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부대 주변 술집 종업원이 망원 .. 한 해 정보비 600억 뿌려
군 내부 모든 유선전화 24시간 감청
장교·부사관 미행해 동영상 촬영
긍정적 내용은 보고서에 쓰지 않아
병사와 사이 좋으면 "상하관계 모호"
'김관진 국방장관 일부 인사 부적절'
기무사령관, 상관에 부정적 보고도
대통령까지 질타했던 기무사 ‘갑질’의 원천은 동향보고였다. 표면적으론 계엄령 문건 때문에 기무사가 해체에 이르게 됐지만 해체에 준하는 기무사 개혁을 부른 근본적 이유는 군 내부에서 ‘어둠 속의 권력’을 가능하게 했던 동향보고다. 동향보고는 부대 내 동향, 부대장·지휘관을 비롯한 장교·부사관·병사의 언행과 성향을 파악하는 임무다. 군내 용어인 ‘세평(世評)’도 동향보고의 하나다. 기무사 내부에선 ‘동향보고’나 ‘세평’ 대신 ‘신원조사’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군의 보안업무 규정에 따라 군 장병의 신원을 조사한다고 표현한다.
기무사가 신원조사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북한 때문이다. 북한이 대남 혁명화 전략의 하나로 군 내부에 공산주의 세력을 심는 것을 차단하는 방첩 업무의 일환이다. 동시에 국민 주권을 무시한 군 일부의 쿠데타 시도를 막는 대(對)전복 임무엔 신원조사가 필수적이라고 본다. 이를 위해 기무부대원 4200여 명이 국방부와 육·해·공군 곳곳에 배치돼 내부를 들여다보면서 보고서를 작성해 왔다.
신원조사의 항목은 충성심·성실성·신뢰성 등이다. 이 신원조사는 필요할 때 하는 게 아니라 365일 24시간 이뤄진다. 일선 장교나 병사들이 기무사의 신원조사를 감시나 사찰로 느끼는 이유다.
신원조사는 대상자의 주변 사람을 통해 정보를 얻는 득문(得聞)이 일차적이다. 군부대 주변의 음식점·술집이 기무사의 집중 관리 대상이다. 군 소식통은 “기무사의 1년 정보 활동비가 600억원을 넘는다”며 “종업원들에게 돈을 줘가며 망원(정보원)으로 삼는다”고 말했다. 이 소식통은 “특히 군부대의 훈련이 끝나는 날 기무사가 제일 바쁠 때”라며 “훈련 후 부대원끼리 뒤풀이가 많이 열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감청도 기무사의 주요 정보 취득 수단이다. 군의 모든 유선전화는 기무사의 24시간 감청 대상이다. 기무사는 3개월마다 대통령 승인을 받기 때문에 감청이 합법적이라는 입장이다. 현직 장교는 “얼마 전 친한 동기와 통화 중 대통령을 빗대 우스갯소리를 했는데 며칠 후 동기인 기무부대원에게서 ‘앞으로 말조심하는 게 좋겠다’는 충고를 들었다”고 말했다. 미행도 신원조사의 수단이다. 기무부대 출신 전역자는 “미행 대상자가 잘 보이는 장소에서 사진을 찍거나 동영상을 촬영한다”며 “대화를 엿들을 수 있는 옆 방을 빌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전직 국방부 당국자는 “오랜만에 동창 모임에 참석했다가 방산업계에 있는 친구를 우연히 만났다. 서로 근황을 물었는데 다음날 기무부대원이 찾아와 ‘방산 관계자와 무슨 얘기를 나눴느냐’고 물어봐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보고서는 비화 팩스를 통해 본부로 송신하거나 내부 전산망에 직접 입력한다. 각지에서 보낸 보고서는 기무사 서버에 ‘존안자료’로 저장된다. 본부의 정보융합실은 이를 대통령 또는 국방장관이 읽는 보고서로 재가공한다. 정보 소식통은 “수십 년간 저장된 기무사 존안자료는 양이 어마어마하다”며 “군 내부에선 ‘기무사엔 잠꼬대 소리도 기록돼 있다’는 농담도 돈다”고 말했다.
육군 장성 출신인 송영근 전 새누리당 국회의원은 사단장 시절 “술을 잘 마시는 지휘관이 일도 잘한다”고 말하곤 했다. 그는 나중에 기무사령관이 된 뒤 자신의 당시 발언이 적힌 보고서를 접하고 놀랐다. 기무사의 방대한 존안자료는 군 인사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기무사의 힘이다. 몇 년 전 육군 장성 A는 평소 친분이 있는 고위 정부 관계자에게 자신의 인사를 부탁했다. 그런데 이 장성에 대한 기무사의 존안자료는 “언행이 가볍고 조직보다 개인을 우선시하는 경향”이었다. 결국 승진 없이 전역했던 이 장성이 나중에 정부 관계자에게서 들은 얘기다.
기무사령관은 상관인 현직 국방장관을 겨냥한 부정적 보고도 한다. 2013년 당시 장경욱 기무사령관은 김관진 국방장관에 대해 ‘일부 인사를 부적절하게 한다’는 내용을 청와대에 직보했다. 군 소식통은 “송영무 국방장관은 인사청문회 때 기무사가 자신에 대한 음해성 정보를 퍼뜨렸던 것으로 여기고 있다”며 “이게 사실이건 아니건 기무사는 존안자료 보고 등으로 장관 인사까지 개입할 수 있다”고 단언했다.
다음달 1일 창설하는 안보지원사도 신원조사 임무를 계속한다. 단 ‘군사보안에 관련된 인원의 신원조사’로 목적을 명시했다. 신원조사의 구체적인 규정은 안보지원사 창설 전후로 만들 계획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앞으로 훈령과 예규에서 안보지원사의 임무를 구체적으로 정해 기무사 때보다 줄여 놓겠다”고 말했다.
군내 인사들은 쿠데타 경험이 있는 한국에서 북한과의 대치 상황을 감안할 때 신원조사의 필요성을 인정한다. 하지만 신원조사의 목적과 범위를 명확히 하지 않으면 다시 ‘갑질’의 원천이 된다고 경고한다.
이철재 기자, 박용한 군사안보연구소 연구위원 se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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