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변에 살면 윤석열 찍었다

주영재 기자 2022. 3. 20.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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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부동산 계급투표 양상…쫙 갈린 서울 지역 표심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중과세율 적용을 최대 2년간 한시적으로 배제해 다주택자의 주택 매각을 유도하겠다는 공약을 제시했다. 사진은 3월 15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전망대 ‘서울스카이’에서 바라본 주변 아파트 단지의 모습 / 연합뉴스

이번 대선은 0.73%포인트 차이로 승패가 갈렸다. 득표수로 따지면 불과 24만7077표다. 전통적인 강세 지역으로 여겨졌던 서울에서 31만766표 차이로 진 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에겐 결정타였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강남3구와 ‘마용성’(마포·용산·성동)을 비롯해 종로·중구, 광진·동대문구, 양천·영등포구, 동작·강동구 등 14곳에서 승리했다. 반면 이재명 후보는 은평·구로·서대문·도봉·강북·성북·노원·중랑·강서·금천·관악구 등 11곳에서 이겼다. 지난해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오세훈 시장이 박영선 후보를 전 지역에서 앞선 것에 비하면 그나마 사정이 나아졌지만 2017년 대선과 2018년 서울시장선거에서 민주당이 전 지역을 석권했던 것에 비하면 여전히 민주당을 향한 민심은 싸늘하다고 봐야 한다.

특히 한강을 끼고 있는 자치구 중 강서구를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윤석열 당선인이 우세를 보인 게 눈에 띈다. 그중에서도 강남구 압구정동은 1·2위 후보 간의 득표율 차이가 무려 70.6%에 달했다. 그 뒤를 이어 강남구 대치1동(63.8%p), 강남구 도곡2동(63.6%p), 서초구 반포2동(61.6%p) 순으로 득표차가 컸다. 부동산 가격이나 정책에 따라 살림살이가 영향을 받는다는 생각에서 자신에게 유리한 결과를 가져올 후보에게 투표하는 걸 ‘부동산 계급투표’라고 부른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번 대선은 전형적인 부동산 계급투표였다. 대선 당일 발표된 방송 3사의 출구조사 결과 1주택자(46.5%)보다 전월세 거주자의 이재명 투표 비율(52.2%)이 더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 결과도 이번 대선이 부동산 계급투표였음을 방증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무주택자는 이재명에 투표

동 단위로 보면 계급투표 경향은 더욱 두드러진다. 윤 당선인은 강남(22개)·서초(18개)·송파(27개)의 전체 67개 동 중 송파구의 3개 동에서만 패했다. 삼전동과 마천1·2동으로, 모두 상대적으로 ‘낙후된’ 지역으로 꼽힌다. 강남구에서도 원룸이 많고 외부 전입 인구 비율이 높은 논현1동(21.1%p)과 역삼1동(21.1%p)에서는 상대적으로 두 후보의 득표율 차이가 적었다. 유사한 경향은 서울 외에도 인천 송도와 광주 봉선동 등 일부 고가 아파트 밀집 지역에서도 나타났다. 윤 당선인은 인천 전체에서 47.05%의 득표율로 이재명 후보에 1.96%p 밀렸지만 대규모 신축 아파트들이 많이 들어선 송도 신도시에서는 송도2동(15.6%p), 송도4동(13.9%p), 송도1동(11.2%p) 등에서 큰 격차를 보이며 1위를 차지했다. 광주에서도 윤 당선인은 겨우 12.72%를 득표하는 데 그쳤지만 고가 아파트가 많은 남구 봉선동(21.9%)과 동구 학동(19.3%)에서는 상대적으로 득표율이 높았다.

부동산 가격이 높은 지역에서 보수 진영 후보의 득표율이 높은 것은 과거에도 나타난 현상이다. 하지만 그 경향성이 시간이 흐를수록 뚜렷해지고 있다. 여론조사기관 리서치뷰가 지난 3월 15일 부동산 6구(강남3구+마용성) 지역에서 아파트의 ㎡당 매매가와 국민의힘 계열 후보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조사해 발표한 결과를 보면 2017년 대선에서 R제곱값(결정계수·종속변인과 독립변인 사이에 상관관계가 높을수록 1에 가깝다)은 0.46을 보인 후 2018년 지방선거에서 0.51, 2020년 총선에서 0.63으로 올랐고, 이번 대선에서는 0.68을 보였다. 보통 결정계수가 0.81 이상이면 설명력이 ‘매우 높다’고 보고, 0.49 이상이면 ‘높다’고 해석한다. 0.16 이상이면 상관관계가 있다고 본다. 부동산 10구(부동산 6구+광진·양천·영등포·동작)로 지역을 넓혀도 결정계수는 2017년 대선(0.45) 이후 줄곧 커졌고 이번 대선에서는 0.70을 보였다. 부동산 10구를 제외한 지역에서는 결정계수가 큰 설명력을 보이지 않았지만 점차 그 값이 증가하는 추세다.

안일원 리서치뷰 대표는 “서울에서도 가장 강력한 변수는 여전히 지역구도지만 출신지를 알 수 없어 분석이 불가능하다. 다만 (분석할 수 있는 변수 중) 다른 지역과 달리 서울은 평균연령과 득표율의 상관관계가 거의 소멸한 대신 아파트 구도가 가장 큰 변수로 자리 잡았고, 특히 이번 대선에서 맹위를 떨쳤다”고 설명했다. 부동산 가격 상승과 맞물려 공시지가 현실화와 보유세와 종부세 논란이 계속 이어지면서 민심을 자극했다는 분석이다.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도 “서울에서 이재명 후보가 격차를 크게 벌인 지역은 거의 없다는 점에서 서울 전역이 부동산과 관련해 상당히 편향적인 투표를 했다고 생각한다”면서 “사람들이 선호하는 주거지에서 그 편향성이 특히 노골적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부동산 계급투표의 경향이 처음 나타난 건 아니지만 이번에 두드러졌다고 볼 수 있다”면서 “서울이 지방에 비해 훨씬 여러 출신지 사람들이 모여 살고, 부동산 가격의 지역별 격차 또한 큰 곳이라 (부동산 계급투표의) 패턴이 더 뚜렷하게 드러나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그러나 “이번 대선 결과를 좁게 해석해 부동산 정책 실패를 원인으로 본다면, 틀린 해석이 될 것”이라면서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 자산이 있는 사람은 보수 진영 후보를 지지해온 경향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부동산 가격 상승에 따른 ‘조세저항 투표’

서울의 경우 자가거주 비율이 43.5%로 전국에서 가장 낮다. 특히 강남구는 40%를 밑도는 것으로 알려졌다. 강남권의 높은 윤석열 당선인 득표율은 집주인의 표심만이 아니라 세입자의 표심까지 끌어들였다는 의미다. 세입자들이 유주택자들과 같은 방향으로 투표하는 건 일견 모순처럼 보인다. 하지만 최준영 전문위원은 “강남권은 고가 전세에서 사는 고소득 전문직종 종사자들이 많다. 이들을 일반적인 세입자의 범주로 묶기엔 애매한 측면이 있다”며 “임대차 3법도 계약 갱신의 혜택을 고루 체감하기 전에 물량 부족 현상에 직면하면서 비싼 임차료를 내야 하는 불편함이 사회적으로 더 크게 인식된 면이 있다”고 말했다. 전월세 거주자를 위한 임대차 3법이 세입자들의 표심을 잡기엔 시간적 여유가 부족했다는 설명이다.

그럼에도 부동산 가격대에 따라 선호 후보의 우위가 갈렸다는 점에서 부동산 계급투표라는 분석은 여전히 유효하다. 정확히 말한다면 이번 대선은 ‘조세저항 투표’의 경향이 강했다고 보는 전문가들도 많다. 부동산 가격 상승에 따라 세부담이 커지자 이런 상황을 초래한 정부·여당을 심판해야겠다는 여론이 일었고, 이에 더해 큰 폭의 감세를 약속한 야당 후보가 반사 이익을 얻었다는 진단이다.

20대 대선일인 3월 9일 서울 강남구 삼성2동 제3투표소에서 유권자들이 투표 차례를 기다리며 서 있다. / 연합뉴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자산 가치가 아무리 올라도 결국 세금은 소득으로 내야 한다”면서 “선진국은 집값이 뛰면 세수가 몰려들지 않도록 세부담을 낮춰주는데 우리는 (미처 손쓸 틈도 없이) 짧은 기간 부동산 가격이 큰 폭으로 뛴 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증세론자인 우 교수는 “보유세 강화가 맞다고 보지만 지금처럼 세부담이 빠르고 급격하게 커진 건 문제였다”며 “서울에선 시민과 납세자들의 저항 분위기가 꽉 차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물가상승률과 2% 중 작은 것으로 세부담의 상승률을 제한하는 미 캘리포니아주처럼 최소한의 상한액을 정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가구가 아직 수십만원 수준으로 액수가 작다고는 하지만 서울 아파트 소유자의 거의 20%가 종부세를 내고 있는 실정이다. 우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종부세의 납부 규모가 클수록 윤석열 당선인의 득표율이 높았다.

■미래소득 감소할 수 있다는 위기감 작용

부동산 가격 상승에 따라 공시지가가 올랐고, 그에 따라 재산세도 올랐다. 재산세 증가율에 따른 윤석열 당선인의 득표율 변화도 조세저항 투표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서울 25개 자치구의 2020~2021년 사이 재산세 증가율과 윤 당선인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면, 상관계수가 0.646으로 상당히 높게 나왔다. 2019~2021년 사이의 재산세 증가율과의 상관관계는 0.587로 최근 2년 사이의 재산세 증가가 더 큰 영향을 줬음을 알 수 있다.

문재인 정부는 이명박 정부 이후 감세 기조를 정상화하겠다면서 소득세와 법인세를 올렸다. 부동산 보유세와 금융 관련 세제 또한 강화했다. 고소득 전문직, 대기업이나 공공기관 종사자들이 대부분인 강남의 세입자들이 이런 ‘증세’의 피해를 입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이번 선거를 계급투표로 본다면, 그 실체는 부동산 같은 재산보다 소득에서 찾아야 한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 김공회 경상대 경제학부 교수는 “부동산 과세나 소득세를 포함해 여러 세금은 기본적으로 어디에 매기더라도 결국 소득에서 나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부동산 계급투표를 한꺼풀 벗기고 들어가면 결국 부동산 가격보다는 소득과의 연관성이 더 크다는 명제가 나올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종부세가 아무리 많다고 해도 지난 몇년간 급등한 소유 부동산의 평가액에 비하면 그야말로 ‘새 발의 피’인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당장 만질 수 있는 돈은 아니다. 반면에 보유세 등은 지금 바로 주머니에서 빠져나가는 돈이다. 가진 돈의 많고 적음을 떠나 과거보다 더 많이 내야 한다면 불편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고소득층의 세금 부담을 늘리겠다는 게 문재인 정부의 기본 정책 방향이었다. 결국 미래 소득이 감소할 수 있다는 위기감을 더 크게 느낀 고소득자들의 윤석열 지지 현상이 강화됐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김 교수는 “이 정권이 재생산될 경우 이들이 위협적이라고 느낄 만한 소지는 충분히 있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윤 당선인 지지층과 반대되는 쪽에서는 왜 계급투표를 하지 않았느냐가 앞으로 진보 진영의 과제로 남게 될 것으로 본다”면서 “상대적으로 진보적 성격의 정권 하에서 부자들이 계급성을 더 자각하기 쉽다”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치러질 6·1 지방선거에서도 이런 경향이 이어질까. 안원일 대표는 “이번 대선은 서울에서 4.83%p 차이가 나면서 사실상 승패가 갈렸다. 민주당으로선 계급구도가 심화된 서울의 패배가 가장 뼈아플 텐데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이런 ‘아파트 구도’가 그대로 이어질지, 아니면 다소 주춤할지 지켜볼 대목”이라고 말했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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