) 등 영끌족의 매수세가 상대적으로 활발했던 서울 외곽지역에서 역전세난 상황에 놓인 아파트 비율이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한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이들은 말 그대로 ‘영끌’을 했기 때문에 전세보증금을 내주기 위해 추가로 돈을 마련하는 건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전셋값을 돌려주지 못할 상황에 부닥친 집주인들이 급하게 집을 처분할 가능성도 큰데, 빠른 거래를 위해 시세보다 낮은 가격에 급매물을 쏟아내면 집값 하락세가 빨라질 수 있다고 예상한다. 서진형 경인여대 MD비즈니스학과 교수는 “역전세난이 투매 등으로 이어져 집값 급락의 뇌관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최근 서울 아파트 매물은 5만 건 수준(아실 집계)을 유지하고 있는데, 월 평균 3000건이 넘는 역전세난 계약 만기 아파트가 매매 시장으로 나올 경우 집값 추가 하락은 불가피하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또한 세입자에게 내줄 보증금을 마련하지 못한 채 계약 만료 시기를 맞는 집주인이 늘어날 가능성도 크다. 이럴 경우 세입자는 보증금 확보를 위해 법원에 임차권등기명령을 신청할 수 있다. 대법원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 임차권등기명령 신청 건수는 4822건으로 2021년(3226건)보다는 49.4% 급증해 2012년(3592건) 이후 10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부동산 업계에서는 임차보증금 반환 소송과 강제 경매가 올해 크게 늘 것으로 보고 있다.

법률사무소 임률의 김규엽 변호사는 “최근 전세보증금 반환 관련 상담이 크게 늘어 일주일에 2건 이상씩 들어온다”며 “반환 청구 소송부터 실제 경매 낙찰까지 1년이 넘게 걸릴 가능성이 높아 세입자의 피해는 가중된다”고 말했다. 정부도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 최근 잇달아 내놓은 부동산 시장 연착륙 방안도 규제 완화, 거래 활성화를 통해 역전세난 문제를 해소하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담겨있다.

김원 기자 kim.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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