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이 옳았다.. 공든 탑 무너뜨리는 윤석열 정부 [전강수의 경세제민]
부동산 정책 전문가이자 토지정의 운동가인 대구가톨릭대학교 경제금융부동산학과 전강수 교수가 경제정의와 부동산 문제에 관해 정론을 피력하고 그때그때 부각하는 경제 이슈를 해설하는 '전강수의 경세제민'을 연재합니다. '경세제민'은 세상을 잘 경영해 국민을 편안히 한다는 뜻으로 썼으며 이 말을 줄인 것이 '경제'이기도 합니다. 필자는 대한민국이 해방 후 농지개혁으로 잠시 실현했던 '평등지권 사회'를 회복하기를 꿈꿉니다. <편집자말>
[전강수 기자]
▲ 2008년 9월 2일 과천청사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 청와대 |
이명박 전 대통령은 취임 직후 규제 혁파를 명분으로 도로 중간에 설치되어 있던 전봇대를 뽑는 '이벤트'를 벌인 다음 종합부동산세(이하 종부세) 무력화 작업에 착수했다. 노무현 정부의 잘못된 부동산 정책을 바로잡는다는 취지였다.
이명박 정부는 수개월간 야당·시민단체와 공방을 벌이다가 2008년 11월 헌법재판소가 종부세법 일부 조항에 대해 위헌 및 헌법불합치 판정을 내린 것을 계기로 종부세 무력화를 단행했다. 과세 대상자는 대폭 감소했고, 세 부담은 크게 경감되었다. 노무현 정부가 추진하던 부동산 보유세 과표 현실화 정책도 중단되고 말았다.
이명박 정부의 종부세 무력화 시도를 지켜보던 서울대 경제학과의 이준구 교수는 2008년 9월 '슬픈 종부세'라는 제목의 칼럼을 써서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했다. 주지하듯이 이 교수는 국내 최고의 재정학자다.
그런 그에 따르면 종부세는 장점이 많은 세금이다. 부동산 가격 안정이라는 면에서 그 어떤 규제보다도 효과적이고, 고소득자에 비해 중산층이 상대적으로 무거운 조세를 부담하는 전체 세제의 불공평성을 획기적으로 보완하며, 세무사를 동원해 봤자 납세액을 줄일 수 없고, 세수 전체를 지방자치단체에 이양해 지자체 간 재정 능력의 격차를 줄인다.
이준구 교수는 칼럼에서 종부세가 이처럼 많은 장점을 갖고 있음에도 언론과 정부에 의해 동네북 신세를 면치 못하는 '슬픈 운명'에 처했다고 토로했다.
종부세의 역사적 의의
사실 이명박 정부의 종부세 무력화는 장점이 많은 세목 하나를 유명무실하게 만드는 차원을 넘어서는 일이었다. 한마디로 그것은 한국 부동산 정책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는 엄청난 잘못이었다.
1960년대 말 이후 한국 사회에서는 10년을 주기로 부동산 투기 광풍이 불었다. 부동산 투기의 해악을 목도한 정치인들과 학자들은 투기의 원인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론은 보유세가 너무 가볍고,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기에는 구멍이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보유세를 무겁게 해서 투기적 보유에 드는 비용이 많이 들도록 하지 않으면 부동산 투기를 근절하기 어렵다는 판단이었다.
보수 정권이었던 노태우 정부가 1989년 6월 종합토지세를 도입한 데는 이런 판단이 크게 작용했다. 종합토지세 도입 이후 보유세를 강화하고 거래세를 완화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보유세는 토지세를 중심으로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 상식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종합토지세를 도입한 후에도 부동산 보유세의 부담은 여전히 가벼웠다. 그래서 노태우 정부 이후 노무현 정부까지 보유세 강화는 반드시 추진해야 할 중요한 정책 과제로 인식되었다. 노태우 정부와 김영삼 정부는 중도에 좌절하기는 했지만 과감한 과표 현실화 정책을 추진했고, 김대중 정부는 경제 위기 극복에 매달려 제대로 유지하지는 못했지만, 경제정의 실현을 위해 토지보유세를 강화하겠다는 방침을 천명했다.
노무현 정부는 이전의 세 정부가 제대로 성과를 내지 못한 보유세 강화 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임기 초반에는 과표 현실화를 통해 보유세를 강화하다가, 2005년에 종부세를 도입했다. 종부세는 소수의 부동산 과다 보유자를 대상으로 했지만, 보유세 강화 정책의 견인차 역할을 톡톡히 수행했다.
종부세 제도가 정착되면서 보유세 실효세율은 점차 올라갔고, 이용할 생각 없이 부동산을 보유할 경우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인식이 국민들 사이에 확산되었다. 드디어 부동산 투기를 근절할 수 있는 제도적 환경이 마련되었던 셈이다.
노무현 정부는 종부세라는 새로운 세목을 도입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전체 보유세가 점진적으로 강화되어 갈 수 있도록 장기적인 과표 현실화 계획을 만들어 법률에 명기했다. 조세저항이 심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납부 거부 운동이 벌어질 정도는 아니었다.
▲ [그래프] 이명박 정부의 종부세 개편 이후 세수의 변화 |
ⓒ 전강수 |
이명박 정부는 이렇게 중대한 역사적 의미를 갖는 세금을 무력화시키고 말았으니, 이에 대해서는 '부동산 정책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렸다'는 평가 외에는 달리 할 말이 없다. 위 '그래프'는 이명박 정부가 종부세를 개편한 이후의 세수 변화를 보여준다. 전체 세수가 크게 줄었을 뿐 아니라 세수 구성에 큰 변화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노무현 정부 당시 세수가 가장 많았던 주택분 종부세가 개편 후 꼴찌로 밀려난 것이다.
한때 1조 2000억 원을 초과했던 주택분 종부세의 세수도 2000억~3000억 원 수준으로 대폭 줄어들었다. 이 세수 구성은 수도권에서 주택 투기 바람이 불기 시작한 2016년까지 이어졌다. 만일 노무현 정부 때의 종부세법이 그대로 유지되었다면, 강남에서 시작되어 서울과 수도권을 집어삼킨 작금의 부동산 투기 광풍을 크게 완화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우왕좌왕하다 종부세 왜곡시킨 문재인 정부
문재인 정부는 이명박 정부가 거꾸로 돌려 버린 수레바퀴를 다시 앞으로 돌아가게 할 역사적 책무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출범 후 3년이 지나도록 문 정부는 보유세 강화 정책을 회복하는 일에 미온적이었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부동산값이 폭등하고 있었음에도 그저 '핀셋 규제'와 '찔끔 증세'로 일관했다. 시장을 적당히 마사지하는 것, 그것이 문재인 정부의 정책 목표인 듯 보였다. 그러나 우리를 뛰쳐나온 '괴물'과도 같은 투기 광풍이 그 정도 대책으로 잠잠해질 리가 없었다. '부동산값 상승률은 역대 정부 최고', '풍선효과는 역대 정부 최다'라는 비판이 빗발쳤다.
▲ 문재인 정부는 2020년 7·10대책 발표를 계기로 규제지역과 다주택자를 대상으로 취득세, 양도소득세, 종부세를 모두 중과하는 유례없는 정책을 추진했다. |
ⓒ 권우성 |
종부세는 부동산 보유가액을 기준으로 일률 누진과세 하는 것이 이상적이었음에도, 문 정부는 주택 수를 기준으로 차등과세 하는 방식을 강화했다. 즉, 다주택자에게 적용하는 중과세율을 인상한 것이다. 여기에는 '1주택자 = 실수요자, 다주택자 = 투기꾼'이라는 프레임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어떤 방식이든 차등과세는 자원 배분을 왜곡하고 형평성 시비를 불러일으킨다. 예컨대 20억 원짜리 주택 한 채를 가진 사람에 비해 10억 원짜리 주택 두 채를 가진 사람에게 훨씬 더 무거운 세금을 부과한다면, 형평성 시비를 피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결과적으로 크고 비싼 주택이 필요 이상으로 많이 공급되는 자원 배분의 왜곡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아니나 다를까, 문재인 정부의 새로운 정책에 따라 2021년분 종부세가 부과되자 곳곳에서 불만과 원망이 터져 나왔다. 특히 세 부담의 형평성과 관련한 비판은 치명적이었다.
주택 보유가액이 같은데도 한 채 가진 사람과 두 채 가진 사람의 종부세액에 엄청난 차이가 발생한다든지, 이사 가려고 새집을 산 후 기존 집이 팔리지 않았거나 상속을 받았거나 하는 바람에 일시적 2주택자가 된 사람들에게 '살인적인' 종부세가 부과됐다든지, 법인으로 등록했다는 이유로 협동조합 주택이나 공동체 주택에 감당키 어려운 종부세가 고지됐다든지 하는 사례가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는데, 이런 기사들의 상당수는 실제 상황을 반영하고 있었다. 모두 문재인 정부의 미숙한 정책 추진이 초래한 부작용이었다.
한마디로 문재인 정부 5년 동안의 부동산 조세정책은 '왔다 갔다 정책', '우왕좌왕 정책'이었다. 우왕좌왕하다가 집값도 안정시키지 못하고 과세방식의 문제점도 노출했으니 민심이 떠나가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정권까지 내주고 말았으니 문 정부가 부동산 정책에서 저지른 잘못은 참으로 뼈아픈 것이었다.
▲ 윤석열 대통령이 7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제10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 연합뉴스 |
주택 수 기준의 차등과세를 가액 기준 일률 과세로 전환한다든지, 1주택자 주택 수 판정 기준을 개선해 일시적 2주택자나 상속 주택 소유자가 상대적으로 과중한 종부세를 부담하지 않도록 한다든지, 고령자나 장기 보유자를 대상으로 납부 유예 제도를 시행한다든지 하는 것들은 합리적인 범주에 속하는 정책들이다.
문제는 정책의 기조다. 윤석열 정부는 종부세와 관련해서 이명박 정부의 뒤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 과세 기준을 상향해 과세 대상자를 축소하고, 주택분 종부세 세율을 인하하고, 공정시장가액 비율을 낮춰서 과표 금액을 줄이고, 다주택자에게 적용되는 세 부담 상한을 인하하는 등 종부세 부담과 관련된 모든 요소를 다 건드리며 전방위적 완화를 도모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 가운데 법률 개정이 필요 없는 공정시장가액 비율 인하는 국무회의를 통과해 이미 시행에 들어갔고, 나머지 사항도 밀어붙일 기세다. 윤석열 정부의 의도대로 종부세법이 개정된다면, 과세 대상자와 세수가 격감했던 2009년의 상황이 재현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될 경우, 앞으로 언젠가 2016년 이후와 똑같은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보유세 실효세율 통계의 유효성
보유세 정책과 관련하여 한 가지 '팩트 체크'할 사항이 있다. 국민의힘은 대선 공약집에서 부동산 세제를 '정상화'하겠다면서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동산 관련 세금 징수액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최상위권"이라고 진단했다.
이는 부동산 시장만능주의자들이 보유세 강화정책을 흠집 내기 위해 오래전부터 동원해온 수법으로서 매우 고약한 통계 활용 방식이다. 보유세액을 사용해야 하는 자리에 '부동산 관련 세금'을 넣어 계산함으로써 현실을 호도했으니 하는 말이다.
부동산 관련 세금에는 보유세뿐만 아니라 거래세도 포함된다. 한국에서 거래세액이 큰 이유는 부동산 거래가 다른 나라에 비해 빈번하기 때문이다. 보유세액을 넣어서 계산하면 한국의 GDP 대비 보유세 비율은 OECD 국가 중에서 최상위권이 아니라 평균 수준이다. 향후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면 이 비율은 다시 OECD 평균 수준 아래로 떨어질 것이다.
다른 나라에 비해 부동산 가격이 월등하게 높은 한국의 경우, GDP 대비로 보유세 부담을 계산하면 과대평가 문제가 발생한다. 그래서 보유세 부담은 실효세율(보유세액/부동산가액)로 따져야 정확하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보유세는 재산세이므로 분모에 부동산 가액을 넣는 것이 자연스럽기도 하다.
국민의힘 일각에서는 부동산 시가 총액의 추정 방법에 국가별 차이가 있다는 이유로 '세계 어디에서도 쓰지 않고 국제비교도 할 수 없는 엉터리 통계'라고 실효세율 통계를 폄훼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이 통계를 활용한 분석은 이미 여러 건 나왔고 또 각국의 부동산 시가 총액은 OECD가 제시한 가이드라인에 따라 추계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아무 근거도 없는 무책임한 비난이라고 해야 한다.
보유세 실효세율을 기준으로 볼 때 한국은 0.17%(2020년 기준)로 관련 통계를 보고한 OECD 15개국 평균 0.27%에 미달한다. 15개국에 포함되지 않은 미국(1.1%)과 비교하면 한국의 보유세 부담은 1/6~1/7 수준이다. GDP 대비 '부동산 관련 세금'의 비율이 높다는 이유로 보유세 강화 정책을 추진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에는 일말의 근거도 없는 셈이다.
이명박 정부가 종부세를 무력화하려고 할 때 당시 민주당 의원들은 결연한 자세로 막아섰다. 처음에 아예 세목 자체를 없애려고 했던 이명박 정부는 나중에 뒤로 물러섰는데, 여기에는 이용섭 양승조 등 민주당 의원들의 활약이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이번에는 민주당의 자세가 그때와는 크게 달라서 걱정이다. 이미 민주당 주도로 1주택자의 과세 기준을 9억 원에서 11억 원으로 올려서 과세 대상자를 축소했고, 지난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부동산세 완화 공약으로 부동산 소유자의 환심을 사려는 자세를 노골적으로 드러냈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이 알아서 물꼬를 터주는 해괴한 짓을 하지는 않으리라 생각하지만, 눈 부릅뜨고 지켜볼 일이다.
"모든 정치문제의 저변에는 부의 분배와 관련된 사회문제가 존재한다. 우리 국민들은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돌팔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이 돌팔이들은 질병을 근본적으로 치유하는 데는 관심이 없고 증상을 고치겠다는 약속만 내뱉는다. '투표로 좋은 사람을 뽑자.' 돌팔이들의 말이다. 좋다. 새 꼬리에 소금을 뿌려서 새를 잡자!"(35쪽)
"대중은 개혁을 시스템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단지 사람이나 정당을 바꾸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정치에는 어린아이에 불과한 대중은 실제로는 깊고도 일반적인 원인이 있는 사회현상을 나쁜 사람들이나 악한 정당 탓으로 돌린다. 미국의 양대 정당은 다른 정당과 싸워 정권을 유지하거나 빼앗는 것 말고는 주장할 수 있는 일이 사실상 없다."(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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