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집·호텔 모아 11만가구.. 서울 아파트는 2000가구뿐
정부가 전세난 해결을 위해 19일 ‘서민·중산층 주거 안정 지원 방안’을 내놓고 “2022년까지 서울 3만5300가구를 포함해 전국에 11만4100가구의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하겠다”고 발표했다. 문재인 정부의 24번째 부동산 대책이다. 3개월 이상 비어 있는 임대주택을 소득 기준에 상관없이 무주택자에게 공급하고, 건설사가 새로 짓는 다세대주택·오피스텔 등을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사들여 임대하는 방식이 골자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미리 언급했다가 “황당무계하다”는 비판이 쏟아진 호텔방 등을 개조해 1~2인 가구에 공급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정부는 “단기에 집중적으로 주택을 공급할 수 있게 역량을 모았다”고 했지만, 시장의 반응은 싸늘하다. 대다수 부동산 전문가는 “전세난을 일으킨 임대차법의 부작용을 외면하고 엉뚱한 처방만 내놨다”며 “전세난 지역에 필요한 집은 거의 공급하지 못하고 의미 없는 숫자만 긁어모아 뻥튀기한 대책”이라고 비판했다. 정수연 제주대 교수는 “살고 싶은 아파트 전셋집이 없는데, 정부는 빈 임대주택 가서 살라고 한다”며 “과녁을 피해 화살을 쏘고는 적중하길 바라는 꼴”이라고 말했다.
◇”전세난 일으킨 임대차법 놔두고 숫자만 뻥튀기”
최근 유례 없는 전세난은 서울 아파트 시장에서 시작해 전국으로 번졌다. 7월 말 계약갱신청구권 도입으로 아파트 전세 매물이 급감했고, 가격이 치솟은 게 전세난의 핵심이었다. 부동산 정보업체 ‘아실’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전세 매물은 임대차법이 개정된 7월 31일 3만8427건에서 19일 기준 1만3005건으로 66%(2만5422건) 줄었다. 그러나 정부는 “전세난이 송구스럽지만, 임대차법 때문은 아니다”라는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이날 정부의 전세 대책은 ‘수요자들이 원하는 전세 아파트 공급’이라는 알맹이가 빠졌다. 정부가 공개한 11만4100가구 공급 방안 중 민간 아파트 물량은 없다. 임대주택 공실 물량 3만9000가구 중 아파트가 일부 있지만, 주거 취약 계층에게 공급하던 영구임대(전용면적 40㎡ 이하), 국민임대(전용 60㎡ 이하) 아파트로는 수요자들의 외면을 받을 게 뻔한 상황이다. 그런 임대아파트마저 서울에 공급되는 물량은 2000가구 정도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빈 임대주택은 입지나 주택 상태에 문제가 있다는 뜻인데, 그런 집에 들어갈 사람이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민간 건설사가 새로 짓는 주택 일부를 LH가 미리 임대용 주택으로 사들이는 ‘매입 약정’ 방식으로 2022년까지 총 4만4000가구를 공급한다고 밝혔다. 또 ‘공공전세’라는 제도를 신설해 주변 시세의 90% 이하 보증금으로 최대 6년간 살 수 있는 임대주택 1만8000가구를 공급하기로 했다. 매입 약정과 공공전세 방식으로 공급되는 6만2000가구 중 아파트 물량은 ‘제로’가 될 것으로 보인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공급 대책에 아파트가 없다는 지적에 “아파트 건설을 위해서는 5년 전에 인허가가 끝났어야 하고, 건설 기간만 평균 30개월이 걸려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민간 건설사 ‘시큰둥’, LH 부채만 늘어날 수도
정부는 신규 임대주택 공급에 민간 참여를 촉진하기 위해 건설 자금 저리 지원 등의 ‘인센티브’를 제시했지만, 시중 금리가 이미 바닥인 상황에서 큰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는 “공실 주택을 활용하는 방안 외에는 대부분 민간 건설사나 토지주(主)가 참여해야 하는 구조여서 실효성이 떨어진다”며 “아무 의미 없이 숫자만 늘린 것을 공급 대책이라고 내놨다”고 말했다. 임대주택 공급을 위해 민간 주택을 대거 사들여야 하는 LH의 재정 건전성 악화도 우려된다. 이미 LH 부채 규모는 132조원이 넘는다.
최근 논란을 일으킨 ‘호텔방 전셋집’도 대책에 포함됐다. 정부는 사무실, 상가, 숙박시설 등을 고쳐 임대주택 1만3000가구를 공급하기로 했다. 김현미 장관은 “호텔이 저렴한 임대료의 질 좋은 1인 가구 주택으로 변신하는 모습을 머지않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 반응은 냉소적이다. ‘호텔 사는 거지’라는 뜻의 ‘호거’라는 신조어가 등장했고, 앞으로 각 가정의 텐트를 임대주택으로 활용하게 될 것이라는 글이 소셜미디어에서 화제가 됐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지금은 코로나 사태로 호텔이 남아도는 것 같지만, 몰려드는 중국 관광객을 잡아야 한다며 정부가 호텔 건설을 장려했던 것이 불과 몇 년 전”이라며 “전세난 해결을 위해 얼마나 진지한 고민 끝에 나온 대책인지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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