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론과 달리 재건축 풀겠다는 박영선.. 당선되면 지킬 수 있을까

유병훈 기자 2021. 3. 30.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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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달 7일 치르는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가 본격적으로 달아오르면서 부동산 문제가 선거의 최대 쟁점으로 떠올랐다.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와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후보 모두 부동산 공약을 쏟아내는 가운데, 여당 후보인 박영선 후보의 경우 당론과 상반된 공약까지 잇달아 내놓으며 실현 가능성에 관심이 쏠리는 상황.

부동산 시장에서는 박영선 후보의 공약이 선거용 아니겠냐는 의구심도 나오고 있다. 선거 전 여론조사에서 오세훈 후보에게 밀리고 있는 박영선 후보가 부동산으로 싸늘해진 민심을 달래기 위해 지키지 못할 가능성이 있는 정책을 일단 발표부터 하고 있다는 시각이다.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서울시장 후보/연합뉴스

30일 정치권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박영선 후보는 오세훈 후보에게 여론조사 상 큰 차이로 열세에 놓였다. 박영선 후보는 조선일보·TV조선이 공동으로 칸타코리아에 의뢰해 지난 27일 서울 유권자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30.3% 지지율을 기록해 오세훈 후보(55.7%)에 25%포인트가량 뒤졌다. 자세한 조사 개요와 결과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조급해졌나"…당정과 다른 공약 쏟아내는 朴

선거 초반부터 연이어 오 후보에게 뒤지고 있다는 여론조사 결과들이 나오자, 박 후보 측은 정부·여당과 결이 다른 부동산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박 후보는 지난 28일 언론 인터뷰에서 "문재인 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잘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내가 서울시장이 되면 부동산 정책과 관련해서는 확실히 달라지는 부분이 많이 있고, 다를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 발언과 공약을 봐도 정부와는 상반된 경우가 많다.

강남 재개발·재건축의 경우, 박 후보는 "반드시 공공주도 형태를 고집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재건축·재개발은 공공 주도가 최선은 아니다. 입지·상황에 따라 민간의 활력·효율이 더 필요한 곳도 있다"는 것이다. 공공 재개발·공공 재건축을 통해 철저하게 개발이익을 환수하겠다는 정부·여당의 정책 기조와 상반된 입장이다. 그는 다만 재개발·재건축을 다 허가해주면 서울은 다시 투기판이 될 것이라며 공공과 민간 참여형 재개발·재건축을 추진하겠다고 덧붙였다.

공동주택 공시가격도 마찬가지다. 국토교통부가 지난 15일 발표한 공시가격(안)에 따르면, 전국의 공동주택 공시가격은 지난해 대비 19.08%, 서울은 19.91% 급등했다. 이에 ‘세금 폭탄’ 우려가 커지자 박 후보는 26일 "공시지가가 오르면 세금이 늘어나는데 코로나19로 민생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서민의 부담이 많아 완충지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9억원 이하 아파트의 공시지가 인상률이 10%를 넘지 않도록 조정제도를 마련하는 방안을 민주당에 강력히 건의하고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관철했던 35층 층고 규제, 이른바 ‘35층 룰’과 관련해서도 서울이 남산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도시인만큼 남산의 경관을 해치지 않는 경우 층고 제한을 풀겠다고 말했다.

◇ ‘집값 잡기’보다 어려운 ‘黨政설득’…"믿을 수는 있나" 차가운 눈초리

박 후보의 ‘전향적’인 공약에도 시장의 눈은 의구심으로 가득 차 있다. 박 후보, 더 나아가 민주당에게 실제 공약을 지킬 정책적 의지가 있겠냐는 것이다.

그는 이달 초 라디오 인터뷰에서 서울 부동산 가격 상승 원인에 대해 "코로나라는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기면서 돈이 많이 풀렸다"며 "그래서 부동산 정책에 차질이 빚어졌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정책 기조는 옳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외부 변수에 정책이 좌초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박 후보는 또 국회의원 시절이던 지난 2018년 9월 대정부 질문에서 "지금 문재인 정부는 보수 정부 9년 ‘빚내서 집 사라'는 잘못된 정책의 뒷감당을 하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재건축 규제 완화’ 주장에 대해선 "(집값 상승에) 기름 붓는 격"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박 후보를 비롯해 민주당의 최근 입장은 크게 달라졌다. 민주당에서 친문 핵심으로 꼽히는 김종민 최고위원은 선거대책위 회의에서 "집권 여당으로서 부동산 문제에 대해 진심으로 국민들께 사과드려야 마땅하다"라고 밝혔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투기를 억제하고 집값을 안정시키기 위한 정책이었지만, 현실은 거꾸로 갔다"는 것이다.

홍익표 정책위의장도 같은 날 "부동산 시장 안정 기조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장기 무주택자와 생애 최초 주택 구입자에 제공되는 각종 혜택의 범위와 대상을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박 후보와 보조를 맞추기 위한 움직임으로 해석되지만 부동산 시장과 정치권에서는 심드렁하다. 부동산 커뮤니티에서는 "선거가 대단하긴 하다" "이기려고 별 쇼를 다 한다" 등의 반응이 나왔다.

일부에서는 지난해 4월 총선 당시 민주당 대표였던 이낙연 의원과 원내대표였던 이인영 통일부 장관이 강남·서초·송파 지역에서 "1가구 1주택 장기보유 실거주자에 대한 종부세를 완화하겠다"고 밝혔지만, 선거 뒤 "유세에서 나온 발언"이라고 선을 그으며 유야무야 넘어간 사실을 거론하기도 했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오른쪽)가 지난해 7월 국회 본회의장에서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통과되자 환호하고 있다. 왼쪽은 김진표 의원./연합뉴스

설령 박 후보와 민주당에게 의지가 있다고 해도 실현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재건축·재개발에서 민간의 역할을 확대하겠다는 박 후보의 공약은 문재인 대통령의 의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문 대통령은 지난 15일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부동산 시장 안정을 위한 공공주도형 부동산 공급대책은 어떤 경우에도 흔들려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지난 2월 국토부 업무 보고에서도 "도심지에서도 공공의 주도로 충분한 물량의 주택공급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변창흠표 부동산 정책을 반드시 성공시켜야 한다"도 했다.

공시가격 인상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10월 당정이 발표한 ‘공시가격 현실화 로드맵’에 따르면 정부는 2030년까지 현실화율을 90%까지 올릴 예정이다. 그런데 올해 19%가 넘는 인상률 중 정부가 밝힌 현실화율 인상 폭은 1.2%포인트에 불과했다. 정부는 "나머지는 집값 시세 상승분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따라서 시장 상황에 따라 로드맵 일정에 맞추기 위해서는 현실화율 로드맵이나 박 후보의 공약 중 하나는 포기해야 할 수 있다.

익명을 요구한 부동산 전문가는 "여당이 지금까지 보여준 정책과 지향이 있기 때문에 박 후보가 그에 반하는 공약을 내놓는다고 해서 시민들이 곧이곧대로 믿을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정치권 한 관계자도 "박 후보의 부동산 공약은 기존 당론과 매우 달라 민주당 골수 지지층에게는 반감을 사고 중도층에게는 외면받을 수 있다"면서 "설령 당선되더라도 부동산 공약 실현을 두고 청와대와 마찰을 빚을 가능성을 감수하겠나"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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