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PF
국내 부동산 시장은 ‘선분양 후시공’ 방식이 일반적이다. 부동산을 짓기 전에 먼저 판다. 그런데 선분양을 해도 부동산을 지을 땅을 살 자금과 사업 진행비는 필요하다. 그래서 부동산 사업의 ‘꽃’으로 불리는 프로젝트 파이낸싱(Project Financing)을 찾는다.
PF는 신용이나 담보가 아닌 사업성이 대출 근거다. 해당 시행사가 지을 부동산 가치가 얼마일지를 ‘저마다의 기준’으로 평가한다. 금융업체별로 PF 금액이 달라질 수 있는 이유다. 투자 성향이 강한 만큼 수익은 일반 대출보다 많다.
우선 대출금이 수백억원에서 수조 원에 이르는 데다 이자도 연 10%를 웃돈다. 해당 부동산이 잘 팔려서 ‘대박’이 나면 대출 조건에 따라 30%가 넘는 이익을 얻을 수도 있다. 대신 위험성이 크다. 완공 후에도 해당 부동산을 다 팔지 못하면 이자는커녕 원금 회수도 어려울 수 있다.
최근 ‘레고랜드 사태’로 시끌벅적하다. 강원도가 지급 보증을 선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2050억원을 갚지 않겠다고 해서다. 시장은 그야말로 ‘멘붕’이다. 국가가 빚을 갚겠다는 약속을 어길 수도 있다는 충격은 채권시장을 꽁꽁 얼리고 있다. 금융권은 PF를 꺼리고 새 PF나 차환이 필요한 업체는 자금줄이 막힌다. 이들 업체가 쓰러지면 금융업체는 부실채권을 떠안고 휘청이게 된다. 줄도산 위기다.
지금 상황이 낯설지 않다. 1997년 외환위기(IMF) 때와 비슷하다. 당시 경상수지 적자, 높은 금리, 텅 빈 외화 곳간 등 징후는 많았지만 국가부도 신호탄은 ‘한보 사태’였다. 재계 14위 대기업이었던 한보는 정계 유력인사 동원해 5조여 원을 빌렸다. 제철소를 짓겠다는 명분으로 대출받은 PF다. 감사 결과 2000억원을 제외한 나머지 자금의 행방은 묘연했다. 5조 부실 채권은 금융권을 자금 경색에 빠지게 했다.
2011년 ‘저축은행 사태’의 중심에도 PF가 있다. 그해에만 대출은행 16곳이 영업정지를 당했고 정부는 지금껏 27조여 원을 투입해 31개 부실 저축은행을 정리했지만, 회수한 금액은 13조여 원에 불과하다. 당시 부산저축은행은 예금의 절반인 4조여 원을 각종 PF에 쏟아부었고 뇌물·비자금 조성 등에 이용했다. 이미 ‘제2의 IMF’ 징후는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여야 정치 공방을 벌일 때가 아니다. 또다시 국가부도라는 고통과 치욕을 겪을 수는 없다.
최현주 금융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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