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한국적인 것 묻자, 봉준호 답변은 '부조리'..신선했다"
29일 미국서『필름스 오브 봉준호』출간
“봉준호 감독에겐 일관되게 한국사회를 관통한 눈이 있죠. 세월호 참사가 터졌을 때, ‘괴물’이 소환됐듯이. 그 희생자 가족들을 정부나 기관들이 대하는 태도가 ‘괴물’ 속 가족을 대하는 태도와 똑같았다는 거잖아요. 말도 안 되는 부조리한 이야기, 한국사회를 관통하는 시선이 그의 영화엔 있죠.”
29일 미국에서 『필름스 오브 봉준호(Films of Bong Joon Ho)』(럿거스대학 출판부)를 출간하는 이남(60) 채프먼대 영화과 부교수가 22일 전화 인터뷰에서 들려준 말이다. 그에 따르면, 영화진흥위원회가 10년쯤 전에 펴낸 영문판 한국 감독 시리즈를 제외하고 미국에서 나온 봉준호 관련 첫 전문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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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 작가 시절부터 '기생충'까지
한국에서 일간지 기자와 영화평론가로 활동한 그는 이번 책에 봉 감독이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하던 시절부터 ‘기생충’ 신드롬까지 일대기와 작품세계를 아우르고, 현지 독자들을 위해 한국의 사회‧역사적 맥락까지 짚어냈다.
그는 “가장 힘들었던 건 봉 감독이 새 영화를 자꾸 만드는 것이었다”며 웃었다. “2013년 ‘설국열차’ 개봉 때 한국에 가 조사를 시작해서, 2017년 첫 원고를 마감했는데 그때 ‘옥자’가 넷플릭스 이슈와 연관돼 화제가 됐어요. 미국은 학술서적 검토 과정이 오래 걸리거든요. ‘옥자’를 보완해서 원고 검토하는데 ‘기생충’이 칸 황금종려상을 탔고, 결국 다시 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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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가장 한국적인 것? 부조리"
Q : 학자로서 왜 봉준호 감독을 단행본 주제로 택했나.
A :
“2009년부터 채프먼대에 한국영화 수업을 개설했는데 미국 학생들이 제일 좋아하는 감독이 봉준호였다. 나도 1980년대를 살아온 사람으로서 80년대가 한국영화에 어떻게 재현되는지 관심을 갖고 소논문도 썼는데, 봉 감독 영화들이 맞아떨어졌다. ‘살인의 추억’은 범죄영화지만 거기 초점을 둔 게 아니라 왜 형사들이 실패할 수 밖에 없는가를 80년대 자체를 무대로 그렸다. ‘괴물’은 대중 장르 속에 운동권, 386세대 등 80년대적인 아이콘과 광주민주화항쟁이 연상되는 은유들을 만들어낸 게 흥미로웠다. 또 2011년 봉 감독을 채프먼대에 초청했을 때 ‘한국적인 것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그가 한마디로 ‘부조리’라고 답한 게 굉장히 새로웠다. 우리 세대는 한국적이라면 전통문화, 한의 정서 이런 것들을 생각해왔잖나. 한국 갈 때마다 봉 감독이 시간을 내줘서 책을 쓰며 서너 번 더 인터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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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은 철학적, 봉준호는 사회학적
Q : 미국에선 봉준호 영화의 무엇에 주목하나.
A : “한국적 현실에 뿌리 두지만, 영화적 재미가 뛰어나다는 점이다. 할리우드 장르 법칙은 주로 미국적인 사고방식에 맞아떨어진다. ‘해피엔딩’도 개인이 노력하면 뭐든 이뤄낼 수 있다는 미국식 낙관주의가 큰 틀이다. 그런데 봉준호 영화나 한국 대중영화에선 아무리 노력해도 오히려 실패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봉 감독은 기존의 장르 관습들을 자유자재로 깨며 갖고 논다. 할리우드 영화에 익숙한 이들에겐 이런 장르 혼합이 예상을 뒤엎는 전개가 된다. 아카데미 수상이 화제가 되면서 한국영화를 별로 본 적 없는 미국 교수들과 ‘기생충’을 보러 갔는데 ‘할리우드는 왜 이런 영리한 영화를 못 만드냐’는 성토의 장이 열렸다(웃음).”
Q : 책에서 박찬욱 감독에 대해 ‘스타일로 작가의식을 드러낸다’고 소개한 반면 봉 감독의 영화는 ‘정치적 블록버스터(political blockbuster)’라고 명명했다.
A : “두 감독 다 장르 영화를 하지만 박 감독의 영화가 양식화된 스타일을 추구하고 철학적이라면 봉 감독은 자연스러운 미학을 추구하고 매우 사회학적이다. 봉준호 영화가 최근 국제적으로 어필하는 이유 중 하나다. 한국은 IMF 외환위기 이후 소위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질서와 정책들의 선봉에 서게 됐잖나. 한국에서 밀도 있게 겪는 문제들이 글로벌화하면서 미국을 비롯해 세계 관객이 공감하는 문제가 됐다. ‘기생충’이 보여주는 계급 양극화, 중산층 몰락, 약자와 약자끼리 치고받고 싸워야 하는 슬픈 현실이라든가.”
Q : 그간 지켜본 봉준호 영화의 변화라면.
A : “‘기생충’까지 7편의 장편 전체가 봉 감독 인생 전반기를 규정하는 작품들이 아닌가 한다. 다만 ‘살인의 추억’은 군사독재체제, ‘괴물’은 미국과의 불평등한 관계, 이런 시스템이 눈에 보이는데 ‘기생충’에선 보이지 않는다. 박사장네 가족이 기존의 부자처럼 악인으로 그려지지 않은 이유는 재벌 3세랄지 시스템을 대변하는 사람이 아니라 몰락한 기택네와 같은 중산층, 뿌리가 같았기 때문일 것이다. ‘기생충’에서 또 하나 새로운 건, 감정이란 요소에 눈을 돌렸다는 점이다. 기택의 폭발에 큰 작용을 하는 모멸감의 축적 과정을 통해 개인적인 감정에도 사회적 요소들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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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 선봉 한국 문제, 전세계 공감해
Q : 미국에서 한국영화를 연구하는 보람이라면.
A : “2000년에 유학 올 땐 (미국 대학에서) 한국영화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었다. 한국영화도 스크린쿼터 축소 등 어려운 시기였다. 근데 2005, 2006년쯤 세계영화사 교과서에 한국영화 꼭지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한국영화 강의가 정원을 늘리고도 대기자 명단이 있을 만큼 인기 있다. 그 성공의 덕을 나도 본 셈이다.”
Q : 주목하는 한국의 차세대 감독은.
A : “최근 좋게 본 영화들에 여성감독이 많다. 윤가은 감독의 ‘우리집’, 이옥섭 감독의 ‘메기’, 김초희 감독의 ‘찬실이는 복도 많지’, 안주영 감독의 ‘보희와 녹양’도 좋았다. 여성감독들의 작은 영화에서 새로운 시도가 계속되는 것 같다.”
■ 봉준호 영화 속 사건의 공통적 방아쇠 ‘오인’
「
이남 부교수는 봉준호 영화 속 사건들을 추동하는 방아쇠로 ‘오인(Misrecognition)’을 꼽았다. “뭔가를 잘못 알아보는 것 때문에 내러티브가 추동된다. 모든 작품이 해당한다”면서다.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2000)는 주인공이 엉뚱한 개를 납치하는 바람에 소동이 생기죠. ‘괴물’은 강두(송강호)가 도망갈 때 남의 딸 손을 잡는 바람에 딸 현서(고아성)가 괴물에 납치당합니다. 이런 오인이 의도적인 게 아니었는데 ‘옥자’(K(스티븐 연)의 의도적 오역)에선 바뀌었어요. ‘기생충’은 적극적으로 오인을 유도해요. 극중 대사에 기우(최우식)가 다혜(정지소)한테 ‘pretend(~인 척 하다)’를 이용해서 영작해보자고 하잖아요. ‘기생충’의 세계에선 누구와 싸워야할지도 모르겠는 혼란, 도덕적 아노미 상태에서 어쩔 수 없이 약자끼리 싸워 살아남아야 하죠.”
」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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