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 시세보다 1억 높은 추정 분양가".. 文정부 사전청약 인기 시들
남양주왕숙 등 시세 역전 현상
김해 등 지방 미분양 가능성 ↑
문재인 정부가 집값 안정을 위해 야심차게 내놓았던 사전청약의 매력이 1년 만에 사라졌다. 도입 당시 최대 5년 후의 분양가를 예측한 '추정 분양가'의 신뢰도가 낮아 불확실성이 크다는 지적이 현실화되고 있다.
◇사전청약 시세 역전 현상 속출= 3일 국토교통부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정부가 올해 진행한 7차례의 사전청약지 대부분에서 추정 분양가가 주변 시세보다 높아지는 '시세 역전현상'이 나타났다. 특히 가장 최근 사전청약을 진행한 남양주왕숙의 경우 인접 단지의 최근 거래가보다 최대 1억원 높은 추정 분양가가 책정됐다.
지난 7월 실시한 공공 사전청약에서 남양주왕숙 전용면적 84㎡는 추정 분양가 4억8000만~5억6000만원에 공급됐다. 당시 남양주왕숙 단지의 경쟁률은 평균 8.1대 1로 높은 참여율을 보였고, 특히 남양주왕숙2 84㎡형은 90.3대 1로 최고 경쟁률을 기록했다. 남양주왕숙2의 경우 다산 신도시와 인접해 생활권 공유가 가능하고, 해당 지역의 집값 대비 60% 수준에 분양가가 책정돼 인기가 높았다.
하지만 상대적 선호도가 낮은 남양주 진접읍의 경우 경쟁률이 낮았다. 진접읍에 위치한 남양주왕숙B2 84㎡형의 경쟁률은 5.3대 1로 앞서 지난해 공급한 남양주왕숙B1 84㎡형(42.4대 1) 대비 8분의 1로 하락했다. 진건읍에 공급된 S11, S12 역시 각각 6.9대 1, 6.5대 1을 기록하며 경쟁률이 전년의 5분의 1 이하로 떨어졌다. 집값 하락이 본격화되면서 지역별 양극화가 뚜렷해진 것으로 풀이된다.
사전청약 추정 분양가는 집값이 최고점에 달했던 당시 시세의 80% 수준으로 책정됐다. 하지만 작년 하반기부터 부동산 시장이 급격하게 식었고, 현 시점에서 당시 가격이 큰 이점으로 작용하지 못했다.
특히 금리 상승 기조에 따라 부동산 하락기가 지속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면서 최소 2~3년 뒤 본 청약이 진행되는 시점에는 추정 분양가의 의미가 완전히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일부 지역에서는 이미 주변 시세가 추정 분양가보다 낮아지는 현상이 발생했다. 남양주 진접읍에 공급된 남양주왕숙B2 84㎡의 추정 분양가는 4억8000만원으로 책정됐지만, 인근 남양주더샵퍼스트(2021년 입주) 84㎡는 4억2000만원에 거래됐다. 사전청약이 논의되던 작년 7월 이 아파트의 실거래가는 5억9580만원으로 최고가를 썼었다. 진접센트레빌1단지(2009년 입주) 84㎡는 지난달 3억9000만원에, 진접 부영사랑으로(2009년 입주) 84㎡는 이달 4억3500만원에 매매됐다.
남양주왕숙 S11·S12가 공급된 진건읍 역시 84㎡형에 5억2000만원의 추정 분양가가 책정됐지만, 인근 남양주한신그린, 한신그린1차(1991년 입주)는 3억1000만원대, 현대(1998년 입주)는 4억5000만원대에 실거래가 이뤄지고 있다.
남양주 외에도 84㎡형이 3억7000만원에 공급된 화성태안3은 현재 주변 시세가 3억6000만~3억9000만원에 책정돼 있고, 최근 한 달만에 1억원이 빠질 정도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평택고덕A19와 A18-2 역시 최근 주변 집값 하락세와 맞물려 각각 7.3대 1, 2.2대 1의 경쟁률에 그쳤다.
◇"추정 분양가, 시장 상황 반영해야"= 전문가들은 사전청약 도입 당시 향후 시장 상황이 급변할 수 있는 우려가 있어 '추정 분양가'를 좀 더 신중하게 반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추정 분양가 매뉴얼을 만든 국토부와 심의를 담당한 HUG는 "사전청약 주택은 분양가 상한제가 적용되기 때문에 시장 변화에 따른 분양가 변동폭이 크지 않을 것"이라며 부동산 시장 분석 없이 추정 분양가를 책정했다.
국토부는 사전청약 공고문에 본청약 시점에 분양가가 변동될 수 있다고 안내하긴 했지만, 변동 폭을 제한하는 장치는 마련하지 않았다. 다만 사전청약 당첨자가 실제 분양가가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아무런 제약 없이 본청약을 포기할 수 있게 해 시장 변화로 인한 수분양자의 피해를 최소화했다. 하지만 사전청약 당첨 이후부터 다른 청약에 참여할 수 없어 당첨자 역시 기회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실제 지난해 사전청약을 진행하고 올해 본청약을 실시한 양주회천지구 A24블록의 경우 확정 분양가와 추정 분양가의 차이가 최대 2.7%에 그쳤다. 하지만 7개월여만에 본 청약을 실시한 양주와 달리 5년 후에야 본청약이 이뤄지는 남양주왕숙이나 4년 뒤에 진행되는 고양창릉, 평택고덕 등은 변동 폭이 대폭 확대될 전망이다. 본청약 시기에 관계없이 동일한 방식으로 추정 분양가를 산정했기 때문이다.
세금 투입이 가능한 공공사전청약과 달리 민간 사전청약에 참여한 사업자들은 더 큰 리스크가 발생한다.
기존에 건설사가 공공택지에 아파트를 공급하는 경우 택지 사용시기에 맞춰 시장을 분석하고 사업성을 판단해 착공과 분양 여부를 결정하지만, 민간 사전청약에 참여한 건설사들은 사전청약 제도 신설 이후 4개월 만에 참여해 사업성 검토가 어려웠다.
추정 분양가 역시 건설사의 의사와 관계없이 결정됐고, 향후 본청약 시점에 확정된 분양가를 조정할 수 있는 장치도 마련되지 않았다.
파주 운정이나 인천 가정 등 수도권 지역은 상황이 조금 나은 상황이지만, 김해 진례, 광주 선운 등 지방 지역의 경우 집값 하락 속도가 더 빨라질 수 있고, 이에 따라 수요가 감소하면서 미분양 발생 우려도 더 크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주장이다.
민간 사전청약에 참여한 한 중견 건설사 관계자는 "집값 최고점 시점에 주변시세보다 낮은 분양가로 수분양자를 확보하고 사업에 들어갔지만, 하락 폭이 점차 커지면서 본청약 결과를 아무도 장담할 수 없게 됐다"며 "이 상태로 시세가 더 떨어지고 미분양에 대한 대책 없이 정부가 정해진 시기에 정해준 가격으로 무작정 공급하기에는 리스크가 너무 크다"고 지적했다.
김남석기자 kns@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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