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초 버리고 소변 누고…하루도 편할 날 없어, 누가 되든 안왔으면"
대통령 없는 대통령실 향해…"尹 억울하다"
"누가 대통령되든…용산에 안 왔으면"
지난 22일 용산 대통령실 앞, 장대 같은 비가 오는 날이었다. 여전히 대통령실 인근에는 검은색 양복을 빼입은 경호원들이 배치돼 있었지만 지난 4일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뒤 텅 비어버린 대통령 관저가 있는 건물을 출입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1년 전만 해도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대통령실 앞에서 열리던 대형 집회·시위 역시 찾아보기 힘들었다. 용산 대통령실 건너편에 위치한 전쟁기념관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만 일부 지나다닐 뿐이었다.
물론 매일같이 용산 대통령실 앞에 오는 사람도 있다. 송정순씨(77·여)는 2년5개월 전부터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1시까지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시위 중이다. 이날 오전 9시, 송씨는 비가 쏟아지는데도 '내 아파트 내놔라'고 적힌 피켓을 목에 걸쳤다. 그는 대통령이 없는 대통령실을 향해 확성기로 힘껏 외쳤다. "이재명을 대통령 만들려는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은 사표를 내라!"
송씨의 집은 용인시 기흥구, 매일 버스 첫차를 타고 대중교통을 3번 갈아타면서까지 이곳에 온다. 처음 대통령실 앞을 오게 된 이유는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있는 아파트 소유권 갈등 문제를 윤 전 대통령에게 호소하기 위해서였다.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 이후부터는 달라졌다. 윤 전 대통령을 지켜야겠다는 신념으로 매일 대통령실 앞에서 윤 전 대통령이 억울하다고 외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이 29번 탄핵을 시도하는 등 국정 운영을 방해했기에 비상계엄이 정당하다고 주장한다.
"대통령은 용산에 없지만 여기서 일하는 직원이나 사람들이 좀 다니니까 이렇게라도 호소하는 겁니다."
하지만 이러한 외침을 불편하게 보는 사람도 있다. 용산 대통령실 인근 주민 또는 상인들이다. 용산 대통령실 인근에서 미술품 도소매업을 운영하는 정인수씨(62·남)는 약 3년 전 윤 전 대통령이 용산으로 오고부터 하루도 편한 날이 없었다고 하소연했다.
보수 또는 진보를 떠나서 집회가 열릴 때마다 귀를 찢는 소음이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경찰이 집회 관리를 이유로 차량 출입을 막아 멀리 주차한 손님들은 불만을 표했다. 정씨는 "윤 전 대통령이 용산으로 오고 나서 집회 일정을 찾아보는 게 일이 됐다"며 "그렇다고 시민단체들이 조용하게 집회하느냐? 그것도 아니다. 골목마다 담배꽁초는 물론, 담벼락에 소변 누고 가는 사람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 인근에서 거주하는 임모씨(72·남)는 애초에 대통령실이 용산으로 와선 안 됐다고 지적했다. 국방부 별관이 지어진 1970년부터 이곳은 군인의 구역이었는데 윤 전 대통령이 이를 망가트렸다는 것. 그는 "윤 전 대통령이 대통령실을 용산으로 옮기면서 경호처가 국방부를 감싸버리는 구조가 돼 버렸다. 근본부터 잘못된 일"이라며 "국방부가 있던 환경에 적응한 이곳 주민 또는 상인들은 대통령실 오고 나서 스트레스만 받는다"고 말했다.
뜨거운 감자 된 용산 대통령실 이전
차기 대통령이 용산 대통령실에 들어오는 것에 대해 이곳 주민 또는 상인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오는 6월3일에 열리는 21대 대선의 핵심 쟁점 중 하나는 용산 대통령실 이전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는 지난 17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국회 세종의사당과 대통령 세종 집무실을 임기 안에 건립하겠다"며 대통령실 이전을 공약했다. 김경수·김동연 후보 역시 세종으로 대통령 집무실을 옮기겠다고 약속했다.
국민의힘 대선 후보들은 세종으로 대통령실을 옮기는 것에 반대하지만 청와대 복귀를 언급하고 있다. 홍준표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는 지난 15일 선진대국시대 비전발표회에서 "청와대는 국격과 나라의 상징"이라며 "대통령은 청와대로 복귀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한동훈 후보는 일단 용산 대통령실로 들어간 이후 여론을 수렴하고 이전 계획을 세우겠다는 입장이다.
용산 사람들은 하루빨리 대통령실이 사라지길 원했다. 누가 들어오든, 새 임기가 시작되면 또 집회 및 시위를 겪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씨는 6월3일 대선 이후를 걱정하고 있었다. "윤 전 대통령의 임기 첫 6개월이 가장 시끄러웠어요. 만약 이재명 후보가 당선된다면 이제 보수 측 단체들이 몰려와서 집회하겠죠. 여기 용산 대통령실 인근에 사는 사람들은 벌써 모여서 이번 대선 이후 얼마나 시끄러울지 우려하고 있습니다."
인근 상인들은 그동안 집회가 열리면서 경찰이 자주 와 낮 장사가 잘된 건 맞지만 그만큼 저녁 장사는 안됐다고 전했다. 과거에는 국방부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이 지역 상권을 찾았지만 대통령실이 들어오자 대규모 저녁 회식 자리가 뚝 끊겼다는 것. 대통령실에서 회식 금지령을 내렸는지, 대통령실과 국방부 사이가 안 좋은지, 상인끼리 이러쿵저러쿵 추론만 할 뿐이라고 했다.
용산 대통령실 인근에서 10년간 중국집을 운영한 하회용씨(67·남)는 대통령실이 떠나도 매출에 큰 영향이 없다고 자신했다. 국방부와 웰컴저축은행 등 직장인들이 찾아주기만 해도 매출이 나온다고 했다. 하씨는 "당연히 대통령실이 오면서 득 본 것도 있다. 하지만 집회 때문에 주변 지역이 혼잡스럽고 매출도 롤러코스터를 타듯 불안정했다"며 "오히려 대통령실 오기 전에 매출이 안정적이었다. 국방부 회식 등이 주기적으로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용리단길에 위치한 상인들도 대통령실과의 작별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미 데이트 명소로 자리 잡아서 대통령실과 함께 집회 및 시위가 없어지면 더 많은 사람이 찾지 않을까 기대했다. 용리단길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강병훈씨(32·남)는 "다음 대통령이 누구든 용산에는 안 왔으면 좋겠다"며 "집회가 정말 시끄러울 때는 카페 안 음악 소리가 집회의 구호 소리에 묻히고 경찰 등에 도로가 통제되는 일도 다반사였다. 용산 대통령실이 사라지면 오히려 상인들이 좋아할 것"이라고 말했다.
공병선 기자 mydill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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