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 따는데 10년, 타는데 10분…우리 식탁에 날아들 '산불 청구서'

박상혁 기자, 정심교 기자, 이현수 기자, 이지현 기자, 민수정 기자 2025. 4. 1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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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괴물산불, 이제는 복구다 (下)
[편집자주] 숲을 만드는데 걸리는 시간은 수십년, 하지만 화마로 숲이 사라지는 건 순식간이다. 사상 최악으로 기록된 3월 전국 동시 산불로 숲과 삶의 터전이 잿더미로 변했다. 산불 피해 여파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하루라도 더 빨리 피해 복구에 나서야 여파를 최소화할 수 있다.
"싹도 다 말라" 산불이 농사까지 망쳤다…"마늘값 오를 수밖에" 우려
30일 경북 의성군 단촌면 관덕리 한 마늘밭에서 흙덮기 작업을 하는 농부 뒤로 산불에 잿빛으로 변한 산이 보이고 있다. 이 마늘 밭은 산불에 잎 끝이 바짝 마르는 작물 피해를 입었다./사진=뉴시스

영남 산불로 국내 최대 마늘 산지인 경북 의성을 비롯해 마늘밭과 과수원 수천ha(헥타르)가 잿더미로 변했다. 불탄 밭과 과실 묘목이 예전 모습을 찾을 때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그 사이 농산물 가격 폭등(애그플레이션) 가능성도 나온다.

10일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의성군의 마늘 재배 농가는 3233가구, 재배면적은 1700ha, 연간 생산량은 1만9262t(톤)에 달한다. 연간 소득 규모는 약 900억원이다.

안동에선 고추와 생강이 주요 작물로, 재배면적은 2043ha, 연간 생산량은 7269톤이다. 경남 산청의 대표 농산물 곶감은 1388ha에서 재배되며 연간 생산량은 1만1375톤, 소득 약 400억원이다.

경상북도에 따르면 이번 산불로 인한 농작물 피해 면적은 여의도 면적의 약 10배에 달하는 3785ha다. 의성에서 마늘 농사를 하는 김종욱씨(60)는 "수확 두 달 앞두고 산불이 발생해 마늘밭 대부분이 불탔다. 마늘 싹도 말라버려 올해 농사는 망쳤다"라고 말했다.

경남 산청군 시천면 중태리에서 곶감 농사를 하는 강모씨(60)는 "감나무, 농기계 등 곶감 생산에 필요한 모든 것이 타버렸다"라고 말했다. 이어 "감나무는 10년은 키워야 제대로 된 열매를 맺는데, 그 세월을 어떻게 다시 기다리나"라고 토로했다.

산불 피해 농가 현황. /그래픽=이지혜 기자.


피해를 복구하고 농산물을 다시 생산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의성농업기술센터 관계자는 "마늘밭의 흙을 다시 갈아엎을 필요는 없지만, 산불로 생긴 넓게 퍼진 잿더미를 모두 걷어내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화재로 마늘잎이 말라버린 경우, 알갱이가 작게 자라 상품성이 떨어질 수 있다. 이런 마늘은 종구(씨 마늘)용으로라도 활용해 내년 수확을 기다리는 방법밖엔 없다"라고 말했다.

사과·곶감 과수원은 시간이 더 걸린다. 산청군 농업기술센터 관계자는 "산불로 불타 버린 묘목은 생산 기능을 잃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모두 베어버려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3년생 과실 묘목을 구해 다시 심어야 하는데, 상품성 있는 열매를 맺기까지 약 10년 정도가 걸린다. 그 시간을 어떻게 기다리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농산물이 다시 생산되기 전까지는 공급 부족이 생길 수 밖에 없다. 자연스럽게 가격은 높아진다. 이미 주요 농산물 가격은 상승세를 보이는 중이다. 농산물 유통정보(KAMIS)에 따르면 지난달 깐마늘은 지난해보다 19.03% 상승했다. 같은 기간 △배추(10㎏ 기준) 17.13% △건고추 2.61% △무 77.84% 폭등했다.

임정빈 서울대학교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는 "산불로 영남 지역 농산물·과실 생산이 불가능해져서 애그플레이션은 피할 수 없다"라고 진단했다. 그는 "특히 다년생 작물인 과실 묘목이 타버려 수년간의 농사를 한 번에 잃었다. 올해도 이상기후로 농산물 가격이 올랐는데, 산불까지 겹쳐 공급 부족이 악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농지나 과수원은 일부 지원을 받을 수 있다. 반면 산에서 자라는 송이는 자연 발생으로 자라기 때문에 객관적인 피해 산정도 어렵다. 양성학 경북 영덕군 산림조합장은 "영덕은 송이버섯 주산지인데, 이번 산불로 피해가 크다. 송이가 자연적으로 자란다는 이유로 정부 지원을 못 받는다고 하니 답답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숲에서 송이가 다시 자라려면 약 50년 넘는 세월이 필요하다.

경북 의성군 단촌면 관덕리 마늘밭에서 31일 한 농민이 일을 하고 있다. 마늘밭 뒷산은 지난 25일 대형산불이 휩쓸면서 모두 불에 타 까맣게 변해 있다. /사진=뉴시스.

"콜록콜록" 주민 건강 '빨간불'…산불 다 잡았어도 방심 안 되는 이유
[안동=뉴시스] 김금보 기자 = 산불 피해 주민 박경숙(67)씨가 9일 경북 안동시 길안면 만음리의 전소된 집에서 피해 상황을 살피고 있다. 2025.04.09. kgb@newsis.com /사진=김금보

이번 경북 산불은 시간당 8.2㎞라는 속도로 빠르게 확산하면서 인명피해가 속출했다. 이른바 '괴물 산불'로 불리는 이번 화마는 꺼졌지만, 영남 지역 주민들의 건강 우려도 덩달아 커졌다. 유해 물질이 가득한 연기가 계속 퍼지는 데다, 산불이 다 꺼졌어도 며칠이 지나서야 호흡곤란 같은 증상이 뒤늦게 나타날 수 있어서다.

산불이 꺼진 후에도 방심해선 안 되는 이유가, 오염물질이 공기 중에 장기간 남아서다. 가천대 길병원 직업환경의학과 함승헌 교수는 "연소 과정에서 발생한 초미세먼지(PM2.5)는 폐포를 통과해 혈액에 직접 침투할 수 있어 호흡기 질환뿐만 아니라 심혈관계 질환, 신경계 질환까지 유발할 수 있다"며 "기존에 이런 질환을 앓아온 사람이라면 증상이 더 심각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산불 연기엔 △일산화탄소(CO) △이산화질소(NO₂) △미세먼지·초미세먼지 △포름알데히드 △다환방향족탄화수소(PAHs) △휘발성유기화합물(VOCs) 등 유해 물질이 다량 포함돼 있다. 실제 이번 산불 이후 영남권의 초미세먼지 농도는 평소보다 5배, 일산화탄소 농도는 2배로 증가했다.

그중에서도 치명적인 성분이 '일산화탄소'다. 일산화탄소가 몸속에 들어오면 적혈구의 헤모글로빈(Hb)에 산소보다 250배 쉽게 결합한다. 따라서 헤모글로빈이 산소를 제대로 실어 나르지 못하게 되고, 이 때문에 몸속에 산소가 부족해지면 생체 세포에서 젖산을 생성하면서 피가 산성으로 변한다. 이는 호흡중추 등을 자극해 호흡의 깊이, 호흡수, 심장박동수를 증가시켜 산소 부족분을 보상받으려 한다.


이런 보상 작용은 공기를 상대적으로 많이 호흡해 산소부족량을 보충하고, 산소함유량이 저하된 혈액을 많이 순환시키며, 뇌혈관을 확장해 많은 피가 흐르도록 조정한다. 하지만 이러한 보상작용은 산소농도가 16%일 때까지만 효과가 있을 뿐, 이보다 더 낮은 농도에선 생체적 보상이 불가능해 산소 결핍 증상이 나타난다. 이를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진단한다. 전신에 산소가 공급되지 못하면서 질식을 유발한다.

일산화탄소에 중독되면 산소를 많이 필요로 하는 장기(뇌·심장·근육)의 기능이 떨어진다. 한양대병원 호흡기알레르기내과 김상헌 교수는 "일산화탄소는 색깔·맛·냄새가 없어 중독되더라도 잘 모를 수 있다"며 "중독 초기 땐 두통·어지럼증·메슥거림(구역질) 등 증상이 나타나다가 심해지면 기면·혼수·발작·호흡마비 같은 증상이 나타나고 사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번처럼 대규모 산불이 발생하면 산불이 마을까지 번지면서 집과 가구 기자재 등을 태우는 동안 벤젠·중금속 같은 독성물질이 방출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연기를 천식, 만성 폐쇄성 폐 질환(COPD) 환자 마시면 기관지의 염증이 더 심해져 아나필락시스(급성 호흡곤란, 혈압 감소, 의식소실 등 쇼크 증세), 호흡곤란까지 유발할 수 쉽다. 김상헌 교수는 "검게 보이는 연기엔 미세먼지와 질소산화물 등이 들어있는데, 모두 다 호흡기에 악영향을 준다"며 "폐 등 호흡기로 유독가스 등 연기 속 유해 물질이 일단 한번 들어오면 빠져나가기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산청=뉴스1) 윤일지 기자 = 경남 산청·하동 산불 일주일째인 27일 오후 주민들이 지리산과 인접한 산청군 시천면 동당마을 위로 피어오르는 산불 연기를 지켜보고 있다. 산청에는 오후부터 5mm 내외의 적은 비가 예보됐지만 현재 비는 내리지 않고 있다. 2025.3.27/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산청=뉴스1) 윤일지 기자


연기를 많이 들이마신 환자에게 병원에선 산소 흡입 치료, 고압 산소 치료 등을 시행한다. 하지만 몸에 한 번 흡수된 유독가스와 미세먼지 등은 혈관에 녹아들어 가, 전신에 악영향을 미친다. 만약 이번 산불 현장에 있었거나, 산불 근처의 '집안'에 머물렀다면 고온과 유독 가스 등으로 인해 기도·폐 등 호흡기가 손상당했을 수 있다. 이를 '흡입 화상'이라고 한다. 흡입 화상은 폐 기능 부전, 호흡기 감염 등으로 이어져 환자 예후에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다.

흡입 화상으로 인한 호흡곤란 증상은 초기엔 나타나지 않다가 손상당한 후 며칠이 지나서 나타날 수 있다. △불에 그을리거나 탄 코털 △얼굴·코·입안과 입 주변의 화상 △쉰 목소리 △금속음 기침(brassy cough) △쌕쌕거림(wheezing) △검은 탄소 가루가 섞인 가래 등의 증상이 있다면 흡입 화상을 의심해 검사받아볼 필요가 있다.

부득이하게 화재 현장을 찾아가거나 지나야 한다면 K94 마스크나 N95 마스크를 착용하되 공기가 드나들 틈이 없도록 밀착해 착용해야 한다. 실내에 머물 땐 바깥 공기가 유입되지 않도록 환기는 차단해야 한다. 가능하면 공기청정기를 활용해 실내 공기를 정화해야 한다.

더워진 지구, 화 불렀다…"더 큰 불, 더 자주 올 것" 섬뜩한 경고까지
지난 3월29일 산불 피해 지역인 경북 영덕군 일대 산들이 까맣게 타 있다. /사진=뉴스1.

빈번한 대형 산불이 전 지구적인 기후 재난의 결과물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기후 변화로 영남 산불보다 더 큰 화재가 앞으로 더 자주 올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한다.

10일 기상청에 따르면 올해 영남 산불에선 기후 변화로 인한 높은 기온과 적은 강수량이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 산불이 확산된 기간인 지난달 21~26일 전국 평균기온은 14.2도로 역대 가장 높았다. 같은 기간 경북 지역에는 비가 전혀 내리지 않으며 역대 가장 적은 강수량을 기록했다. 이상고온에 적은 강수량까지 더해지며 경북지역 상대습도는 평년 대비 15%포인트(p) 낮았다.

김해동 계명대 환경공학과 교수는 "산불이 발생한 3월 기온이 평년 5월 기온에 달할 정도로 높았고 봄철 강수량도 줄었다"며 "기후 변화로 인해 봄철 고온화가 심각해지며 산불이 잘 번질 수 있는 조건이 강화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화재 진압을 어렵게 만든 강풍도 지구온난화 영향이다. 3월23~25일 우리나라에 강한 서풍이 유입됐다. 경북 안동(초속 27.6m), 경북 의성(초속 21.9m) 등 일부 산불지역에선 1997년 이래 가장 강한 3월 일최대순간풍속이 관측됐다.

화재 기간 한반도 남쪽 고기압과 북쪽 저기압 간 차이가 커 강풍이 불었다. 이례적으로 남쪽 고기압이 강했는데, 기후 변화로 인해 해수온도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해수온이 높아지면 고기압이 발달한다. 기압차가 클 수록 강한 바람이 분다.

산업화 이전 대비 현재 산불시작 날짜 변화. 붉은색이 짙을수록 산불 시작 날짜가 과거보다 빨라졌음을 의미한다./사진제공=그린피스.


기후 변화로 앞으로 더 큰 규모의 산불이 더 자주 발생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김형준 카이스트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교수팀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 산불 위험일수는 연 120일까지 늘어났다. 기온, 습도, 바람 3가지 요소를 계산해서 산출하는 산불위험지수가 20을 넘기면 산불 발생 가능성이 높은 '산불 위험일'로 분류한다.

전국 산불 위험지수는 산업화 시기 1850년 이전 대비 평균 10% 이상 증가했다. 산불 위험 시기도 앞당겨졌다. 경남은 산불 위험 시기가 2월 마지막주에서 첫째 주로, 전남은 4월 둘째 주에서 3월 첫째 주로 앞당겨졌다.

김형준 교수는 "온실가스 배출로 인해 지구가 더워지면서 기상현상의 변동성이 커지고 있다"며 "산불 위험성은 습도, 바람, 온도 등 요소에 영향을 받는데, 기후변화로 인해 기온이 오르고 건조해지며 산불 위험도도 커지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산불이 발생하면 많은 양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돼 지구온난화가 심화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고 덧붙였다.

기후 전문가들은 산불 위험도가 커지는 만큼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실화·방화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언제든 화재 진압용 물을 확보할 수 있는 친환경 양수발전소 건설 등이 언급된다.

적극적인 산림 관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평소에도 불에 취약한 낙엽이나 나뭇가지를 솎아내는 작업이 필요하단 취지다. 김 교수는 "맹목적인 자연보호보다는 평시에도 산불을 예방할 수 있는 작업을 꾸준히 해둘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빈번한 산불에 '식목일 공휴일 재지정' 목소리… "국민적 관심 필요"
제80회 식목일은 앞두고 28일 오전 인천 남동구 구월아시아드공원에서 구민들이 나무를 심고 있다. 2025.03.28. /사진=뉴시스.

최근 영남 산불 등 크고 작은 산불이 계속되면서 4월5일 식목일을 공휴일로 재지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공휴일 지정이 결국 산림에 대한 국민적 관심 제고로 이어질 것이라고 평가했다.

10일 국회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이인선 국민의힘 의원은 식목일을 공휴일로 재지정하는 공휴일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이 의원은 국민들의 애림 의식을 고취하고, 미세먼지 저감과 탄소중립의 차원에서 식목일의 공휴일 재지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산림청에 따르면 산림은 1㏊(헥타르)당 연간 10.4t(톤)의 탄소를 흡수하고 14.4t의 물을 저장한다. 아울러 1ha의 숲은 연간 총 168㎏의 대기오염물질을 흡수한다.

이 의원은 머니투데이에 "식목일 공휴일 지정은 단순 휴일로서 의미가 아니다"며 "최근 산불로 인한 산림소실에 대한 국민 경각심을 제고시키고,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 방지에 기여하는 산림의 중요성을 널리 알려 국민적인 애림 의식을 고취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식목일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다음 해인 1949년 공휴일로 처음 지정됐다. 식목일을 매년 4월5일로 지정한 것은 신라가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날(음력 2월 25일)이자 1343년 조선 성종이 동대문 밖 선농단에서 직접 밭을 일군 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2005년 6월 행정기관이 주 40시간 근무제를 도입하고 공직사회의 열심히 일하는 분위기 조성을 위해 2006년부터 식목일을 공휴일에서 제외하기로 결정했다.

지난달 27일 경북 청송군 주왕산면 상의리 주왕산 국립공원 산불 현장에 투입된 헬기가 산불 진화를 위해 물을 뿌리고 있다. /사진=뉴스1.


식목일을 법정공휴일로 재지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21년 기후변화 등 이유로 식목일을 3월로 앞당겨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되면서 당시 산림청은 공휴일 재지정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전문가들은 산불 예방을 위해 식목일에 대한 공휴일 재지정은 꼭 필요하다고 했다. 과거 식목일이 공휴일이던 당시에는 국민들이 서로 모여 나무를 심으면서 산림에 대한 관심도가 높았고, 산불 발생을 막으려는 공동의 노력이 강했다고 본다.

최정기 강원대학교 산림과학부 교수는 "우리나라 산불은 99.9%가 사람이 만드는 산불인데, 자기 집 마당 정원이라고 생각하면 누가 불을 내겠느냐"며 "식목일을 공휴일로 지정해 산림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공동체 의식을 높이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산림청은 식목일의 공휴일 재지정 움직임에는 찬성하고 있지만 현실적 어려움도 알고 있다. 산림청 관계자는 "일부 의원실에서 공휴일 재지정에 대한 입장을 물어 찬성한다고 밝혔지만 사회적 합의가 먼저 필요하다"며 "공휴일 재지정이 의미는 있지만, 일각에서 기업들의 비용 부담으로 연결된다고 지적하고 있다"고 말했다.

영남 산불 수사는 '마라톤'…"혐의 입증해도 처벌 낮을 것"

31일 경북 대형산불 최초 발화 추정 지점인 의성군 괴산리 야산에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소방당국, 경찰 등이 합동 감식을 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영남 산불에 대한 경찰 수사가 진행되면서 주요 산불 피의자와 용의자는 소환조사와 입건을 앞두고 있다. 법조계에선 형법 적용이 어려워 사실상 처벌 수위가 낮고 민사 소송 금액도 일부만 인정될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10일 경찰에 따르면 의성군 야산에서 성묘 중 산불을 낸 혐의를 받는 50대 A씨는 산림보호법상 실화 등 혐의로 불구속 입건돼 조사받고 있다. A씨는 지난달 22일 의성군 안평면 괴산리 야산에서 성묘하던 중 실수로 산불을 낸 혐의를 받는다. 인적·재산적 피해가 막대해 의성군 특별사법경찰(특사경)이 경북경찰청에 사건을 이첩했다.

경찰은 지난달 31일 현장 합동 감식을 마친 후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목격자 조사 등 필요 절차를 거치고 향후 A씨를 소환해 조사한다는 방침이다. 경찰은 조사가 끝나지 않은 시점에 추가 혐의 적용을 예단하긴 어렵다는 입장이다.

경남 산청·하동 산불을 조사 중인 경남경찰청은 산청군 시천면 신천리 최초 발화지점 인근에 있던 농장주 등 4명을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했다. 아직 피의자로 입건되진 않았다. 이들은 지난달 21일 최초 발화지점에서 함께 예초 작업 중이었다. 지난 1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산림청이 해당 지역에서 합동 감식을 진행했다.

산불에 대한 처벌 수위는 고의성에 따라 갈라진다. 산림보호법에 따르면 산불 실화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 고의로 불을 낸 방화범에 대해서는 피해를 본 곳이 산림보호구역 또는 보호수라면 7년 이상 15년 이하 징역까지 처벌이 내려질 수 있다. 타인 소유 산림이면 5년 이상 15년 이하 징역형을 받는다.

◆ 2022년 강릉 산불 낸 60대, 징역 12년 확정

산불 처벌 법규 현황./사진=김다나 디자인 기자.


앞서 대법원은 2022년 3월 강원 강릉시 옥계면에서 토치 등으로 자택과 빈집 등에 불을 내고 산불도 낸 혐의로 60대 이모씨에게 징역 12년을 선고했다. 이씨의 고의 방화로 강릉과 동해시에서 395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고 이씨 모친은 숨졌다.

법조계에선 선례를 고려했을 때 영남 산불 피의자와 용의자가 과실치사죄와 과실치상죄 등 형법 적용을 받기 어려울 수 있다고 했다. 과실이라도 사람이 숨질 수 있다는 점을 피의자가 예측할 수 있었는지 여부가 중요한데, 이번 영남 산불도 이같은 예견 가능성을 입증해야만 형법이 적용될 가능성이 높다.

곽준호 법무법인 청 변호사는 "기존에는 (산불) 피해가 다소 커도 대부분 벌금형을 받았다"면서 "정확하게 법리로만 따지면 산림보호 법상 실화죄를 제외하고 형법 적용을 하기엔 인과관계 측면에서 인정되기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사소송에서도 실화자가 배상하게 될 금액이 청구 금액과 차이가 클 수 있다. 곽 변호사는 "민사에서 손해액은 청구하는 원고 측에서 입증해야 한다. 감정 과정을 거칠 때 실제 피해 금액과 감정가 사이 차이가 클 수 있고 실제도 그랬다"고 했다.

2019년 고성 지역 산불 이재민들은 한국전력에 약 260억원을 청구했지만 실제로는 청구 금액의 33%이자 손해 사정액의 60%인 87억원만 배상 책임이 인정됐다.

박상혁 기자 rafandy@mt.co.kr 정심교 기자 simkyo@mt.co.kr 이현수 기자 lhs17@mt.co.kr 이지현 기자 jihyunn@mt.co.kr 민수정 기자 crystal@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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