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국은 달라도 우리는 한국인

김휘원 기자 2022. 12. 31.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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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귀화자들의 새해 소망
왼쪽부터 아제르바이잔 출신으로 경찰대에서 박사과정을 밟는 빌탈레(30)씨, 베트남 출신으로 의료통역사로 일하는 안승희(49)씨, 미얀마에서 온 배우 지망생이자 한국어 강사인 박지아(27)씨, 방글라데시 출신 충북 음성군 공무원 방대한(47)씨. 태어난 나라는 각기 다르지만, 이들 모두 귀화해 우리 국적을 얻은 어엿한 한국인이다. “대한민국을 누구보다 사랑한다”는 이들은 제2의 고향인 우리나라에서 크고 작은 새해 소망을 품은 채 내일 2023년을 맞는다. /신현종·장련성 기자

아제르바이잔 출신인 빌라로브 탈레(30)씨는 지난 23일 오랫동안 꿈꿔왔던 한국인이 됐다. 충남 아산에서 경찰대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그는 한국 이름을 ‘빌탈레’로 정하고 ‘아산 빌씨’의 시조가 되면 어떨지 고려하고 있다. 그의 새해 소망은 “당당한 대한민국 공무원이 되는 것”이다. 어린 시절 알게 된 한국어 선생님을 통해 한국이란 나라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그는 “앞으로 남은 내 삶, 그리고 내 미래 자손들의 삶도 모두 이 땅에서 일구어 갈 테니 대한민국이 더 나은 나라가 되길 바란다”며 “여기에 기여할 수 있는 경찰이 되고 싶다”고 했다.

2023년은 우리나라가 더 성숙한 다문화(多文化) 사회로 본격 진입하는 원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현재 우리나라엔 200만명이 넘는 외국인이 체류하고 있다. 매년 1만명 이상이 귀화한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법무부는 2023년 외국인 국내 이주 정책을 도맡을 ‘이민청’을 만들 채비를 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도 외국인 근로자가 국내에서 체류할 수 있는 기간을 기존 4년여에서 10년으로 늘리는 제도 개편을 준비한다. 다양한 문화와 언어를 가진 이들이 골고루 녹아든 미국·프랑스 등을 ‘멜팅 포트’(melting pot·일종의 용광로)라 부르듯, 이런 변화들을 거치며 우리나라도 2023년 성숙한 ‘K멜팅 포트’ 사회로 향하는 첫걸음을 내딛게 될 전망이다.

경찰을 꿈꾸며 공부하는 빌탈레씨 등 이미 다양한 배경을 가진 평범한 사람들이 우리 사회 곳곳에 녹아들고 있다. 본지는 당당한 한국 사회의 일원으로 전국 곳곳에서 꿈을 좇아 살아가고 있는 이들을 잇따라 만나, 계묘년(癸卯年) 새해 이루고픈 소망들을 물어봤다.

방글라데시에서 태어난 방대한(47)씨는 지난 5월 대한민국 공무원이 됐다. 방글라데시에서 태어났지만 12년 전 귀화한 그는 다른 한국인들과 똑같은 채용 절차를 거쳐 충북 음성군 소속 환경미화원이 된 것이다. 1996년 처음 한국에 온 이후 공장일이나 물건 판매 등 다양한 직업을 거쳤다. 그랬던 그가 미화원 시험에 도전한 이유는 다른 한국 아이들과 사뭇 다른 외모를 가진 아이들이 학교에 가서 아빠의 직업을 ‘공무원’이라며 자랑스레 소개하길 바랐기 때문이다. “새벽같이 일어나 눈 비 맞고 하는 일이지만 특근수당 꼬박꼬박 나오고 60세까지 정년이 보장되는 이 직장에 수백번 감사하며 지낸다”는 그는 “오후 3시에 퇴근하고 집에 가면 여섯 살, 아홉 살 두 자녀가 날 맞아주는 게 최고의 행복”이라고 했다. 그는 새해 소망으로 “내년 초2가 되는 딸아이가 학교에서 차별받는 일이 아예 없어지길 바란다”면서 “점점 나아지는 우리 사회 모습에 희망을 갖는다”고 했다.

미얀마 출신인 박지아(27)씨는 대전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하는 미얀마 사람들에게 무료로 온라인 한국어 강의를 하고 있다. 그는 “한국을 민주화의 ‘롤 모델’로 생각하고 한국에 오고 싶어 하는 미얀마 사람들이 많아 이들을 돕고 싶다”면서 “미얀마에선 월소득이 평균 20만짯(약 12만원) 안팎인데 한국어 학원비는 한 달 30만짯이 넘어 엄두도 내지 못하는 학생이 많다”고 했다. 미얀마에서 법대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하던 박씨는 우연히 지금의 한국인인 남편을 만나 결혼한 것을 계기로 2019년 입국했다. 지난 2월 국적을 얻었다. 그는 자신이 만든 온라인 한국어 강의를 들은 사람만 지난 1년 동안 2000명이 넘는다고 했다. 한국에서 배우의 꿈을 꾸고 있는 그는 “새해 더 많은 미얀마 사람이 한국에 와 일하고 공부하며 이곳을 제2의 고향으로 삼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베트남에서 태어나 2012년 귀화한 안승희(49)씨는 서울의 한 병원에서 일하는 ‘의료통역사’이면서 방송통신대 학생이자, 철원에서 군 복무를 하는 큰아들과 고등학생 둘째 아들을 키워 낸 엄마다. 현재 그는 베트남 여성들이 병원에서 출산할 때 통역을 해주면서 이들을 지원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는 새해 방통대 학위를 마치고 졸업장을 받는 게 꿈이다. 그 뒤 공공기관에서 상담사로 일하는 걸 목표로 잡았다. 귀화 이후 그는 지난 10년간 계속 검정고시를 보면서 공부를 해왔다. 한국에 처음 와 일자리를 구하려 할 때마다 졸업장을 요구했는데, 학력을 못 갖췄던 게 줄곧 아쉬웠다고 했다.

안씨는 또 하나의 소망으로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빌었다. 특히 그는 “큰아들이 대한민국을 지키겠다며 그 추운 철원에서 군 생활을 하고 있는데, 나도 물론 대한민국을 사랑하지만 사실 저 힘든 군 생활이 끝났으면 한다”며 엄마의 속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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