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화 “영화 ‘영웅’ 주인공? 제가 할 줄 몰랐어요” [쿠키인터뷰]
안중근(정성화)이 결연한 표정으로 노래를 시작한다. 동지들과 눈밭에서 네 번째 손가락을 자르며 부르는 노래다. 감정에 따라 표정도, 목소리도 바뀐다. 단순히 노래를 잘 부르려는 노래를 아니다. 명성황후가 시해당한 이후 설희(김고은)가 부르는 노래도, 중근의 어머니 조마리아(나문희)가 편지를 쓰며 부르는 노래도 마찬가지다. 그 순간 감정과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노래에 실려 보낸다. 안중근의 말이나 행동보다, 그가 느낀 감정과 표정이 더 오래 남는다.
영화 ‘영웅’(감독 윤제균)은 아는 사람은 아는, 익숙한 안중근 의사의 이야기를 새롭게 만들었다. 뮤지컬 형식 덕분이다. 원작 뮤지컬을 영화로 옮기며 배우 정성화가 함께 합류했다. 14년 전부터 뮤지컬 ‘영웅’을 9시즌이나 소화한 대표 배우다. 지난 13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정성화는 2017년 윤제균 감독에게 ‘영웅’ 영화화 이야기를 처음 들었다고 했다. 이후 업계에서 ‘영웅’ 소식이 들리기 시작했다. 그때만 해도 본인이 영화 주연을 맡을 거라 생각지 못했다.
“처음엔 영화 ‘영웅’ 주인공을 제가 할 줄 몰랐어요. 언젠가 다른 배우가 하면 도와주려고 생각했죠. 어느 날 윤제균 감독님에게 전화가 왔어요. 사무실에 가니 대본을 읽으라고 하셨어요. 살을 뺐으면 좋겠다는 말도 하셨고요. ‘영웅’ 출연은 소중한 기회였어요. 창작 뮤지컬을 하는 배우들은 대부분 작품이 영상화되길 원하거든요. 두렵기도 했어요. 내가 영화를 잘못 찍어서 원작 뮤지컬까지 잘못되는 것 아닐까 싶어서요. 딱 한 가지 생각밖에 없었다. 잘 해내야 한다는 생각이요.”
뮤지컬 무대에서 수없이 했던 연기, 그리고 노래. 하지만 영화에선 달랐다. 뮤지컬은 무대에서 먼 관객까지 감정과 표정을 전달하는 게 중요했지만, 영화는 가까운 위치의 카메라로 전달되기 때문에 과장하지 않아야 했다. 노래를 라이브로 녹음하는 경험도 특별했다.
“뮤지컬 배우는 큰 홀을 채워야 하는 의무가 있어요. 아무리 목소리를 작게 내도 뒷자리까지 닿아야 하거든요. 그래서 연기도 크게 하고요. 영화 ‘영웅’에선 연기를 작게 하는 것이 가장 큰 숙제였어요. 연기하는 매 순간이 큰 화면에 담길 텐데 어떻게 하면 디테일하게 할까 고민했습니다. 잠깐이라도 다른 생각을 하거나 진실하지 않게 표현하면 들키니까요. 노래를 부르는 것도 달랐어요. 뮤지컬에선 오케스트라 사운드와 마이크로 정제된 목소리가 전달되지만, 영화 현장에선 그렇지 않거든요. 카메라를 가까이 대고 제 모습을 클로즈업으로 찍으면서 노래 연습을 했어요.”
이젠 정성화를 뮤지컬 배우로 아는 대중이 많다. 그만큼 긴 시간 뮤지컬 무대에서 활약한 덕분이다. 하지만 정성화는 코미디언 출신인 걸 숨기지 않는다. 지금도 영화를 찍으면서 “너무 웃기고 싶었다”고 털어놨다. 코미디언에서 뮤지컬, 다시 영화를 영역을 옮기는 것 모두 “나에게 걸맞는 걸 찾는 과정”이었다.
“코미디언들은 희극 연기를 한다고 생각해요. 희극 연기는 모든 연기의 상위개념이거든요. 다른 연기를 잘해야 희극 연기도 잘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코미디언을 한 이력이 있으니까 정극 연기할 때 여러 가지로 도움이 돼요. 코미디언은 고등학생 떄부터 하고 싶었어요. 막상 해보니까 잘 맞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죠. 군대 다녀와서 SBS 드라마 ‘카이스트’를 만났지만, 그마저도 맞지 않는 옷이란 생각이 들었고요. 그러다가 뮤지컬을 만났죠. 정말 설레더라고요. 연습실이 가고 싶었고, 공연장에 가고 싶었어요. 사람이 아무리 절실해도, 하고 싶은 사람과 즐기는 사람을 못 이겨요. 그동안 했던 모든 직업 중에 제가 가장 즐기는 직업이 뮤지컬 배우 같아요.”
지난 21일 개봉한 영화 ‘영웅’은 한주 먼저 개봉한 영화 ‘아바타: 물의 길’(감독 제임스 카메론)과 정면 대결 중이다. 쉽지 않은 싸움이지만 정성화는 “‘아바타: 물의 길’도 훌륭하고 멋진 영화고, ‘영웅’도 훌륭하고 멋진 영화”라며 “대한민국 5000만 관객의 취향은 다양하다”고 말했다.
“‘아바타: 물의 길’이 압도적으로 이길 거란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았어요. 우리도, 그들도 잘 될 거예요. 전 그냥 모든 게 신기하고 감사해요. 모든 리스크를 안고 그동안 영화에서 조연, 단역을 하던 배우를 주연으로 올려주셨잖아요. 꿈에도 그리던 뮤지컬 영화에 출연하는 것, 그것도 ‘영웅’이란 모든 것이 신기하고 고맙습니다. 마치 누군가가 상을 주는 느낌이에요. ‘영웅’이 한국관객들에게 믿음을 주면 앞으로 뮤지컬 영화 만들어질 계기가 될 거거든요. 제가 미약하게나마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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