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 계약하면 샤넬백 드려요" 역전세난이 부른 진풍경

김원 입력 2022. 10. 3. 00:01 수정 2022. 10. 3. 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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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에 충남 천안의 한 아파트 집주인이 쓴 글이 최근 올라왔다. 자신의 전용면적 84㎡ 아파트 전세 계약을 하면 정품 샤넬 백을 주겠다는 글이다. 가방과 정품 박스 포장 사진까지 올려놨다. 이 아파트 해당 평형 전세보증금은 2년 전(2020년 말~2021년 초) 최고 4억9000만원까지 치솟았는데, 최근 전셋값이 떨어지면서 당시 시세 수준의 전셋값을 받기 어려워지고 전세 매물도 늘자 세입자를 구하기 위해 명품백을 내건 것이다. 이 아파트 전세 매물은 1년 전(9건)보다 3배(27건)로 늘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2일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전국 아파트 전셋값(9월 26일 기준)이 일주일 전보다 0.21% 하락했다. 이는 2012년 5월 둘째 주, 관련 조사가 시작된 이래 가장 큰 하락 폭이다. 올해 전국 아파트 전셋값 누적 변동률(주간 조사 누적 기준)은 -1.46%다. 지난해 같은 기간 7.17% 상승한 데 비해 하락세가 두드러진다. 지난주 수도권 전셋값은 0.28%, 서울은 0.18%, 경기도는 0.32% 떨어졌다. 수도권 아파트 전셋값은 올해 1월 말 하락 전환한 뒤 36주 연속 내림세다. 매물도 쌓였다. 이날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 아실에 따르면 전국 아파트 전세 매물은 17만472건으로 1년 전(8만4560건)의 2배(101.6%)로 늘었다.

2020년 8월 임대차2법(계약갱신청구권·전·월세 상한제) 시행 이후 2년 전 전셋값이 크게 올랐을 때 계약한 집주인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특히 높은 전셋값을 지렛대 삼아 갭 투자(거주 목적이 아닌 전·월세를 끼고 매매)한 집주인들은 금리 인상으로 인한 거래 절벽에 집값마저 내려가면서 집을 팔지 못하는 상황이다. 전셋값이 내리면서 세입자에게 오히려 보증금의 일부를 돌려줘야 한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금리 인상으로 이자 부담이 커지면서 전세 대신 월세를 선택하는 세입자가 늘어났다. KB국민은행이 산출한 전·월세 전환율은 ▶서울 3.24% ▶경기 4.05% ▶인천 4.59% 등 전세자금 대출 금리에 비해 많게는 2%포인트 이상 낮은 상황이다. 월세 수요가 늘자 전체 임대차 거래에서 월세가 차지하는 비중(대법원 등기정보광장)은 지난 4월 50.1%로 처음으로 전세 거래량을 추월한 뒤 8월 52.9%로 확대됐다.

서울 전세 시장은 지난달 들어 수요자 우위로 돌아섰다. KB부동산 기준 전세수급지수는 8월 108.9에서 9월 93.3으로 15.6포인트 떨어졌다. 전세수급지수가 기준선(100)보다 낮을수록 집을 구하려는 세입자보다 세를 놓으려는 집주인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입주 물량이 집중된 인천 서구, 수원 영통구 등의 지역에선 1년 사이 전세보증금 호가가 30%까지 하락하기도 했다. 전셋값 하락에 집값까지 내리면서 계약 만료 시 집을 팔아도 전세보증금을 내주지 못하는 ‘깡통 전세’ 위험도 커지고 있다. 서진형(경인여대 교수) 공정주택포럼 공동대표는 “이런 역전세난이 투매 등으로 이어져 집값 하락의 트리거(방아쇠)로 작용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권일 부동산인포 리서치팀장은 “‘깡통 전세’ 같은 부작용은 결국 전세대출 부실 등으로 이어져 금융시장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며 “부동산 시장 연착륙을 유도하기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원 기자 kim.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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