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에서 '인간수업'까지.. 홍기천 감독의 특수분장 30년사
"'M' 땐 어려운 특수분장 많아"
"압박감 커..실패 용납 안 됐죠"
"'다모', 퓨전 사극 첫 시도 성공"
심장 뛰는 특수분장 기술도 개발
대본 중시..PD·시청자 입장 생각
'취화선'으로 칸 레드 카펫 밟아
"특수분장은 예술 세계..창조적 맛"
"특수분장·CG 결합하면 완성도 높아"
"일주일 안 하면 저도 손 굳죠"
"왕따 가장 힘들어..잠 못 자고 기관지도 상해"
"특수분장도 입찰로 해 모든 사람에게 기회를"
핼러윈 문화·노역 분장에 관심..'영화감독' 꿈
1980년대엔 특수분장이란 말 자체가 없었다. 특수분장 불모지였던 한국에서 홍기천(62) 특수분장감독은 영화 ‘혹성탈출’(1968)과 ‘프레데터’(1987)를 보며 독학으로 특수분장을 시작했다. 영화감독을 꿈꿨다.
미술을 전공하지 않은 그가 1987년 MBC에 분장사로 입사한 건 두 장의 사진 덕분이었다. 그 전엔 아크릴 가공업체에서 일했다.
“(한국 나이로) 서른 살에 늦깎이로 운 좋게 입사했어요. 영화를 좋아해 스태프를 해 보자 싶었죠. 배우 최진실 매니저였던 배병수와 어릴 때부터 친구였습니다. 같이 영화를 보러 다녔죠. ‘혹성탈출’을 많이 봤거든요. 하도 신기해 조각 연습도 하고 가면을 만들어 쓰고 사진 두 장을 제출했습니다.”
“선배들이 할 줄 모르니 날 시키는 거예요. 결혼한 지 몇 달 안 된 때였는데 회사에서 먹고 자며 밤새 연구했어요. 라텍스로 만들어 성공했죠.”
쥐와 관련한 일화도 잊을 수 없다.
“‘M’ 때 굉장히 어려운 특수분장이 많았어요. 의도한 대로, 실패 없이 됐어요. (드라마) 국장 하고 많이 싸웠죠. 너무 무섭다고요. 심은하 배에서 아기가 발광하는 게 있는데 결국 삭제됐어요. 그 아기도 직접 만들어 심은하 배에 붙인 거고요.”
홍기천(62) 특수분장감독은 드라마 ‘동의보감’(1991), ‘납량특집 M’(1994)과 함께 ‘다모’(2003), ‘뉴하트’(2007∼2008)를 대표작으로 꼽는다. 홍 감독은 “‘다모’는 처음 시도한 퓨전 사극이었다”며 “후배 한 명과 분장, 특수분장을 다 해서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맨 처음엔 ‘뉴하트’를 우습게 생각했어. 의학 드라마를 많이 해 봤으니까. 대본 보니 그게 아니야. 심장을 움직여야 하는데 손으로 하니 아파서 몇 시간 동안 할 수가 없는 거예요. 박홍균 PD에게 일주일만 시간을 달라 했죠. 그래서 공기로 할 생각을 했는데 풍선으로 하니 안 되더라고요. 그러다 우연치 않게 골무로 공기를 줬다 안 줬다 하니 되는 거예요.”
대본을 중요시하는 것, 그만의 작업 원칙이다.
홍기천(62) 특수분장감독은 국내 방송 특수분장의 대부다. 홍 감독 손을 거친 드라마는 150편 정도, 예능도 100편이 넘는다. 방송만 한 건 아니다. 2002년 영화 ‘취화선’ 분장을 맡아 칸국제영화제 레드 카펫을 밟았다. 뮤지컬 5편의 분장도 했다.
2016년 MBC에서 정년 퇴임한 뒤에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tvN ‘화유기’, 넷플릭스 ‘인간수업’ 등을 했고 가장 최근엔 프랑스 영화 ‘고요한 아침’의 특수분장을 맡았다. 우크라이나 출신 프랑스 배우 올가 쿠릴렌코가 주연을 맡고 ‘페이지 터너’(2006) 드니 데르쿠르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작품이다. 올가을 한국에서 촬영했다. 유연석이 형사로 나온다.
그는 “외국 감독에게 인정받아 기쁘다”며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에 감동을 느끼더라”고 덧붙였다.
◆“후배들 노력 안 해…하루 3시간 이상 연습해야”
특수분장은 그야말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이다. 홍기천(62) 특수분장감독의 좌우명이 ‘손과 머리로 무에서 유’인 이유다. 홍 감독은 “창조적인 맛이 특수분장의 매력”이라고 말한다.
“분장은 크게 뷰티, 분장, 특수분장으로 나뉘어요. 특수분장은 특수한 행위로 입체적으로 표현하는 겁니다. 노역 분장이나 상처 분장, 사극의 수염은 색칠만 해서는 효과가 나지 않잖아요. 특수분장을 컴퓨터 그래픽(CG)이나 시각특수효과(VFX)로 대체하면 안 되냐 하지만 너무 비싸서 안 돼. CG가 보통 1초에 2000만원이거든요. 노역 분장이라든가 긴 장면은 아날로그 특수분장이 효과가 나요. 올해 미국 아카데미(오스카) 시상식에서 분장상을 받은 ‘밤쉘’ 카즈 히로도 다 직접 분장한 거예요. CG의 장점은 배경이죠. 특수분장과 CG는 결합됐을 때 완성도가 가장 높아요.”
그는 “지식이 많아도 자기 안에만 가둬 두면 소용없다. 자료가 많다 보니 후배들이 노력을 안 하고 자기 것으로 만들지 않는다”면서 꾸준한 연습을 강조했다.
“우리 때보다 지금 애들이 더 늦어요. 그 당시엔 책도 없고 배울 데가 없었어요. 오로지 집념으로 독학해야 했죠. 회사에 들어가도 가르쳐 주지 않아요. 어깨너머로 보는 거지. 재료도 알아서 찾아야 했어요. 지금은 자료가 너무 많으니까 언제든 자료 보면 되는 줄 알고 연습을 안 해요. 뭐든지 손에 익어야 하잖아요. 특수분장도 잘하려면 하루에 3시간 이상은 해 봐야 하거든요. 재료비 부담은 있지만 (과거와 달리) 어떤 재료를 어떻게 써야 한다는 게 있어서 재료 손실이 없죠.
◆“한두 회사가 드라마·영화 잠식…입찰 제도 도입해야”
의도한 대로 관객이나 시청자들에게 전달됐을 때 가장 뿌듯하다. 그는 “특수분장은 그 장면에 맞는지가 가장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업계 현실에 대해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수많은 사람이 특수분장에 도전하는데 의외로 수요가 별로 없어요. 입찰 제도가 없어 다 인맥으로 하거든요. 인맥 없는 사람은 끝이에요. 한두 회사가 영화에 드라마까지 잠식하고 있어요. 그런 점이 가장 잘못된 것 같아요. 입찰로 해서 모든 사람에게 공정한 기회를 줬으면 좋겠어요. 미국 같은 경우는 조각 잘하는 사람에게 조각을 맡기고, 실리콘 잘하는 사람에게 실리콘을 맡기는 식으로 분산을 해 줘요. 그래서 골고루 일하고 전문 분야가 되는 거예요. 한국은 자기네만 독식해서 얘들에게 박봉을 주고 부려 먹으려 해요. 시스템이 잘못된 거지. 후배들이 그 많은 재료비를 들여 공부하는데도 기회가 한 번도 없습니다. 특수분장 업체만 50개가 넘어요. 일이 없으니 대부분 학원을 차리거나 핼러윈 데이 때 분장을 하고 있는 거죠.”
영화감독의 꿈도 이루고 싶다.
“그동안 시나리오를 두 편 썼어요. 하나는 20년도 더 됐는데 봉준호 감독 ‘괴물’과 비슷했고, 다른 하나는 2002년에 쓴 건데 ‘아빠와 크레파스’라고 유전자 공학 이야기입니다. 인간이 손대면 안 될 유전자에 손대는 바람에 가정이 파괴되는데 해피 엔딩으로 끝나요. 이걸 영화로 한번 해보고 싶어요.”
박진영 기자 jy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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