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K반도체] ④ 디커플링 맞서 '자립 생태계' 조성중인 중국

조준형 입력 2022. 12. 5. 05:01 수정 2022. 12. 5.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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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견제에도 비메모리는 이미 강자…메모리도 YMTC 등 韓 추격
중국 반도체 굴기 (PG) [김민아 제작] 일러스트

(베이징=연합뉴스) 조준형 특파원= "높은 수준의 과학기술 자립·자강 실현을 가속화하고, (중략) 관건적 핵심기술 공방전에서 결연히 승리해야 한다."

지난 10월 16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3연임 '대관식' 무대였던 제20차 공산당 전국대표대회에서 한 말이다.

미국의 고강도 제재를 받는 반도체 분야를 염두에 둔 발언으로 결기 가득한 어조에서 볼 수 있듯 중국은 미국의 전방위 견제 속에 설계, 생산, 사용을 아우르는 '반도체 자립 생태계'를 구축하려 애쓰고 있다.

시 주석은 2014년 6월 '국가반도체산업 발전 촉진 강요'를 발표하고 2015년 5월 핵심 메모리칩을 연구해 국가반도체 역량을 높이는 '중국제조2025' 전략도 제시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 때부터 화웨이에 대한 첨단 반도체 공급을 막은 것을 시작으로 중국 반도체 성장을 누르기 위한 압박의 강도를 높여 나가면서 중국의 자급 구상은 난관에 봉착했다.

미 상무부는 지난 10월에도 중국에 첨단 반도체 장비 수출을 사실상 금지하는 조치를 내놨다. 첨단 반도체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는 디커플링이 미국의 의도라는 게 중국의 인식이다.

중국 최대 반도체 업체 SMIC [EPA.연합뉴스 자료사진]

중국 정부는 2025년까지 반도체 자급률을 70%까지 높인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30% 이하에 그친 현재로서는 목표 달성이 무리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지난해 중국의 반도체 수입액은 3천500억 달러로 중국 전체 수입액의 13%를 차지하며 금액 기준으로 원유와 전체 농산물 수입액보다도 많았다.

하지만 중국 사정을 잘 아는 전문가들은 반도체 개발의 역사를 포괄적으로 조명해보면 지금 드러난 것으로 중국의 반도체 굴기 노력을 실패로 규정하는 것은 속단이라고 지적한다.

중국의 정부 주도 반도체 육성은 199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화훙, 화징 등 반도체 국유기업들을 내세워 도약을 꾀했으나 효율이 떨어지자 2000년대 들어 세금 감면과 보조금 혜택을 줘서 반도체 생태계를 인위적으로 조성해보려는 노력이 있었다. 이른바 '18호 문건(소프트웨어산업과 집적회로산업의 발전을 독려하기 위한 약간의 정책·2000년 6월) 체제'다.

중국을 대표하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 SMIC(中芯國際)가 이 정책의 대표적 수혜자다.

그러나 미국이 2004년 부당한 특혜라며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했고, 결국 중국은 해당 지원책을 철회했다.

이후 다시 반도체 굴기의 신발 끈을 조인 것은 2011년 일명 '4호 문건(소프트웨어와 집적회로산업의 발전을 더욱 격려하는 약간의 정책)'이 나오면서부터다. 뒤이어 '국가반도체산업 발전 촉진 강요'와 대기금이 나왔다.

이 체제가 과거와 다른 점은 민간 자본의 '저수지'를 만든 점과 중국 내부에 자국산 반도체를 소화할 굴지의 전자 산업군이 형성된 점이다.

화웨이 [연합뉴스TV]

국유기업과 보조금을 앞세웠던 과거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지만, 지금은 자본시장을 육성해 반도체 산업에 민간이 투자하게 하고, 전방 산업과 연계함으로써 자생가능한 생태계를 만든 것이다.

반도체 국산화율과 기술 확보만으로 중국의 반도체 굴기 시도가 실패했다고 단정하기 어려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중국에서 활동하는 반도체 투자 전문가 이병덕 SL캐피털 이사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과거 부동산 등으로 가던 기업의 잉여자금을 반도체에 가도록 하는 틀을 만들고 전방의 전자 산업과 후방의 반도체 산업이 함께 가는 구조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2014년 '국가반도체산업 발전 촉진 강요'와 대기금의 목표는 어느 정도는 이뤘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 이사는 "중국의 반도체 굴기 정책은 과거 만성적 기술개발 및 투자자금 부족에 시달리던 반도체 업계에 글로벌 기업들과 경쟁할 수 있는 수준의 장기적 자금 조달 루트를 만들어 주었고, 화웨이, 샤오미, BYD 등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제조사들의 상품 기획 노하우를 전수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 줬다"고 부연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은 미국의 제재로 메모리 반도체 분야의 도약에 제동이 걸렸음에도 비메모리 분야의 강점을 앞세워 전 세계 파운드리 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여가고 있다.

시장 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SMIC, 화훙그룹, 넥스칩 등 중국 기업들은 올해 1분기 세계 파운드리 시장에서 합산 점유율 10.2%를 기록해 삼성전자(16.3%)에 6.1%포인트 차로 따라붙었다. 중국의 국산 반도체 수요 증가로 중저가 반도체를 만드는 중국 팹리스 기업들의 실적이 증가하면서 이를 도맡아 생산하는 중국 파운드리 업체들의 실적이 좋아진 것이다.

이런 가운데, 중국 내 선두주자인 SMIC가 미국의 제재에도 7나노 공정을 개발해 생산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한국이 강점을 가진 메모리 반도체 부문에서는 낸드플래시 제조사인 YMTC(長江存儲)와 창신메모리(CXMT) 같은 중국 메모리 반도체 업체들이 이제 본격적인 양산 체제에 들어가면서 한중 직접 경쟁 구도를 예고했었으나 최근 미국의 제재로 한국 기업 입장에서는 한 숨을 돌린 상황이다.

그러나 애플이 미국의 수출통제로 보류하긴했지만 아이폰 14부터 YMTC의 낸드플래시 탑재를 추진했던 점은 한국 업계가 경각심을 늦출 수 없는 이유다.

2018년 반도체공장 시찰 중인 시진핑 국가주석 [우한 신화=연합뉴스 자료사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8년 4월26일 우한의 반도체기업 우한신신(XMC·武漢新芯)을 방문하고 있다.

미중 전략경쟁 격화와 동시에, 중국의 반도체 자립체계 구축 노력이 심화하는 상황은 현재 한국의 최대 반도체 시장인 중국을 경쟁적 존재로 변화시키고 있다.

이병덕 이사는 "이제 우리 기업들도 중국을 단순 제품 수출 시장으로만 봐서는 중국 기업들과 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렵다고 본다"며 "중국의 자본 시장과 생태계를 활용해서 중국 시장에 진출하는 '이이제이'의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jh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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