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증금이 2억 '뚝'.. 서울 전셋값, 2년전으로 돌아갔다
전세 시장 침체가 심화하면서 서울 주요 아파트 전세 매물 호가가 2년 전 수준으로 떨어졌다. 대출 금리 인상으로 전세 수요가 감소하면서 매물이 계속 쌓인 영향이다. 새 아파트 입주 물량이 많은 수도권 일부 지역에선 몇 달 사이 전셋값이 30% 넘게 급락한 사례도 있다. 전세 보증금을 돌려줄 여유가 없는 갭 투자자들은 에어컨 설치, 인테리어 교체 등의 ‘당근’을 제시하며 세입자 모시기에 혈안이 됐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전셋값 급락으로 ‘역전세난’이 심해지면 세입자들이 보증금을 제대로 돌려받지 못하는 등의 부작용이 우려된다”며 “전세시장 연착륙을 유도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2년 전으로 돌아간 서울 전셋값
최근 서울 인기 주거지역 대단지 아파트에서 전세 시세가 2년 전 실거래가를 밑도는 매물이 속출하고 있다. 서울 강동구 고덕동 ‘고덕그라시움’ 전용면적 84㎡ 전세는 2020년 10월 9억5000만원에 거래됐지만, 최근 전세 호가(呼價)는 7억5000만원 수준이다. 2년 만에 새로운 전세 세입자를 들이는 집주인이라면 기존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빼주기 위해 2억원을 마련해야 한다는 뜻이다.
교육 여건이 좋아 전세 수요가 많은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도 전용 76㎡ 매물 호가가 6억3000만원까지 떨어졌다. 2년 전 전셋값(7억원)보다 1억원 가까이 낮다. 마포구 아현동 ‘마포래미안푸르지오’, 서대문구 남가좌동 ‘DMC파크뷰자이’ 등 강북권 주요 단지도 2년 전과 비교해 전세 시세가 수천만원에서 1억원 넘게 내렸다.
애초 부동산 전문가들은 올가을 최악의 전세 대란이 벌어질 수 있다고 예상했다. 2020년 7월 임대차법 개정 이후 계약갱신청구권을 쓴 세입자들이 가세하면서 새로 전셋집을 찾는 수요가 몰리고, 임대인들은 4년 치 시세 상승분을 받으려고 보증금을 올릴 것이라는 논리였다. 하지만 올 들어 시중 금리가 가파르게 오르면서 전세대출 이자를 갚는 것보다 월세를 내는 것이 유리해졌고, 전세 수요가 반전세나 월세 시장으로 유입되면서 매물이 쌓이고 전셋값이 내려가고 있다.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 아실에 따르면, 11일 기준 서울 아파트 전세 매물은 4만2344건으로 한 달 전(3만6247건)보다 17%, 3개월 전(2만9656건)과 비교하면 43%나 늘었다. 올 상반기까지만 해도 2만건대 중반 수준이었지만, 6월 이후 매물이 가파르게 늘고 있다.
◇에어컨에 명품백까지...’세입자 모시기’ 경쟁
아파트 신규 입주 물량이 많은 수도권에선 전셋값 내림세가 더욱 가파르다. 지난 6월부터 약 4500가구 입주가 진행 중인 인천 검단신도시가 대표적이다. ‘예미지트리플에듀’ 전용 84㎡는 지난 6월 3억2000만원에 전세로 거래됐는데 9월에는 2억5000만원에 계약됐다. 지난달 입주한 ‘검단신도시 2차디에트르더힐’은 전용 84㎡ 매물 호가가 1억8500만원까지 떨어졌다. 경기 수원시 영통구 ‘힐스테이트 영통’ 84㎡는 작년 5월 전세 실거래가(8억원)보다 2억7000만원 떨어진 5억3000만원에 지난 8월 거래됐다.
전세 세입자를 구하지 못해 안달이 난 집주인이 파격적인 조건을 내거는 경우도 늘고 있다. 서울 강남구의 한 아파트를 전세로 내놓은 40대 집주인은 지난달 800만원을 들여 천장형 에어컨을 모두 교체해주는 조건으로 세입자를 구했다. 최근 인터넷 부동산 커뮤니티에서는 충남의 한 아파트를 전세 매물로 내놓으면서 1000만원 넘는 명품 핸드백을 선물로 주겠다는 글이 화제가 됐다.
전문가들은 전셋값이 단기간에 급락하면 전세를 끼고 집을 사들인 갭 투자자가 보증금을 제때 반환하지 못해 세입자까지 피해를 보는 부작용이 확산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지난 정부 때 과도하게 오른 전셋값 하향 안정은 바람직하지만, 전세시장 경착륙이 가져올 사회적 비용도 만만치 않다”며 “세입자를 구하지 못하는 집주인이 퇴거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대출 규제를 일부 완화하고, ‘깡통 전세’에 대비한 보증 상품을 확대하는 등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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