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역 이종휘의 동사(東史), 그 허와 실

2005. 3. 9. 0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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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제7차 교육과정에 의해 2002학년도 이후 고교 1학년생이 사용하는 현행 "국사" 교과서에는 조선후기 "문화의 새 기운"이라는 항목에서 역사학 분야의 새로운 기풍을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기술하는 대목이 있다.

"이종휘는 동사에서 고구려 역사 연구를, 유득공은 발해고에서 발해사 연구를 심화하였다. 이들은 고대사 연구의 시야를 만주지방으로 확대시킴으로써 한반도 중심의 협소한 사관을 극복하는 데 힘썼다."(316쪽) 이처럼 현대 한국사학사에서 이종휘(李種徽.1731-1797)와 그가 저술한 "동사"(東史)는 민족주의 역사학의 원류쯤 되는 저작으로 간주되고 있다.

도대체 이종휘는 누구이며, 동사는 또 무엇인가? 이종휘는 자를 덕숙(德叔)이라 하고 호는 수산(修山)이라 하며, 병조참판을 지낸 이정철(李廷喆)의 아들이다. 하지만 요즘의 유명세와는 달리 정조 16-17년(1792-93)에 공주 판관을 지냈다는 점을 제외하고 그의 이력은 자세하지 않다.

그가 죽은 지 6년 뒤인 1803년, 그의 아들에 의해 "수산집"(修山集)이라는 문집이 간행된다. 동사란 이 수산집 일부(권 11-13)를 구성하고 있는 역사서술로 "동사"(東史)라는 말 그대로 동국의 역사를 서술하고 있다.

그렇다면 어떤 특징을 지니고 있기에 "고대사 연구의 시야를 만주지방으로 확대시킴으로써 한반도 중심의 협소한 사관을 극복하는 데 힘썼다"고 평가되는가? 이긍익의 연려실기술이나 안정복의 동사강목과 같은 동시대 동국(東國)의 역사서술이 상당한 거작이었음과 비교할 때 동사는 무엇보다 분량이 얼마되지 않는다.

체제를 보면 본기(本紀)ㆍ세가(世家)ㆍ열전(列傳)ㆍ연표(年表)ㆍ표(表)ㆍ지(志)로 구성돼 있다. 사마천의 사기(史記)를 그대로 본떴음을 알 수 있다.

서술대상 시기는 단군조선 이후 고려시대까지를 커버하고 있는데 단군조선에 관한 일을 "단군본기"(檀君本紀)라는 이름으로 제일 첫 머리에 세우고 있고, 발해사를 "발해세가"(渤海世家)라는 항목을 별도로 만들어 다루고 있다.

여기에다 동사 현존본은 삼국시대와 관련해서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신라와 백제본기는 따로 없고 고구려 관련 기록이 압도적인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열전의 경우 고구려 관련 비중은 절반 이상이며, 일종의 사회ㆍ문화사 기술이라고 할 수 있는 지(志)에서는 그것을 구성하는 편명(篇名)들인 예문지(藝文志) ㆍ율력지(律曆志)ㆍ천문지(天文志)ㆍ지리지(地理志)ㆍ형법지(刑法志)ㆍ오행지(五行志) 앞에는 모두 "고구려"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다.

단재 신채호 이후 동사야말로 "고대사 연구의 시야를 만주지방으로 확대"하고 "한반도 중심의 협소한 사관을 극복하는 데 힘"쓴 역사서로 꼽힌 까닭은 이러한 "현존본"의 모습을 이종휘가 구상하고 실천한 바로 그 동사의 원래 모습이었다고 암묵적으로 간주한 데서 비롯되고 있다.

하지만 이 현존본 동사는 여러 면에서 불완전본임을 의심할 나위가 없다. 첫째, 서문이 없다. 둘째, 역사서평을 가하는 주체(즉 이종휘 자신)가 어떤 곳에서는 외사씨(外史氏)라고 하고, 다른 곳에서는 찬(贊)이라고 해서 요동을 치고 있다.

셋째, 신라와 백제는 물론이고 고구려본기도 없다. 넷째, 예문지(藝文志)를 필두로 하는 각종 지(志)에 "고구려"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다는 것은 적어도 이들 지가 이종휘 저작이라면 그는 신라와 백제의 지(志)도 따로 구상했음을 엿보게 한다.

본기나 세가도 없이 느닷없이 그 시대에 대한 지(志)가 돌출한다는 것은 현존본 동사가 불완전 판본임을 보여주는 명명백백한 증거가 된다.

따라서 현존본 "동사"는 애초에 이종휘가 쓰다가 완성치 못한 것이거나, 완성은 했으되 원고 일부(혹은 상당수)가 망실되고 남은 것들을 수산집을 편찬할 때 "동사"(東史)라는 이름으로 긁어 모은 데서 비롯될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 있다.

서문이 없고 역사서평 형식이 다르다는 점은 적어도 현존본 동사가 이종휘가 애초에 하나의 통사로써 구상한 책은 아니라는 점을 명백히 하고 있다.

따라서 이처럼 불완전한 현존본을 토대로, 거기에 고구려 관련 기술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점을 주목해 동사가 "고대사 연구의 시야를 만주지방으로 확대"하고 "한반도 중심의 협소한 사관을 극복하는 데 힘"쓴 역사서라는 평가는 매우 성급하다는 비판을 면할 길이 없다.

하지만 동사가 조선후기 지식인들이 중국에 대비되어 동국의 역사를 발명하려 얼마나 고심했던가 하는 흔적을 완연히 보여준다는 점에서 사학사적인 의미에서 매우 중요한 문헌임은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규장각 책임연구원들인 김영심ㆍ정재훈 씨가 한국학술진흥재단이 지원하는 동서양 학술명저번역총서 시리즈 중 하나로 동사를 처음으로 완역했다.

이런 한문 고전은 원문이 생명인데, 그것을 빼어버리고 번역문만 실은 점이 아쉽기 짝이 없다. 같은 학술명저번역총서 시리즈로 먼저 나온 "염철론"(鹽鐵論)도 원문을 누락시킨 바 있는데, 이런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지원주체인 학술진흥재단이 나서야 할 것이다. 소명출판. 382쪽. 2만6천원. taeshi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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