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 이상민·윤희근은 정말 몰랐을까?

김현재 2022. 11. 2.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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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현장서 불과 90m 거리의 이태원 파출소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김현재 논설위원 = 이태원 파출소는 이태원역 3번 출구 바로 앞에 있다. 참사는 1번 출구 해밀턴 호텔 옆 골목에서 발생했다. 파출소에서 사고 현장까지는 직선거리로 90m도 채 되지 않는다.

지난달 29일 오후 6시34분 첫 112 신고 전화는 "해밀톤 호텔 그 골목에 이마트24 있잖아요. 그 골목이 너무 불안하거든요. 그니까 사람이 내려올 수 없는데 계속 밀려 올라오니까 압사당할 거 같아요"였다. "사람들이 밀치고 난리가 나서 막 넘어지고 다치고 하거든요"(8시9분), "압사당하고 있어요. 아수라장이에요. 아수라장"(8시53분), "지금 대형사고 나기 일보 직전이다. 통제하셔야 할 것 같다"(9시), "진짜 사람 죽을 것 같아요"(9시2분) 그 뒤로도 신고 전화는 계속됐고 끔찍한 사고는 10시가 조금 지나 발생했다. 경찰 병력 1개 중대가 한 시간 전, 아니 30분 전에만 현장에 도착해 통행로를 확보했더라면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태원 파출소 직원이 경찰 내부망에 올린 글을 보면 사고 당시 근무 인원은 20명가량이었다고 한다. 전체 직원 62명이 1일 4교대로 근무해 '1시점 근무' 인원은 15∼16명 일 텐데 상황이 급하니 인력을 추가 배치한 모양이다. 파출소에는 112 상황실장도 나와 있었다고 한다. 통상 112 신고가 들어오면 해당 파출소나 지구대로 이첩하는데 이날 오후 6시부터 10시까지 접수된 총 79건의 신고가 이태원 파출소에 몰렸다. 파출소에서 맨눈으로 봐도 상황이 20명 인력으로는 통제 불능인 것을 금방 알았을 것이다. 게다가 신고 전화도 폭주했다. 한 경찰 중견간부는 "그런 상황이라면 파출소장이나 상황실장이 본서에 지원 경력을 요청하지 않았을 리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왜 지원 경력은 도착하지 않았을까. 여기서부터가 의문이다.

그날 오후 서울시청 주변에서는 윤석열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집회와 이재명 민주당 대표 구속을 촉구하는 집회가 동시에 열렸다. 특히 수만 명(주최 측 추산)이 참가한 윤 대통령 퇴진 촛불집회 참가자들은 저녁 8시 10분께 용산 대통령실 인근 삼각지역까지 행진한 뒤 해산했다. 서울 경찰청 경비병력 대부분은 시위 현장과 시위대 이동 동선에 배치돼 있었고 특히 대통령실을 관내에 둔 용산서 경력은 초긴장 상태로 시위대 해산 전후 과정을 통제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용산경찰서장은 어떤 선택을 했을까? 112 신고 내용이나 이태원 파출소의 다급한 지원 요청 목소리를 상부인 서울경찰청과 경찰청으로 보고나 했을까? (이 부분은 경찰이 조사한다고 했으니 지켜보자) 설령 전달이 됐다 해도 경찰 수뇌부가 과연 다른 선택을 했을까? 이태원 쪽 사정이 급하니 시위대는 놔두고 그쪽으로 경찰력을 이동시키라는 지시를 했을까 말이다. 우리 경찰에게 야구장·축구장·축제 등 인파 급증에 대비한 혼잡경비와 집회·시위 경비 중 어느 것이 우선하느냐는 질문은 우문(愚問)이다. 건국 이후 우리 경찰은 항상 후자에 무게를 둬 왔으니 말이다. 내부망에 글을 올린 파출소 직원이 "핼러윈 2주 전 열린 대책 회의에서 기동대 경력 지원을 요청했으나 윗선에서 거절했다"고 한 말의 함의가 이것일 게다.

정말 궁금한 것은 따로 있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1일 회견에서 "사고 발생 직전 현장의 심각성을 알리는 112 신고가 다수 있었던 것을 확인했다"며 투명하고 엄정하게 사안의 진상을 밝혀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책임을 묻겠다고 했다. 참사 발생 이후 내내 조용하다가 사흘이 지난 뒤에야 이런 발표를 한 이유가 뭘까? 112 신고 내용을 뒤늦게 보고받았다는 얘기인가, 아니면 더는 숨길 수 없다고 판단해서였을까? 고생한 일선 경찰에게 책임을 미루는 듯한 발표를 한 것은 판단력 부족일까, 자리보전 욕심 때문이었을까?

더 기막힌 것은 국가 안전을 총괄한다는 이상민 행안부 장관의 참사 이후 발언이다. 그는 30일 "특별히 우려할 정도의 인파가 모인 것은 아니었다. 경찰 소방력 대응으로 사고를 막을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다"고 했다. 그가 사전에 이태원의 다급한 상황을 보고 받았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전대미문의 참사가 발생한 이후에 윤 대통령의 핵심 측근으로 알려진 그가 경찰 수뇌부로부터 사고 전말을 보고 받지 않았을 리 없다. (만약 받지 못했다면 경찰이 그를 왕따시킨 것이니 문제가 더 심각하다) 112 신고 내용 녹취록을 보고도 그가 이런 말을 했다면 그 이유가 뭘까?

SBS가 공개한 지난달 30일 자(참사 다음 날) 경찰청 정보국의 '정책 참고자료'에서 어렴풋이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문건엔 "진보성향 단체들은 세월호 사고 당시 정부의 대응 미비점을 상기시키거나 지난 정부의 핼러윈 대비 조치와 올해를 비교하는 카페글·카톡·지라시 등을 공유하며 정부 성토 여론 형성에 주력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 장관은 이번 참사가 '좌파의 선동'으로 윤석열 정부를 위태롭게 할 가능성을 가장 우려했던 것으로 보인다. 추모 분위기 조성과 정쟁 자제를 강조한 여권, "경찰의 정확한 사고 원인이 나오기 전까지 섣부른 예측이나 추측, 선동성 정치적 주장을 해서는 안 된다"는 이 장관의 발언은 그런 점에서 맥이 통한다. 그런데 어쩌랴. 정보국의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윤 대통령 퇴진 '촛불행동'은 "11월 5일로 예정됐던 13차 집회를 '이태원 참사 추모 촛불 집회'로 진행한다"고 했다. 검찰 수사로 궁지에 몰린 이재명 대표의 민주당 또한 이 '호기'를 놓칠리 만무하다. '막을 수 있었던 인재'가 아닌 '불행한 사고'로 넘어가고 싶었던 이 장관과 경찰 수뇌부의 시도는 숨길 수 없는 팩트 앞에 좌초됐다. 오히려 그릇된 판단과 발언이 정쟁의 복판에 서버렸다. 그들은 정말 이리될 줄 몰랐을까?

kn020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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