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 인사이드] ‘실거주’ 집주인 vs ‘계약 갱신’ 임차인... 법원의 판단 기준은?

최정석 기자 2025. 5. 20.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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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챗GPT 달리3

주택 임대차에서 집주인은 ‘실거주’를 주장하고 세입자는 ‘계약 갱신’을 요구하다 법정 다툼을 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20일 전해졌다.

이런 일은 지난 2020년 개정된 주택임대차보호법에 ‘임대인은 임차인이 계약 갱신을 요구한 경우 정당한 사유 없이 거절하지 못한다’는 조항이 도입된 이후에 벌어지고 있다. 이 조항은 원칙적으로 세입자가 한 차례 계약 갱신을 요구할 수 있지만 집주인이 실거주를 하는 경우에는 계약 갱신을 거절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문제는 실거주 여부를 판단하는 구체적인 기준이 법에 규정돼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집주인과 세입자 간에 분쟁이 여러 형태로 일어나고 있다. 법원 판결도 엇갈리고 있다.

◇ 1심과 2심은 “실거주 인정” vs 대법원은 “인정 어렵다” 파기환송

대법원 전경. /뉴스1

집주인 A씨는 실거주를 이유로 세입자 B씨를 내보내려 했으나 B씨가 거부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처음에 A씨는 “이 집에 가족들이 모여 살 계획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B씨가 소송을 걸자 A씨는 “지방에 사는 부모님이 병원 진료를 위해 이 집에 살아야 한다”며 말을 바꿨다.

1·2심에서는 집주인 A씨가 승소했다. 재판부는 “실거주 주체가 바뀐다 해서 계약 갱신 거절이 부적법해지는 건 아니다”라고 판단했다. 다만 1·2심은 A씨의 실거주 주장이 신빙성을 갖는지에 대해서는 판단하지 않았다.

결국 대법원은 원심 판단을 뒤집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집주인이 실거주를 이유로 계약 갱신을 거부하려면, 실거주 의사가 거짓이 아님을 증명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A씨 가족은 집 두 채에 따로 살고 있었다. 한 집에 모여 살려면 이사 준비가 필수였다. 그럼에도 A씨 가족은 이사 준비를 하지 않고 있었다. “가족이 모여 살 계획”이라는 실거주 주장을 인정하기 어려운 정황이라고 볼 수 있다.

또 대법원은 A씨 부모님이 병원 진료를 위해 실거주를 해야 한다는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A씨는 이 집 주변 병원에서 부모님 외래진료확인서를 떼서 제출했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A씨 부모는 11년간 매년 1~5회 통원진료 정도만 받았다”라며 “실거주 사유로 인정하기 어려워 보인다”라고 했다.

◇ 법원 “집주인 바뀐 경우, 새 주인 실거주 한다면 갱신 거절 가능”

송파구 일대 아파트 전경(기사 내용은 사진과 무관함). /뉴스1

세입자가 계약 갱신을 요구한 이후 건물 매매가 이뤄져 집주인이 바뀌는 경우가 있다. 이때 법원은 새 주인이 실거주 목적으로 집을 산 게 인정된다면 계약 갱신을 거절할 수 있다고 봤다.

세입자 C씨는 임대차계약 만료 전 기존 집주인에 계약 갱신을 요구했다. 기존 집주인은 “새 주인 D씨가 실거주 목적으로 집을 샀기 때문에 계약 갱신이 불가능하다”며 내용증명을 보냈다. 그러자 세입자 C씨는 집에서 나가길 거부했고 소송이 벌어졌다.

대법원은 “새 집주인이 주택에 실제 거주하려는 경우에는 계약 갱신을 거절할 수 있다고 봐야 한다”며 새 주인 D씨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은 전 집주인이 D씨 실거주 사실을 내용증명에 담아 C씨에게 보낸 점, D씨가 원래 살던 집에서 새집으로 이사를 준비 중이었다는 점을 근거로 D씨 실거주 사유를 인정했다.

◇ 법원 “실거주 한다며 속인 집주인, 손해배상 책임 있어”

지난해 집주인 E씨는 자녀 고교 진학 문제로 실거주를 해야 한다며 세입자 F씨를 집에서 내보냈다. 하지만 E씨는 다른 세입자에게 집을 내줬고, 이를 F씨가 알게 되면서 소송이 벌어졌다.

의정부지법은 항소심에서 집주인 E씨가 전 세입자 F씨에게 4206만원을 지급해야 한다는 1심 판결을 유지했다. 재판부는 “피고(집주인)는 거짓 문자를 보내 원고(세입자)의 계약 갱신 의지를 단념시켰다”라고 판단했다. 또 “피고(집주인)는 자녀가 인근 고교에 지원했음을 인정할 자료도 제출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 판결은 양측 모두 상고하지 않으면서 확정됐다.

서울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집주인 H씨는 세입자 G씨에 “올해 입주를 해야 해서 계약 갱신이 어렵다”는 문자를 보냈다. 이에 G씨는 계약 갱신을 요구하지 않고 이사를 갔다. 그로부터 나흘 뒤 H씨는 다른 세입자를 구해 임대차계약을 맺었다.

재판부는 “G씨는 H씨 말을 믿고 계약 갱신을 요구하지 않고 이사를 갔으나, H씨 말은 거짓이었다”라며 “H씨는 G씨에 손해배상금 2250만원을 지급하라다”고 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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