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인 물량 영끌 30대가 받아 안타깝다"는 김현미 말이 쓰린 지방 법인 투자자들

연지연 기자 2020. 8. 26. 17:0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부동산 법인 투자자의 패닉셀링(공황매도·panic selling)은 과연 주택 시장 안정화를 이끌어낼까.

지방 주택을 팔려는 법인 투자자가 늘어나는 가운데 살 사람은 많지 않아 이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아직 호가를 크게 낮추는 움직임은 없지만, 매수세가 예전같지 않기 때문이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앞으로 지방을 중심으로 법인 투자자들의 매도가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 "세금 부담 못견뎌" 지방 중심으로 법인 매도 물건 등장

26일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7월 법인의 아파트 처분 건수는 총 8278건으로 4월 이후로 석달 연속 증가세를 보였다. 6월(6193건)에 비해서는 33.7% 증가했다. 올해 들어 지난 5월까지 법인의 아파트 처분 건수는 5000건 미만이었다.

거래 현황을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매수에서 차지하는 법인 비중은 줄고, 매도에서 차지하는 법인 비중은 커졌다. 7월 전체 거래의 법인 매수 비율은 2.7%로 법인 투자자들의 활동이 왕성했던 2분기 평균(6.2%)보다 크게 낮았다. 7월 전체 거래의 법인 매도 비율은 8.1%로 2분기 평균(7.7%)보다 소폭 높았다.

전체 아파트 매도 거래에서 법인 투자자가 차지하는 매도 비중이 가장 큰 곳은 전남이었다. 전남은 전체 거래 중 법인의 매도 계약이 31.8%를 차지했다. 경남(12.3%), 충북(12.2%), 제주(11.6%) 등이 그 뒤를 따랐다. 서울의 법인 매도 비율은 1.9%로 전국 17개 시도 중 가장 낮았다. 법인 투자자들이 지방 부동산을 주로 팔고 있다는 의미다.

법인 투자자들이 매도에 나선 것은 이들에 대한 규제를 대폭 강화한 6·17 대책 여파다. 정부는 내년 6월부터 법인 투자자들의 종합부동산세 공제액(6억원)을 폐지하기로 했다. 또 종합부동산세 최고세율(6%)을 일괄 적용하기로 했다. 내년 1월부터는 주택을 양도하고 내는 세금인 양도세율에 20% 추가 세율이 적용된다.

법인 투자자들은 세금 부담이 크다는 입장이다. 공시가격 1억원짜리 주택 세 채를 매입한 법인 투자자의 상황을 예로 들어보면, 월세 수익만으로는 세 부담을 감당하기 어려워졌다. 공시가격 현실화율 68.1%를 감안했을 때 공시가격 1억원짜리 주택의 시가는 1억5000만원 수준이다. 이 주택 한 채에 대한 종합부동산세는 대략 연간 600만원. 보증금 5000만원에 월세 40만원을 받아도 월세(480만원)로 세금을 모두 해결할 수 없다.

법인 부동산 투자자들 다수를 컨설팅해줬던 부동산중개법인 Y사에 따르면, 법인이 현금흐름을 확보하지 못하면 흑자도산의 위험에 빠질 수 있다. 매수시점보다 집값이 올랐지만 이는 평가이익일 뿐이고 당기순손실만 거듭할 수 있다는 뜻이다. Y사 관계자는 "세금을 비용으로 인정받아 법인세 부담을 줄이고, 과세이연을 통해 양도세율을 줄이는 효과를 볼 수 있지만 법인이 생명력을 유지했을 때나 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 "법인 물건은 안 살래요" 예전 같지 않은 매수세

문제는 세금 부담으로 팔겠다고 마음을 먹어도 파는 것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법인 투자자들이 정리하려는 주택은 비규제지역인 지방인 경우가 많다. 또 지방 주택 매수 수요는 투자자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다주택자, 임대사업자, 법인 투자자들이 주택을 추가 구매할 경우 취득세와 보유세, 양도세가 모두 높아지면서 매수세가 예전만큼 따라주지 않고 있다.

임대차 3법이 통과된 것도 법인 투자자의 매도를 쉽지 않게 하는 요인이다. 투자자가 아니라면 거주를 원하는 실수요자가 매수에 나서야 하는데, 기존 세입자가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 법인 투자자 물건은 매수하지 않는 경향이 크다.

개정된 임대차 3법에 따르면 집주인이 실거주하려는 새 집주인과 매매 계약을 체결하고 등기를 완전히 넘기기 전에, 세입자로부터 계약갱신요구권을 청구받으면 이를 거절할 수 없다. 집주인은 바뀌었는데 세입자는 그대로 살 수 있다는 뜻이다. 만약 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아 잔금을 치룬 새 집주인이라면 매수한 집에 실제 거주도 못하고 은행으로부터 잔금대출을 회수 당하는 상황에 처해질 수도 있다.

또 법인 투자자들이 가진 주택에는 세입자의 전세보증금보다 선순위인 대출이 껴있는 경우가 많다.

경기도 수원 권선동의 한 공인중개사 관계자는 "법인 투자자 물건은 대출이 있는 경우가 많아서 전세금이 시세보다 낮은 경우가 많다"면서 "매수자 입장에선 당장 자금이 많이 들어간다는 의미"라고 했다. 그는 "게다가 세입자가 계약갱신청구권을 쓴다면 매수자가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할 수 있어서, 매수자들이 선호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방사광가속기 유치 호재로 법인투자자들이 집중적으로 매수했던 청주의 한 공인중개사 관계자는 "다른 지역 투자자들이 팀을 이뤄 청주 아파트 매물 나온 것을 10채, 20채씩 사갔던 게 불과 몇 개월 전이지만, 팀 안에서도 서로 지금 파네, 마네 의견이 갈리고 있다고 들었다"면서 "물건을 사겠다는 투자자도 없어 매도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했다.

◇"법인 파는 물량을 영끌 30대가 받는다는 말, 쓰리다"

이 때문에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의 "법인투자자의 물건을 받는 영끌(대출을 모두 끌어모은) 30대가 안타깝다"는 최근 발언은 지방 법인 투자자들에게 민감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팔라는 정책의 결과로 팔게 됐는데 사는 사람을 보고 안타깝다고 하면 도대체 어떻게 팔아야 하느냐는 것. 한 법인 투자자는 "법에 맞춰 하던 사업을 ‘적폐’로 몰더니 이제는 망해도 싸다는 인식인 것 같다"고 했다.

한편 부동산 전문가들은 내년 6월 1일 전까지 법인 투자자들의 절세 매물이 시장에 꾸준히 나올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올 연말까지는 양도세를 줄이기 위해, 내년 6월 이전까지는 종합부동산세 부담을 줄이기 위해 매도 물건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 호가가 크게 낮아진 분위기는 아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법인 투자자들의 매도 움직임이 커진 7월부터 8월 둘째주까지 수원 아파트의 주간매매지수는 꾸준히 상승했다. 전주 대비 평균 0.16%씩 올랐다. 수원 법인 투자자들의 관심이 컸던 수원아이파크시티 2단지 전용면적 84㎡의 호가는 6억~7억원 수준으로 직전 실거래가 6억3500만원(7월31일)과 비슷한 수준이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여전히 부동산 가격 하락요인보다 상승요인이 많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서 아직은 호가를 크게 낮추지 않고 매도 기회를 노리고 있는 상황으로 보인다"고 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여파로 저금리 기조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다는 점, 토지 보상금이 풀리면서 일부가 부동산 시장으로 다시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 등 주택 가격 상승 요인은 여전히 존재하는 상황이다.

실수요가 따라주지 않는 지방의 경우 약보합세가 불가피하다는 의견도 있다. 고준석 동국대 법무대학원 겸임교수는 "지방 중심으로 매도 물건이 쌓이면서 지방과 수도권간의 양극화가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박원갑 수석전문위원은 "법인 투자자들이 활발했던 지역 중에서 서울 노원구나 수원 등 배후 수요가 확실한 곳은 실수요자 중심으로 손바뀜이 활발히 일어나면서 가격이 유지될 수 있지만, 투자 수요만 많았던 지역의 경우 가격을 유지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 Copyright ⓒ 조선비즈 & Chosun.com -

Copyright © 조선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