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명 총리와 함께한 최장수 여왕.."가장 부유했지만 늘 검소"
강성휘 특파원 2022. 9. 9. 02:43
[엘리자베스 여왕 서거]
20세 때 英 여자국방군 자원입대.. 26세 즉위, 신중한 정치적 목소리
다이애나빈 사망 땐 왕실폐지론 나와.. '노블레스 오블리주'로 권위 지켜내
한국 방문해 하회마을 찾기도.. 지난해 필립公 떠난 뒤 건강 악화
英 국민 "탁월했던 지도자 잃어"
엘리자베스는 스무 살 되던 1945년 조지 6세에게 “조국을 위해 봉사하겠다”고 밝힌 뒤 영국 여자국방군에 자원입대했다. 군번 ‘230873’을 달고 군용트럭 운전사로 복무했다. 이때 평생 반려자 필립 왕자를 만났다.
조지 6세의 건강이 악화된 1950년대 들어 엘리자베스는 왕실 행사를 대행했다. 1951년 10월 캐나다 미국 순방을 시작으로 영연방 국가를 돌아다니다가 이듬해 1월 조지 6세가 별세했다. 엘리자베스는 한동안 공적인 일에서 손을 놓고 부친을 애도하다 1953년 6월 전 세계 2500만 명이 TV로 지켜보는 가운데 웨스트민스터 성당에서 대관식을 치렀다. 공식 명칭은 ‘엘리자베스 2세, 신의 가호 아래 그레이트브리튼, 북아일랜드, 그리고 모든 소유지의 통치자, 영연방 수장이며 신앙의 옹호자’.
즉위 당시 대영제국의 위상은 무너졌으며 식민지들은 속속 지배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영국 내부도 복지국가를 지향하면서 왕실의 존재에 깊은 회의감을 갖기 시작했다. 왕실이 변하지 않으면 존속 자체가 위험한 상황이었다.
그는 영연방 국가들만이라도 돈독한 관계를 이어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1953년 11월부터 6개월간 순방했다. 호주와 뉴질랜드 순방은 영국 왕으로는 전례가 없었고, 인도에는 영국 군주로서 50년 만에 방문했다. 1977년 즉위 25주년에 35개국 영연방 지도자들이 축하연에 참석하는 결실을 얻었다. 1956년 총리 교체 시기에 보수당 해럴드 맥밀런을 차기 총리로 밀어붙이며 정치적 입지를 다지기도 했다. 1999년 4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초청을 받아 영국 국가 원수로는 최초로 3박 4일간 방한해 서울과 경북 안동 하회마을을 찾았다.
딸 앤 공주(72)는 평민 필립 대위와 결혼했다가 파경을 맞았다. 자식 넷 중 에드워드 왕자를 빼면 모두 이혼 경험이 있다. 2019년에는 앤드루 왕자가 아동 성범죄를 저지른 미국 억만장자 제프리 엡스타인이 소개한 10대 여성과 성관계를 가졌다는 의혹이 불거져 재판까지 받았다. 2020년 3월에는 해리 왕손(38)과 메건 마클 왕손빈(41) 부부가 왕실과의 불화 끝에 결별하며 미국 캘리포니아로 거주지를 옮겼다. 이 과정에서 해리와 형 윌리엄 왕세손(40)의 ‘형제 갈등’도 불거졌다.
이런 가족 문제에도 영국 사회에서 군주가 상징적 통치자 명맥을 잇는 것은 엘리자베스 여왕 덕분이었다. 그는 가장 부유한 여성에 속했지만 검소했으며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했다. 윈스턴 처칠부터 영국 총리 15명과 함께하며 신중하게 정치적 목소리를 냈다.
남편 잃은 상실감에 건강 악화
고령에도 활발하게 외교 및 사회 활동을 했지만 90세를 넘자 건강 문제가 주기적으로 발생했다. 2016년 크리스마스 무렵에는 연례행사처럼 들르던 별장에 가지 못할 정도로 기력이 쇠해 위독설(說)이 돌았다.
지난해 10월 12일에는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열린 영국 왕립군 출범 100주년 기념 예배에 처음으로 지팡이를 짚고 나타났다. 같은 달 20일에는 ‘휴식을 취하라’는 의료진의 권고에 따라 입원했다가 하루 뒤 윈저성으로 복귀했다. “여전히 건강 상태는 좋다”고 버킹엄궁은 밝혔지만 몸 상태가 예전만 못하다는 우려는 계속됐다.
지난해 4월 74년간 해로(偕老)한 남편 필립 공이 100세 생일을 두 달 앞두고 세상을 떠나자 여왕의 건강은 더욱 악화됐다. 여왕은 “삶에 큰 구멍이 생겼다”며 상실감을 드러냈다. 그 한 달 전에는 해리 왕손 부부의 “왕실에 인종차별이 있다”는 인터뷰를 듣고 큰 충격을 받아 왕실 명성이 잠재적으로 손상을 입을 것을 염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20세 때 英 여자국방군 자원입대.. 26세 즉위, 신중한 정치적 목소리
다이애나빈 사망 땐 왕실폐지론 나와.. '노블레스 오블리주'로 권위 지켜내
한국 방문해 하회마을 찾기도.. 지난해 필립公 떠난 뒤 건강 악화
英 국민 "탁월했던 지도자 잃어"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상징이자 최장수 군주로 사랑받은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은 제2차 세계대전이 절정일 때부터 무너져 가는 왕실의 중심을 바로잡고 여성 지도자로서 탁월한 리더십을 보였다.
완벽한 여왕으로서의 삶
1926년 4월 21일 태어난 엘리자베스는 부친 조지 6세가 왕위에 즉위한 10세 때 본격적으로 통치자 수업을 받았다. 제2차 대전 때는 대대로 왕의 여름 거처인 스코틀랜드 밸모럴성(城)과 윈저궁을 오가며 시간을 보냈다.
완벽한 여왕으로서의 삶
1926년 4월 21일 태어난 엘리자베스는 부친 조지 6세가 왕위에 즉위한 10세 때 본격적으로 통치자 수업을 받았다. 제2차 대전 때는 대대로 왕의 여름 거처인 스코틀랜드 밸모럴성(城)과 윈저궁을 오가며 시간을 보냈다.
엘리자베스는 스무 살 되던 1945년 조지 6세에게 “조국을 위해 봉사하겠다”고 밝힌 뒤 영국 여자국방군에 자원입대했다. 군번 ‘230873’을 달고 군용트럭 운전사로 복무했다. 이때 평생 반려자 필립 왕자를 만났다.
조지 6세의 건강이 악화된 1950년대 들어 엘리자베스는 왕실 행사를 대행했다. 1951년 10월 캐나다 미국 순방을 시작으로 영연방 국가를 돌아다니다가 이듬해 1월 조지 6세가 별세했다. 엘리자베스는 한동안 공적인 일에서 손을 놓고 부친을 애도하다 1953년 6월 전 세계 2500만 명이 TV로 지켜보는 가운데 웨스트민스터 성당에서 대관식을 치렀다. 공식 명칭은 ‘엘리자베스 2세, 신의 가호 아래 그레이트브리튼, 북아일랜드, 그리고 모든 소유지의 통치자, 영연방 수장이며 신앙의 옹호자’.
즉위 당시 대영제국의 위상은 무너졌으며 식민지들은 속속 지배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영국 내부도 복지국가를 지향하면서 왕실의 존재에 깊은 회의감을 갖기 시작했다. 왕실이 변하지 않으면 존속 자체가 위험한 상황이었다.
그는 영연방 국가들만이라도 돈독한 관계를 이어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1953년 11월부터 6개월간 순방했다. 호주와 뉴질랜드 순방은 영국 왕으로는 전례가 없었고, 인도에는 영국 군주로서 50년 만에 방문했다. 1977년 즉위 25주년에 35개국 영연방 지도자들이 축하연에 참석하는 결실을 얻었다. 1956년 총리 교체 시기에 보수당 해럴드 맥밀런을 차기 총리로 밀어붙이며 정치적 입지를 다지기도 했다. 1999년 4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초청을 받아 영국 국가 원수로는 최초로 3박 4일간 방한해 서울과 경북 안동 하회마을을 찾았다.
자손 걱정 컸던 어머니
여왕으로는 완벽에 가까웠지만 끊임없이 스캔들에 연루된 자손 문제로 항상 고민이 컸다.
찰스 왕세자(74)는 다이애나 왕세자빈(1961~1997)과 결혼했다가 불화를 일으켜 이혼했다. 다이애나 빈이 1997년 파파라치에게 쫓기다 자동차 사고로 세상을 떠나자 국민은 찰스 왕세자를 원망했고 왕실 폐지론도 나왔다.
여왕으로는 완벽에 가까웠지만 끊임없이 스캔들에 연루된 자손 문제로 항상 고민이 컸다.
찰스 왕세자(74)는 다이애나 왕세자빈(1961~1997)과 결혼했다가 불화를 일으켜 이혼했다. 다이애나 빈이 1997년 파파라치에게 쫓기다 자동차 사고로 세상을 떠나자 국민은 찰스 왕세자를 원망했고 왕실 폐지론도 나왔다.
딸 앤 공주(72)는 평민 필립 대위와 결혼했다가 파경을 맞았다. 자식 넷 중 에드워드 왕자를 빼면 모두 이혼 경험이 있다. 2019년에는 앤드루 왕자가 아동 성범죄를 저지른 미국 억만장자 제프리 엡스타인이 소개한 10대 여성과 성관계를 가졌다는 의혹이 불거져 재판까지 받았다. 2020년 3월에는 해리 왕손(38)과 메건 마클 왕손빈(41) 부부가 왕실과의 불화 끝에 결별하며 미국 캘리포니아로 거주지를 옮겼다. 이 과정에서 해리와 형 윌리엄 왕세손(40)의 ‘형제 갈등’도 불거졌다.
이런 가족 문제에도 영국 사회에서 군주가 상징적 통치자 명맥을 잇는 것은 엘리자베스 여왕 덕분이었다. 그는 가장 부유한 여성에 속했지만 검소했으며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했다. 윈스턴 처칠부터 영국 총리 15명과 함께하며 신중하게 정치적 목소리를 냈다.
남편 잃은 상실감에 건강 악화
고령에도 활발하게 외교 및 사회 활동을 했지만 90세를 넘자 건강 문제가 주기적으로 발생했다. 2016년 크리스마스 무렵에는 연례행사처럼 들르던 별장에 가지 못할 정도로 기력이 쇠해 위독설(說)이 돌았다.
지난해 10월 12일에는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열린 영국 왕립군 출범 100주년 기념 예배에 처음으로 지팡이를 짚고 나타났다. 같은 달 20일에는 ‘휴식을 취하라’는 의료진의 권고에 따라 입원했다가 하루 뒤 윈저성으로 복귀했다. “여전히 건강 상태는 좋다”고 버킹엄궁은 밝혔지만 몸 상태가 예전만 못하다는 우려는 계속됐다.
지난해 4월 74년간 해로(偕老)한 남편 필립 공이 100세 생일을 두 달 앞두고 세상을 떠나자 여왕의 건강은 더욱 악화됐다. 여왕은 “삶에 큰 구멍이 생겼다”며 상실감을 드러냈다. 그 한 달 전에는 해리 왕손 부부의 “왕실에 인종차별이 있다”는 인터뷰를 듣고 큰 충격을 받아 왕실 명성이 잠재적으로 손상을 입을 것을 염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성휘 특파원 yolo@donga.com
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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