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살 걸ㅠㅠ' 노도강중 전세민 '강제 탈서울' 실태 [이슈&탐사]

문동성,박세원,구자창,김경택 2021. 5. 19.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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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난맥 4년..서울 인구 리포트] ②전세대란에 의정부·남양주行
한 남성이 지난 12일 경기도 의정부시 호원동 인근 아파트 단지를 가리키고 있다. 권현구 기자


박모(36)씨는 경기도 의정부시에서 서울 중구 남대문시장으로 출근한다. 남대문시장에서 장사를 하고 있다. 2018년 말 서울 노원구 상계동 24평(전용면적 59㎡) 구축 아파트에서 의정부동의 30평(전용면적 84㎡)대 신축 아파트로 이사한 뒤 출퇴근 거리는 더 멀어졌다.

박씨 부부는 아이가 곧 초등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돼 좀 더 넓은 집으로 이사하고 싶었다고 했다. 당시 노원구의 30평대 아파트를 알아봤는데, 3억6000만원 밑으로는 매물이 없다고 했다. 박씨는 “차라리 의정부 신축 아파트로 나가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며 “그때는 노원구 전셋값으로 의정부 신축 아파트를 살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박씨가 의정부시 아파트를 살 때는 분양권 전매 규제 이전이었다. 주택담보대출도 70% 이상 받을 수 있었다. 박씨는 ‘분양권 프리미엄’을 포함해 4억2200만원에 30평대 새 아파트를 매입했다. 입주 때 본 이웃들은 서울 도봉구 창동, 강북구 미아동에서 이사 온 사람들이었다. 이 아파트의 최근 실거래가는 입주 때보다 3억원 가량 오른 7억원대다. 박씨는 “윗집 아주머니의 딸이 분양권 프리미엄이 비싸다고 안 들어왔는데 지금 땅을 치고 후회한다더라”고 말했다.

2020년 노·도·강·중, ‘강제 탈서울’ 급증

박씨처럼 비교적 일찍 ‘탈서울’ 하지 않은 사람들은 갈수록 커지는 집값 부담을 피하기 어려웠다. 서울 외곽에서 버티던 사람들의 선택은 2020년 경기도 이주 폭증으로 나타난 것으로 분석됐다.

서울 동북부인 노원·도봉·강북·중랑구(노·도·강·중) 지역이 이런 경향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2020년 경기도 의정부시로 이동한 인구가 급증했다. 이 지역에서 의정부시로 전입한 건수는 2017년 5252건에서 2018년 5496건, 2019년 5515건으로 완만하게 상승했다. 2020년에는 7085건으로 전년 대비 28.5% 늘어났다. 국민일보가 통계청의 국내인구이동통계 자료를 분석한 결과다.


서울 집값이 들썩이면 경기권으로 밀려나가는 인원도 함께 출렁였다. 노·도·강·중 지역에서 의정부시로 전입한 인원은 2013년 8557명에서 한 해 400여명씩 늘어나다가, 2016년 9008명으로 소폭 감소했다. 서울 집값이 상승한 2018년에는 9750명으로 급증한 후 비교적 안정세를 보인 2019년 초반 9320명으로 다시 감소했다. 2020년에는 1만2444명으로 2019년에 비해 33.5% 폭증했다.

2017년 상반기만 해도 노·도·강·중의 아파트 평균 전세가격은 높지 않은 편이었다. 2017년 1월 노원구의 아파트 평균 전세가격은 2억2999만원으로 경기도 평균(2억2680만원)보다 300만원 정도 높았다. 하지만 2019년 7월 노원구는 2억6684만원, 경기도 평균은 2억3961만원으로 2700여만원이나 차이가 벌어졌다.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아파트 단지들. 이한결 기자


집값 폭등 이후 노·도·강·중 주민들의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살고 있던 집에 계속 머무르기 위해선 ‘영끌’이 불가피해진 것이다. KB부동산 자료에 따르면 서울의 ㎡당 아파트 평균 매매 가격은 2017년 1월 692만원에서 2020년 12월 1222만원으로 76.6% 올랐다. 전세 가격도 덩달아 같은 기간 ㎡당 평균 491만원에서 664만원으로 35.2% 뛰었다. 노·도·강·중 지역은 전용면적 84㎡ 기준 적게는 7000만원에서 많게는 9000만원 가량 평균 전셋값이 상승했다.

경기권은 전셋값을 감당 못한 노·도·강·중 주민들의 대안이 됐던 것으로 보인다. 의정부시는 서울 어느 곳과 비교해도 아파트 평균 전셋값이 상당히 낮았다.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C노선 착공도 예정돼 있어 교통 여건 개선에 대한 기대감도 높았다. ‘전세 대란’ 또한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주택임대차보호법이 시행된 2020년 하반기 의정부로 전입한 건수(3877건)는 상반기(3208건)에 비해 20.9% 많았다.

통계청 국내인구이동통계 자료를 토대로 서울 ‘노도강중’(노원·도봉·강북·중랑구)의 순유출 지역 상위 3곳을 추린 뒤 빅데이터 분석 도구인 ‘노드엑셀’로 가공한 것이다. 화살표의 크기는 이동 규모와 비례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0년 노·도·강·중 지역에서 의정부시로 전입한 사람들이 꼽은 전입 사유 1위는 ‘주택’(42.4%)이었다. 그다음은 가족 22.9%, 직업 13.9%, 기타 11.6%, 주거환경 6.1%, 교육 2.0%, 자연환경 1.0% 순이었다. 주택은 매년 전국 전입·전출 사유 1위로 꼽히지만, 42.4%라는 수치는 평균보다 높은 것이다. 2020년 서울 시·도간 전출 사유에서 주택이 차지한 비중은 31%에 그쳤다.

의정부시 한 공인중개사는 “2020년 노·도·강·중에서 어마어마하게 이사를 왔다”고 전했다. 그는 “새 아파트를 분양받거나 주택 매매를 해서 들어온 사람들도 있다. 이들 지역 전셋값으로 의정부시 30평대는 충분히 구매가 가능했던 상황”이라고 말했다.

‘탈서울’의 기회 비용…전세·구축→자가·신축

2020년 의정부시로 ‘주택’을 찾아 떠난 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노·도·강·중 주민들이 가장 많이 몰린 곳은 송산1동(1018가구)이었다. 이어 호원1동 899건, 의정부1동 750건, 신곡2동 669건 순이었다.

송산1동 일대는 서울과 다소 떨어진 의정부 동부 지역으로, 최근 개발이 완료됐거나 개발이 예정돼 있다. 신축 아파트 입주·분양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민락 개발지구’로 불린다.

호원1동은 도봉구에 인접한 지역으로 서울 접근성이 좋다. 1호선 회룡역과 7호선 장암역 인근이다. 의정부1동은 의정부 도심 지역으로 분류된다. 신축 아파트라는 주거 환경과 개발 호재 등을 감안한 사람들이 이주한 것으로 보인다.

경기도 의정부시 신곡동 아파트 단지의 모습. 권현구 기자


이들 지역은 모두 의정부에서 “살기 좋은 동네”로 꼽히는 곳이다. 민락 개발지구 주민들이 가입한 인터넷 카페에는 노·도·강·중 지역에서 이사 온 사람들이 올린 ‘후기’가 많다. 한 카페 회원은 아이들이 자라 이사를 가려고 했는데, 서울 아파트 전셋값이 너무 비싸 의정부시 아파트로 이사했다고 했다. 다른 회원은 곧 아이를 낳을 예정이어서 노원구의 오래된 아파트에 비해 넓은 신축 아파트로 이주했다고 말했다.

2020년 노·도·강·중에서 의정부시로 전입한 연령층은 30대 2450명, 20대 2297명, 40대 1922명 순으로 많았다. 하지만 전년 대비 전입 증가폭은 70대(56.2%), 60대(51.0%), 20대(37.3%) 순이었다. 60대 이상 탈서울 규모가 2019년에 비해 50% 이상 늘어난 것이다.

퇴직한 뒤 급격히 오른 전셋값을 감당하지 못한 사람들도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호원1동의 한 공인중개사는 18일 “나이 드신 분들은 서울 아파트를 현금화해서 의정부에 집을 사고 남은 돈은 자녀들 결혼에 보태더라”고 말했다. 또 “서울에서 빌라에 살던 젊은 사람들이 집을 팔고 의정부 아파트로 옮겨온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노·도·강·중 ‘하향 이동’은 4년간 지속됐다

2017~2020년 노·도·강·중뿐 아니라 다른 대부분의 서울 자치구에서도 사람들이 외곽으로 밀려나는 모습이 공통적으로 나타났다. 노·도·강·중은 이런 흐름이 심화된 지역이었다. 서울 25개 자치구의 2017~2020년 순유출 상위 10곳을 추린 뒤 전세 가격이 더 높은 곳으로 간 사람들과 더 낮은 곳으로 간 사람들의 비중을 살펴본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


KB부동산의 ㎡당 아파트 평균 전세 가격 자료를 기준으로 더 비싼 데로 간 것을 ‘상향 이동’, 더 싼 데로 간 것을 ‘하향 이동’이라고 한다면, 노원구의 하향 이동률은 2017년 77.3%이었다. 이어 2018년 96.4%, 2019년 76.3%, 2020년 77.9%로 나타났다. 4년간 노원구의 평균 하향 이동률은 88.3%였다. 도봉구, 강북구, 중랑구의 최근 4년간 하향 이동률은 각각 87.0%, 100%, 95.7%로 집계됐다.

강북구는 노·도·강·중 지역 중 하향 이동이 가장 뚜렷했다. 강북구 주민들은 전세 가격이 비교적 낮은 도봉구로 이사를 가거나 의정부‧남양주·양주시로 밀려나는 모습을 보였다. 강북구에서 의정부‧남양주·양주시로 빠져나간 인구는 2017년 1233명에서 2020년 2275명으로 늘어났다.

도봉구민은 2017년 경기도 남양주·의정부·양주시로 2039명이 빠져나갔다. 2020년에는 3885명이 같은 지역으로 이주했다. 중랑구는 2017년부터 남양주·의정부·구리시로 4000명 안팎이 매년 꾸준히 빠져나가는 흐름이었다.

문동성 박세원 구자창 김경택 기자 theMo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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