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 비전문성·널뛰는 정책에 파행.. 양천·노원도 '산 넘어 산'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 재건축 사업장은 정비사업 과정에서 벌어질 수 있는 문제들이 총집합한 현장이다. 먼저 코로나19 사태로 사업 절차가 미뤄졌다. 분양가상한제를 도입하면서 분양 일정·방법, 분양가를 놓고 잡음이 번졌다. 최근에는 인건비 상승과 자재난까지 겹쳐 시공사업단도 사업 추진에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공사 중단은 이런 일들이 켜켜이 쌓이면서 빚어진 것이다.
둔촌주공 재건축의 문제는 특정 조합의 사업 차질에 그치는 사인이 아니다. 서울 전체 주택 공급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서울은 부지가 매우 부족해서 정비사업이 아니면 대규모 공급이 어렵다. 둔촌주공 사업장 한 곳에서만 올해 예상 입주물량의 20% 이상을 기대했던 터였다. 앞으로 1기 신도시와 서울 양천·노원구 등에서 대규모 재건축 사업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둔촌주공과 같은 사태가 벌어지지 않는다고 보장하기 어렵다.
재건축 사업은 왜 툭하면 멈출까. 가장 큰 원인은 사업을 추진하는 조합의 비전문성, 잦은 정책 변화에 있다. 공공성이 강한 재개발은 물론 재건축에서도 공공성과 사업성이 줄다리기하며 여러 방식이 도입돼 왔다. 포기할 수 없는 두 가지 성격을 두고 이해관계자들이 이견을 빚다 보니 모두가 만족하는 결론을 얻기 어려운 실정이다.
18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재건축 사업을 견고하게 막아서는 ‘수문장’은 안전진단이다. 서울 노원구 태릉우성 아파트는 지난해 7월에 2차 정밀안전진단 문턱을 넘지 못했다. 1985년에 지어져 재건축 연한을 훌쩍 넘긴 이 아파트의 안전진단 탈락은 노원구 정비사업 전체의 악재였다. 태릉우성 아파트는 지난달에 다시 예비안전진단(1차)을 통과하고, 2차 안전진단을 기다리고 있다.
관건은 새 정부에서 밝힌 재건축 안전진단 규제완화의 향방이다. 태릉우성 재건축추진위원회 관계자는 “인수위에 기존 안전진단을 토대로 비중 개선안(구조안전성 재하향)에 따라 평가받을 수 있게 해 달라고 건의한 후 (규제완화 발표를) 기다리고 있다”면서 “규제완화가 후퇴할 조짐을 보이는 것 같아서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재건축 첫 관문인 안전진단 기준은 2018년 대폭 강화됐다. 안전진단에서 구조안전성 비중을 20%에서 50%로 높이는 게 골자였다. 현장에서는 이 기준만 원래대로 돌려놔도 안전진단을 통과할 수 있으리라고 봤다. 국토교통부가 규제를 강화한 건 구조적으로 안전한데도 재건축 사업을 추진하는 사회적 낭비를 막기 위해서였다. 반면 현장에서는 정부 전제부터 잘못됐다고 지적한다.
양천구 목동에서는 지난해 안전진단에서 9단지와 11단지가 탈락했다. 목동 재건축 단지 전체에 그늘을 드리운 사건이었다. 목동은 14개 아파트 단지에 가구 수가 2만6629가구에 달하는 대형 단지다. 최종 통과한 6단지를 제외하면 11개 단지가 2차 정밀안전진단 결과를 기다리거나 신청을 앞두고 있다. 여기도 안전진단 기준만 완화하면 사업 추진이 빨라질 곳으로 꼽힌다.
안전진단을 통과해도 난관은 많다. 정부에선 정비사업이 시장에 미칠 부작용을 차단하려고 분양가상한제,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를 도입했다. 그러자 조합은 사업성을 높이기 위해 사업 시행시기와 방법을 저울질해 왔다. 이 때문에 사업 계획을 자꾸 변경하는 문제가 빚어졌다. 김인만 김인만부동산경제연구소 대표는 “둔촌주공 재건축도 분양가상한제 때문에 꼬이기 시작했다. 사업할 것 하면서 잘못된 걸 바로잡아야 했는데 공사 중단까지 이어진 이례적인 경우”라면서 “정부도 분양가를 지금처럼 강하게 누르지 말고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동안 안전진단의 벽에 가로막혀 사업을 진행하지 못했던 재건축 사업을 한꺼번에 진행하는 것도 난제다. 비교적 단기간에 일괄적으로 지어진 대규모 아파트 단지의 경우 재건축 연한을 한꺼번에 넘긴다. 통계청에 따르면 노원구에는 1980년대에 아파트만 5만8698가구가 입주했다. 1990년대에는 더 늘어 7만3856가구에 달했다. 이 경우 당장 시급한 곳부터 재건축 절차를 진행한다고 해도 전세 수요의 폭증을 막기 어렵다. 김 대표는 “재건축 사업 절차를 앞당기면서 이주 수요도 해결하는 건 민간 혼자로는 쉽지 않다”며 “공공 부문에서 기획 단계부터 도움을 주면서 조합원 이익을 크게 해치지 않도록 균형을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택현 기자 alle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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