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건축왕 일당의 은밀한 제안…"경매 넘어간 아파트, 월세 돌리자"

김민영 2023. 4. 19.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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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추홀구 D아파트 보증금 피해액만 350억원
45가구 모조리 임의 경매 넘어가
이사나간 세입자에 "단기 임대 수익 나눠갖자" 제안
행만사 측 "한씨는 모르는 사람" 해명

인천 미추홀구 일대 120억원대 전세사기 혐의로 구속된 일명 ‘건축왕’ 일당이 경매 개시된 피해자 아파트를 재임대하려고 시도한 정황이 포착됐다. 대항력 없는 세입자가 임차등기권을 등록하고 물건지에서 이사 나간 뒤 경매 진행 과정 중 공실로 비어있자 이곳에 단기 월세를 주는 방식으로 피해 금액을 보전하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 피해 임차인을 위한 근본적 구제 방안을 마련하기보다 자칫 또 다른 피해자를 양산할 수 있는 임대차 계약을 맺으려고 시도한 것이다.

19일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피해대책위원회(대책위)에 따르면 건축왕 측 ‘행복공간을 만드는 사람들(행만사)’ 관계자라고 밝힌 한모씨는 지난 11일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 아파트 중 한 곳인 D아파트 세입자 A씨에게 전화를 걸어 한 가지 제안을 던졌다. 바로 공실 상태인 A씨 아파트에 단기 임대를 놓자고 한 것. 인천시 미추홀구 도화동의 D아파트는 총 45가구가 모조리 임의 경매(담보권 실행 경매)에 넘어갔다. 피해 보증금 규모만 약 35억원 정도. 이 중 4개 가구는 3차 경매 끝에 낙찰자가 나와 자진 퇴거하지 않으면 강제로 쫓겨날 처지에 처해있다.

9000만원의 전세보증금을 몽땅 날리게 생긴 피해자 A씨는 거주하는 곳이 경매 절차에 돌입하자 언제 쫓겨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D아파트에 임차권 등기를 설정해놓고 지난달 다른 곳으로 이사한 상태다. 이런 A씨에게 한씨가 내민 제안은 단기 임대를 통해 수익을 나누자는 것이다. 예컨대 100만원에 임대차 계약을 맺으면 월세 수익의 50%는 근저당이 잡혀 있는 은행에 이자를 납부하는 데 쓰고 30%는 세입자에게, 20%는 회사 측이 나눠 갖는 식이다.

한씨는 피해 입주민을 위한 구제방안이라고 했다. 하지만 해당 아파트를 단기 임대 매물로 내놓을 때 경매 진행 상황 등을 정확하게 고지할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만약 이 같은 사실을 알리고도 임대차 계약이 성사된다면 세입자는 경매 낙찰로 강제퇴거 명령 조치가 떨어지면 언제든 집을 비워줘야한다. 불안정한 임대차 계약을 맺는 셈이다. 또 전세사기로 피해를 입은 세입자는 이러한 임대차 계약의 주체가 된다. 계약의 리스크를 세입자가 떠안게 되는 것이다. 즉 전세 사기 피해자가 자칫 또 다른 피해자를 발생시킬 가능성이 있는 계약에 연루되는 셈이다.

A씨는 이를 대책위 측에 알렸고 비상식적인 제안에 대책위가 행만사 측에 문제를 제기하자 행만사 관계자는 "한씨는 행만사 측 대리인이 아니다"라고 해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행만사는 건축왕의 구속을 계기로 전체 자산 처분 행위 등 일체의 권한을 위임받아 사태 수습을 하는 조직이다. 하지만 만약 한씨가 행만사 측 관계자가 아니고 D아파트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인물이라면 A씨의 아파트가 공실 상태인 것을 정확히 알고 있다는 점과 그가 아무 권한을 갖고 있지 않은 아파트에 임대차 계약을 제안했다는 점 자체가 설명되지 않는다.

대책위 관계자는 "한씨는 D아파트 임대인인 김모씨의 지인으로 추정된다"며 "김모씨가 건축왕(남모씨)의 바지사장 중 한명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결국 이러한 제안은 건축왕 측이 제시했다는 의심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이 관계자는 "정당한 방식을 통해 사기 피해에 대한 자구노력을 하지 않고 자칫 또 다른 전세사기 피해자를 낳을 수 있는 방법을 동원해 금전적 피해를 보전하려고 한다"고 꼬집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하지만 어렵게 연락이 닿은 한씨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당초 A씨에게 행만사 관계자라고 밝혔던 것과는 달리 "건축왕을 비롯해 행만사 대표도 전혀 알지 못한다"고 했다. 그는 "미추홀구에서 발생한 전세사기 사건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에 행만사를 찾아가 이러한 아이디어를 제안했고 행만사 측에서 A씨의 연락처를 받았다"면서 "새로운 사기꾼 등장이라는 오해를 받고 있지만 이 사태를 해결하는데 도움을 주고 싶어 순수한 마음에서 제안한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최근 피해 청년 3명이 잇따라 숨진 건축왕 전세사기 사건의 피해자는 700여명, 피해금은 500억원대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금 500억원은 앞서 기소된 125억원에 경찰이 추가로 수사 중인 사건의 액수를 합친 금액이다. 경찰은 이번 전세사기 사건 관련 공범 51명을 추가로 수사하고 있으며 이들도 조만간 검찰에 송치할 계획이다. 현재 건축왕과 공인중개사 등 공범 9명과 함께 사기와 공인중개사법 위반 등 혐의로 먼저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한편, 동탄신도시 일대에서 오피스텔 수백채를 소유한 임대인이 파산해 피해자 수십명이 전세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처지에 놓였다는 신고가 접수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경기 화성동탄경찰서는 18일 250여채에 이르는 오피스텔을 보유한 임대인이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아 집단 전세사기 사태가 발생할 것 같다는 신고를 받고 수사에 착수했다.

경찰 관계자는 "한 피해자의 신고를 받고 경찰 수사를 개시했다"며 "추가 피해자와 정확한 피해금액을 확인 중에 있다"고 밝혔다. 신고자는 오피스텔 전세계약을 해 계약이 만료됐으나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피해를 보고 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민영 기자 argus@asiae.co.kr
최태원 기자 skki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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