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주장엔 싼 전세도 옛말.. "신축 전세까지 말랐다"
신축 대단지 아파트가 입주를 시작할 때는 전세 물량이 많고 상대적으로 싼 가격에 전셋집을 얻을 수 있다는 말도 서울에서는 이제 옛 말이 됐다. 정책 효과로 전세 물량 부족이 극심해진 결과다.
27일 건설·부동산업계에 따르면 9월부터 입주가 시작되는 개포 래미안 포레스트(2296가구·옛 개포시영)와 서초래미안 리더스원(1317가구·옛 서초 우성1차)의 전세 물량은 현재 전체 입주 물량의 40% 수준으로 파악된다. 통상 신축 아파트가 들어서면 전체 가구의 60~70%가 임차 물량으로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는데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개포동 인근 복수의 공인중개사에 따르면 개포래미안포레스트 입주 세대 중 40%(약 905세대)만이 전·월세 계약을 고려하는 상황이다. 이는 공동 중개매물로 올라온 것을 단순 합산한 것으로 단독 매물이 많을 경우 임차 물량은 늘어날 수 있다. 중복 매물이 많다면 임차물량은 이보다 작다. 보통은 중복 매물이 많다.
지난 25일 기준 이 아파트의 20평대 780가구 중 전세 물량은 약 50가구다. 호가는 10억~12억원까지 올랐다. 개포 W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6월까지만 해도 전용면적 59㎡가 8억5000만원에 계약됐지만, 지금은 최소 9억8000만원은 생각해야 한다"면서 "전세가격이 지나치게 낮아지면 그냥 실입주하겠다는 입주자도 많아 가격 하락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개포 M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40평대 이상 전세 물량은 골라갈 수 있는 상황이지만, 20~30평대는 이미 계약이 많이 됐다"면서 "20평대는 늦어도 11월 초·중순에 계약이 모두 끝날 것 같다"고 했다.
서초 래미안 리더스원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서초동 인근 공인중개업소 5곳의 상황을 종합했을 때 전용면적 59㎡짜리 136가구 중 전세 매물은 약 20가구 정도다. 호가는 11억~12억원 수준이다.
신축 아파트의 전세 물량이 귀해진 가장 큰 이유는 규제다. 우선 15억원 초과 아파트에 대한 주택담보비율(LTV)을 0%로 하는 12·16 대책의 여파가 크다. 현재 입주하는 아파트에 대한 잔금대출은 가능하지만, 추후 전세퇴거대출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12·16 대책에 따르면 대책 발표일 이전에 입주자 모집공고를 마친 신축 아파트의 경우 입주할 때 잔금대출은 허용된다. 하지만 만약 이번에 전세를 주고 2년 뒤에 집주인이 입주하려고 할 때에는 시세가 15억원을 초과하기 때문에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수 없다.
개포포레스트 수분양자 문모씨(39)씨는 "지금 잔금대출을 하지 않으면 내 집에 들어갈 기회를 영영 놓친다고 봐야 한다"면서 "은행 이자가 부담스럽지만 실입주하려고 한다. 일단 거주요건 2년을 채운 다음에 전세를 내줄 지 고민해야겠다"고 했다. 거주요건 2년은 양도시 9억원을 비과세 받기 위한 조건이다.
인근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도 "예전엔 이자 비용 아끼려고 새 집을 전세 주고 몇년 간 전세를 살다가 돈을 모아 입주하는 사람이 꽤 있었지만, 대출이 안 된다고 하니 이번에 입주하겠다는 집주인들이 많다"면서 "대출 규제 때문에 오히려 임차 물량이 줄었다"고 했다.
거주 요건을 채워야 양도할 때 세금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한 정책도 영향을 줬다. 현재 양도세 규정에 따르면 2년 실거주 요건을 채워야 차익의 9억원까지 비과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또 장기보유특별공제를 받으려면 10년 이상 보유하고 거주해야 80%까지 공제를 받을 수 있다. 만약 이번에 전세를 주고 4년 뒤에 실거주를 한다고 하면 10년 이상을 보유했다고 하더라도 장기보유특별공제율이 60%로 떨어진다.
전월세 상한제·계약갱신청구권 등 임대차 3법이 시행되고 재건축 아파트에 2년 이상 실거주하지 않으면 현금청산을 하게끔 정책을 바꾼 것도 전세금을 올리면서 전세 공급을 줄이는 요인이다. 개포동 J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임대차 3법으로 4년간 전세보증금을 올리지 못할 것을 예상한 임대인들이 전세보증금을 최고가로 받으려고 하고 있다"면서 "인기가 좋은 신축 아파트를 헐값에 전세 내어줄 수 없다는 인식이 팽배하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재건축 아파트의 입주권을 받으려면 2년 실거주 해야 한다는 정책이 나오면서 은마아파트발(發) 전세난이 신축 아파트에서 임차 물량을 상쇄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대치동의 J공인중개사 관계자는 "4400가구가 넘는 은마 아파트의 집주인들이 속속 실입주하겠다고 밝히고 있다"면서 "은마아파트가 이 동네 전세난의 시작이다. 대치·도곡·역삼·개포의 전세금에 연쇄적으로 영향을 주고 있다"고 했다. 은마아파트는 재건축 논의가 20년 넘게 진행되면서 거주환경이 노후화됐지만 대치동 학원가와 학군이 좋은 탓에 임차비율이 높은 단지다.
개포동의 한 공인중개사 관계자는 "전세 수요는 그대로인데 공급을 줄이게 하는 정책이 계속된다면 전세가격 상승을 막기는 어려워 보인다"면서 "송파구 헬리오시티 입주시기 처럼 좋은 아파트를 낮은 전세금으로 잡을 수 있는 상황은 당분간 보기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2018년 12월 입주한 헬리오시티는 9500세대가 넘는 대단지다. 한꺼번에 입주 물량이 나오면서 전용면적 49㎡는 2018년 8월 4억2000만원에 계약이 이뤄졌다. 2년 뒤인 지난 7월엔 8억2000만원으로 4억원 가량 올랐다.
고준석 동국대학교 법무대학원 겸임교수는 "신축아파트의 전세 가격이 일시적으로 낮아졌다가 2년 뒤 제자리를 찾는 것을 어떤 사람은 불안정하다고 평가하지만 당장 거주환경이 좋은 아파트를 저가에 잡을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면서 "임차인들은 그렇게 전세금을 모아 나중에 내 집 마련의 기회를 잡는 것인데, 이렇게 전세값이 오르면 그 기회마저 사라진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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