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H 땅 투기 파문' 20일.. "갈길이 먼데, 믿음이 안간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일부 직원의 사전 땅 투기 의혹이 처음 제기된 지 3주가 지났다. 광명·시흥 신도시 부지에서 시작된 의혹은 다른 3기 신도시 예정지는 물론 일부 정·관계 인사들까지 포함된 것으로 밝혀지면서 온 나라를 들끓게 했다.
결국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 전수조사를 지시하고 대국민 사과까지 했지만, 의혹은 여전히 가라앉지 않고 현재진행형이다. 향후 부동산 공급 정책은 물론 정치 지형까지 바꿀 수 있는 변수로 떠오른 LH 사태의 진행과 전망을 정리했다.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지난 2일 기자회견을 열고 LH 직원 13명이 지난 2018년부터 광명·시흥 신도시 부지 일대에 2만3000㎡를 매입해왔다고 밝혔다. 이들 지역은 지난 2월 정부가 7만 가구 규모의 3기 신도시를 짓겠다고 발표한 곳이다. 해당 직원들은 필지를 보상의 최저 기준인 1000㎡에 가깝게 쪼개고, 영농계획서를 작성해 매입한 농지에는 용버들 등의 묘목을 빼곡히 심었다. 업계에서는 보상금을 극대화하기 위한 고도의 투기 행태로 이해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첫 의혹이 터진 뒤 불과 하루 뒤인 지난 3일 국무총리실을 사령탑으로 세우고 "전수조사를 빈틈없이 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러나 첫 정부 합동조사단에는 문재인 정권과 마찰을 빚던 검찰과 감사원이 제외되고 국토교통부가 포함돼 논란이 일었다. 특히 변창흠 국토부 장관은 LH 직원들이 땅 투기를 할 당시 LH 사장이었기에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꼴"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문 대통령의 지시 이후에도 고양 창릉·남양주 왕숙 등 다른 3기 신도시 부지들과 과천 미니 신도시 등에서 비슷한 사전 투기 의혹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그뿐 아니라 현직 직원이 토지 경매 관련 유료 인터넷 강의를 개설한 사실이 드러나는 등 LH의 총체적 기강 해이가 밝혀졌다. 하지만 지난 11일 합조단 1차 조사 결과 드러난 투기 의심 인원은 참여연대와 민변이 밝힌 13명을 포함해 20명이었다. ‘전수 조사’라는 말이 무색하게 7명을 추가 적발한 것이다. 여론은 정부의 진상 규명 의지에 불신을 보내기 시작했다.
LH와 변 장관도 스스로 파문을 키웠다.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LH 직원들이 쓴 것으로 추정되는 네티즌들이 "LH 직원들이라고 부동산 투자하지 말란 법이 있나" "차명으로 다 (투기)해놨는데 어떻게 찾을 텐가. 우리 회사만의 혜택이자 복지인데 꼬우면 우리 회사(LH)로 이직하라" 등의 글을 올려 빈축을 샀다. 결국 LH는 이들을 경찰에 고발했다.
특히 변 장관은 "LH 직원은 신도시 개발 정보를 얻어 보상받기 위해 토지를 구입한 것이 아니다. 2025년 이후 특별관리지역에 대한 규제가 풀리면 민간개발될 걸 알고 구매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을 해 야당은 물론 여당에서도 부적절한 언행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이같은 발언에 여론의 분노가 확산되자, 변 장관은 지난 12일 문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명했으나 문 대통령은 "변 장관이 주도하는 공공주도형 주택공급 대책과 관련한 입법 기초 작업은 마무리해야 한다"며 사의를 사실상 반려했다. 문 대통령 역시 지난 16일 "국민들께 큰 심려를 끼쳐드려 송구한 마음"이라며 "우리 사회의 부패 구조를 엄중히 인식하며 더욱 자세를 가다듬고 무거운 책임감으로 임하고자 한다"고 대국민 사과를 발표했다.
19일에는 고위 당·정·청 회의에서 "부동산 관련 업무를 하는 공직자에 대해서는 LH는 물론 지방 공기업을 포함해 부동산 재산 등록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고위공무원에 대해서만 실시하던 재산 공개 대상을 지방자치단체와 지방공무원, 공공기관까지 확대한다는 것이다.
같은 날에는 청와대에서도 투기 의심 정황이 나왔다. LH에 근무하는 형을 둔 청와대 대통령 경호처의 과장이 지난 2017년 9월경 형의 배우자 등 가족과 공동으로 3기 신도시 지역 토지 413㎡를 매입한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이날 정부의 2차 조사 발표에서도 3기 신도시와 그 인접 지역에서 토지거래를 한 공무원과 공기업 직원 28명이 추가로 적발됐다.
◇ 전문가들 "3기 신도시는 개문발차할 듯…LH 해체론은 시기상조"
정부가 국토부나 지자체, LH 직원들을 대상으로 전수 조사를 진행하고 있지만, 불붙은 여론의 분노를 가라앉히기엔 모자란 수준이다. LH 사태와 관련된 뉴스에는 "부동산을 폭등 시켜 일반 국민의 혈세를 빼앗아 놓고는 LH에게 퍼줬다"는 등의 댓글이 지지를 받고 있다. 이같은 불신을 일소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조사 결과가 필요하다.
특히 LH와 개발 관련 부처의 투기 의혹을 제대로 밝히려면 임직원뿐 아니라 가족과 지인, 친·인척까지 조사해야 하지만, 이에 대한 뚜렷한 방안도 없는 실정이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투기 중에는 차명 투기도 분명히 있을 것"이라며 "지분 쪼개기 수법을 동원했다면 친·인척까지 껴서 더 복잡할 것이다. 이런 부분도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합조단의 뒤를 이어 전수조사를 맡은 정부합동특별수사본부(특수본)는 친·인척이나 퇴직자에 대한 수사 권한과 인력이 없어 난색을 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국민은 정부의 조사 결과는 물론 조사 의지에도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서울에 사는 직장인 오모(36)씨는 "정치적 사안에 대해서는 법의 경계를 넘어서며까지 수사하던 정부가 LH에 대해서는 권한이 없다는 등 조사에 소극적 모습"이라면서 "결국 정·관계의 고위직들도 다 유착·결탁했기 때문 아니겠나"고 말했다. LH 직원으로 추정되는 한 네티즌은 "사내에서 듣기로 정치인·국회의원이 회사 중역들보다 더 해 먹었다고 들었다"며 "시선을 돌리려고 LH만 죽이려는 것 같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LH 발 파문이 일파만파 커지자 부동산 시장은 3기 신도시의 향방에도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 정부는 3기 신도시 일정에 차질을 빚지 않도록 진행하겠다고 밝혔지만, 투기 문제를 확실하게 매듭짓지 않고서는 오는 2025년 입주를 약속한 3기 신도시가 제때 삽을 뜨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하지만 차명 투기나 친·인척 투기까지 모두 가려내려면 상당한 시일이 걸릴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 역시 3기 신도시는 개문발차(開門發車)할 것이란 전망을 내놓는다. 고준석 동국대 법무대학원 겸임교수는 "3기 신도시 일정이 변동되면 공급에도 차질이 생겨 그 피해를 국민들이 입을 수 있다"면서 "공급이 빨리 돼야 부동산 가격이 안정되고 서민들의 내 집 마련 가능성이 올라가기 때문에 예정대로 진행하는 게 맞는다"고 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정부가 현재 제시할 수 있는 공급방안은 도심 고밀도 정비사업과 신규 택지개발뿐인데, 공공이 주도하겠다며 민간 참여를 억제한 상황에서는 결국 택지개발뿐이 선택지가 없으니 3기 신도시는 진행될 것"이라고 봤다. 그는 다만 "광명·시흥 신도시의 경우 아직 제대로 된 진척이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라 매몰 비용이 없는 만큼, ‘원칙대로 한다’는 선례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취소하는 방안을 고민해봐야 한다"고 했다.
LH 역시 수술대 위에 오를 것이 유력하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지난 11일 "과연 더 이상 (LH라는) 기관이 필요한가에 대한 국민적 질타에 답해야 할 것이다. 해체 수준으로 LH를 바꾸겠다"고 말했다.
다만 상당수 전문가는 섣부른 해체론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일반 기업도 실태조사만 6개월이 걸리는데, 매출만 30조원대에 이르는 세계에서 가장 큰 주택기업을 당장 해체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일"이라며 "조직·기능에 대한 조정보다는 국민 입장에서 무엇이 이득일지 제로 베이스부터 고민하고 여론을 수렴하는 ‘프로세스(과정)’ 마련이 선행돼야 한다"고 했다. 다만 "궁극적으로는 경쟁 구조가 필요할 것"이라고도 했다.
이은형 책임연구원도 "본질은 정보의 사적 유용이고 이해관계충돌이지 LH 조직 자체가 아니다"라면서 "개인에 대한 감시·감독이나 처벌이 필요한 문제지 조직에 손을 대서 해결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섣부른 지자체 이관은 부패나 유착에 더 노출될 수 있고, 민간에 넘기면 사적 이익에 더 충실할 수 있다"면서 "기능상 분리도 결국 독점체제로 귀결되면 별 의미가 없으니, 비슷한 권한을 가진 복수의 기구가 경쟁하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공공에 대한 신뢰가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고 얘기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문재인 정부는 그동안 다주택자·비(非)실거주자 등을 ‘부동산 적폐’로 겨냥했는데, 이번 사태를 계기로 문재인 정부의 주축이던 공공 분야가 적폐였다는 것이 드러난 셈"이라며 "부동산 규제 정책의 신뢰가 무너졌다"고 말했다. 송승현 대표는 "이번 LH 사태로 공공 임대나 공공 재건축 등 공공 개입에 대해서도 여론의 불신을 받아 정부 사업 전반에 차질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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