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노향의 부동산톡] 무이자 사금융 '전세', 세금이 키웠다

김노향 기자 2023. 1. 10.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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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주거의 안전판이란 이유로 부실을 꽁꽁 싸매던 전세가 결국엔 사회 안전망마저 뒤흔들고 있다.

전세대출 증가는 '서민주거안정'이란 명분 하에 정부가 낮은 금리의 정책대출을 무분별하게 남발한 탓이라는 지적이 이미 오래전부터 제기됐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금리보다 더 문제가 된 것이 대출한도인데, 과거에 수도권의 전셋값이 폭등하며 전세대출 한도가 상대적으로 적다 보니 실효성이 낮다는 지적이 제기됨에 따라 한도를 지속해서 올렸고 이는 다시 전셋값을 상승시키는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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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금리 전세대출에 보증금 보증까지… 폭탄에 불 붙인 건 '정책지원'
그래픽=김은옥 디자인 기자
#. 직장인 김 모씨는 지난해 서울시내 한 다세대주택(빌라)에 보증금 5억원을 내고 전세로 입주했다. 자금을 조금만 보태면 빌라를 매입할 수 있었지만 앞으로 집값이 하락할 것이란 전망과 빌라는 투자가치가 낮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자금이 집값의 절반도 안 돼 주택담보대출비율(LTV) 한도도 부족했다. 전세자금대출로는 최대 4억원을 빌릴 수 있어 전세금을 내고 남은 돈은 고금리의 자동차 대출을 상환했다. 임대인은 주택임대사업자로 보증금반환보증보험에 가입돼 있어 전세금을 떼일 위험이 작아 결정적으로 고액의 전세금을 건넬 수 있었다.

서민주거의 안전판이란 이유로 부실을 꽁꽁 싸매던 전세가 결국엔 사회 안전망마저 뒤흔들고 있다. 무분별한 정책대출에 이어 공공기관이 나서서 채무불이행을 막아주는 보험까지, 사실상 부실을 키웠다는 지적이다.

시중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의 2022년 12월 말 기준 전세대출 잔액은 131조9870억원에 달했다. 한국은행과 한국주택금융공사(HF)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기준 전세대출 잔액은 171조9000억원으로 전년동기대비 8.4% 증가했다. 2017년 말 48조6000억원에서 5년 만에 3배 이상 늘어났다.

전세대출 증가는 '서민주거안정'이란 명분 하에 정부가 낮은 금리의 정책대출을 무분별하게 남발한 탓이라는 지적이 이미 오래전부터 제기됐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주택담보대출금리가 8%대를 돌파하는 상황에서 2%대 전세대출을 이용해 전세금을 내고 남는 돈은 고금리 대출을 상환하거나 투자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대표적으로 주택도시기금의 '청년 버팀목 전세자금대출'은 금리가 1.5~2.1%로 시중은행 금리의 절반도 안된다. 부부 합산 연 소득 5000만원 이하, 순자산가액 3억6100만원 이하인 만 19~34세 무주택자가 받을 수 있다. 대출 한도는 최대 2억원(보증금의 80% 이내)이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금리보다 더 문제가 된 것이 대출한도인데, 과거에 수도권의 전셋값이 폭등하며 전세대출 한도가 상대적으로 적다 보니 실효성이 낮다는 지적이 제기됨에 따라 한도를 지속해서 올렸고 이는 다시 전셋값을 상승시키는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꼬집었다.


사금융시장에 정부 개입 '도 넘었다'


2020년 8월 '민간임대주택에 관한 특별법' 개정에 따라 주택임대사업자의 보증금반환보증 가입이 의무화돼 전세보증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점도 전세 부실의 뇌관이 됐다. 기존 등록임대는 1년 유예기간을 둬 2021년 8월 전면 시행됐다. 부채비율 등에 따라 예외 적용을 두기는 했지만 전체 시장의 93%를 차지하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 기준 보험 가입금액은 지난해 12월26일까지 54조2280억원을 기록했다. 2021년에도 HUG 보험 가입금액은 51조5508억원에 달했다.

HUG의 보증금반환보증 가입자 수는 2013년 9월 상품 출시 이후 해마다 늘어나 ▲2015년 3941가구 ▲2016년 2만4460가구 ▲2017년 4만3918가구 ▲2018년 8만9351가구 ▲2019년 15만6095가구 ▲2020년 17만9374가구 ▲2021년 23만2150가구로 증가했다. 6년 새 60배 가까이 증가한 셈이다.

보증사고에 따른 대위변제액도 해마다 빠르게 늘어 지난해 1~11월 HUG의 누적 대위변제액은 7690억원을 기록했다. 보증금반환보증의 보험료는 보증금 1억원당 22만~30만원(2년) 수준이다. 월 만원 안팎의 비용이 깡통전세나 전세사기를 피하기 위해 지불하는 금액으론 세입자에게 큰 부담이 아니라는 시각이 대부분이지만 금리 상승으로 전세대출 이자가 늘면서 보증보험료까지 지불하면 월세 비용과 비슷하거나 더 많은 상황마저 발생할 수 있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고액 전세의 위험성이 수 년 전부터 인지됐음에도 서민 주거안정을 이유로 계속해서 정책 지원을 하고 정부가 과도하게 개입했던 데 문제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이유로 결국 전세를 포기하고 월세로 돌아서는 임차인도 늘고 있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해 1~12월 신고된 아파트 월세 거래(계약일 기준)는 총 9만5467건으로 전년동기(8만2567건) 대비 15.6% 증가했다.

김노향 기자 merr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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