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강력한 임대차 보호법도 실패.. 메르켈 총리가 인정"
“정부의 부동산 대책은 선의의 피해자를 상당수 낳을 수 있는 정책이라 걱정스럽습니다. 그런데 정부가 그걸 일리 있는 걱정이라 생각하지 않고 임대인들을 대변하는, 말하자면 서민을 위하지 않는 전문가들, 혹은 정부를 무조건적으로 비판하는 언론의 잘못된 시각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보고 있으니 굉장히 위험하다는 거죠.”
김진유 경기대 도시·교통공학과 교수는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평가하며 ‘걱정’ ‘위험’이라는 말을 여러 번 썼다. 한국주택학회 부회장인 김 교수는 주택임대차시장 안정화방안, 공공주택과 주거복지 등에 관한 논문과 ‘전세’라는 책을 쓴 도시계획 및 주택정책 전문가다. 그는 부동산 시장의 혼란이 계속되는 것에 대해 “정부가 선의를 가졌지만 시장을 너무 단순하게 보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전세 종말 월세 지옥’이라는 구호가 부동산 대책 반대 시위에 등장했다. 국민일보 설문에서는 집주인 10명 중 9명이 전세를 월세로 전환하겠다고 답했다. 임대차 3법으로 전세는 정말 없어지게 될까.
“전세는 100년 넘게 유지된 제도다.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임차인 입장에서는 월세보다 주거비가 훨씬 낮아 유리하고, 임대인 입장에서도 전세를 활용해 자가주택을 빨리 마련할 수 있는 측면이 있어 선호된다. 대도시일수록 전세 비중이 높고 소도시일수록 월세 비중이 높은데 대도시의 전세가가 워낙 높게 형성돼 있어 월세로 전환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월세 사는 세상이 나쁜 게 아니다”라는 여당의 월세옹호론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
“월세 사는 세상이 나쁘다고 할 수 없지만 세입자에게는 절대적으로 불리하다. 전세는 주거 안정성이 높다. 이번 팬데믹 상황에서 서양에서는 실직자가 늘어나자 정부가 임차인을 보호하기 위해 ‘월세를 3~6개월 동안 못 내도 퇴거시킬 수 없다’고 퇴거금지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우리는 실직하더라도 전세로 보장된 2년은 살 수 있고, 월세라도 보증금에서 뺄 수 있기 때문에 세입자들이 자연스럽게 보호를 받은 측면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사글세에서 시작해서 월세, 보증부월세, 전세, 그다음에 자가로 가는 ‘주거 사다리’도 전세 제도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모델이다.”
-임대차 3법의 모델인 독일의 상황은 어떤가.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임대차 보호법을 시행하고 있는 곳이 독일이다. 독일은 공공임대주택 비율이 3%밖에 안 되는 대신 민간과 공공을 가리지 않고 임대기간 무제한, 임대료 인상률 상한제 같은 강력한 정책을 썼다. 그런데 얼마 전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우리의 임대료 통제정책은 실패했다’고 인정할 정도로 임대료가 치솟았다.”
-원인이 무엇이었나.
“임대료 인상폭을 제한하니까 일단 임대용 소형 주택이 시장에서 사라졌다. 대신 분양용 주택, 그러니까 자기가 직접 사서 들어갈 사람들을 위한 큰 주택이 많이 늘었다. 두 번째로는 임대기간이 무제한이지만 임대인이 직접 거주하거나 임차인이 주택에 많은 손괴를 한 경우에 임차인을 내보낼 수 있다. 새 임차인을 받을 때는 시세에 맞춰 임대료가 한 번에 확 뛴다. 임차인이 7년 살다가 나가면 다음 임차인 때는 7년치가 한꺼번에 뛰는 거다. 우리도 그런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이번 정부 들어서 가장 큰 공급대책인 8·4 대책은 어떻게 평가하나.
“정부로서는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지금 13만2000호를 공급한다고 해서 장기적인 대안은 되지 못한다. 수요가 공급을 훨씬 넘기 때문이다. 서울의 수요를 추정해보면 가구분화와 소득증가로 인해 1년에 4만~5만호 이상의 수요가 발생한다. 13만호라고 해도 2년치가 조금 넘을 뿐이다. 또 아쉬운 점은 장기적인 도시계획으로 봤을 때 용산과 태릉처럼 아파트로 쓰지 말아야 될 땅까지 포함시켰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용산의 경우 저렴하게 아파트를 공급해도 입주 1년만 지나면 주변 시세를 따라가 굉장히 비싼 아파트가 될 거다. 10억원이 넘는 세곡동 보금자리주택의 전철을 밟을 게 뻔하다. 그렇다면 더 이상 서민이 들어갈 수가 없으며, 공급효과는 당첨된 몇 명에게만 국한된 것이 될 공산이 크다.”
-더불어민주당은 8·4 대책으로 내년 초 집값이 안정될 거라고 예측하는데.
“지금보다는 내려갈 거다. 지금 가격은 비정상이고, 이렇게 계속 올라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세제나 공급이 정상화되면 분명히 좀 조정을 받을 거다. 그러나 정부가 기대하는 만큼 안정시키기는 어려울 것 같다. 공급을 늘리려면 재고주택에서도 매물이 많이 나와야 하는데, 세금이라든가 여러 규제정책 때문에 매물이 상당히 줄었다.”
-정부 정책은 수요 억제를 통해서 집값을 내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방향이 처음부터 좀 잘못됐다. 정부는 계속 서울에 공급은 충분한데 투기 수요가 붙어서 집값이 올랐다고 한다. 서울 사람들 수요만 따지면 공급이 충분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서울의 수요는 전국구다. 수도권 사람에게 너는 외지인이라 서울 수요가 아니다, 라고 하면 너무 가혹하다. 거기에 지방에 있는 분들도 가세했다. 이들이 가세한 데는 정부의 책임이 크다.”
-균형발전이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말인가.
“그렇다. 정부가 균형발전을 한다고 세종시도 만들고 혁신도시도 만들었다. 공공일자리를 옮기면 여러 민간일자리도 함께 움직이고, 가족들도 일정 부분 따라갈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주거환경이나 교육환경, 문화환경이 서울을 따라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베이비부머가 귀향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마강래 중앙대 교수 같은 분이 있지 않나.
“어떻게 해야 베이비부머들이 고향으로 내려갈까. 서울과의 생활·문화 격차를 느끼지 않게 해줘야 한다. 강남과 강북의 집값이 다른 이유는 주택 내부의 문제가 아니라 주거환경의 문제다. 마찬가지로 서울에 대적할 만한 주거환경을 지방에도 만들어줘야 되는데 지역균형 발전이라면서 자꾸 공항 만들고, 도로 뚫고, 철도 놓고…. 그런 거 많아질수록 빨대효과가 촉진된다. 고속도로 생기면 서울 올라가서 즐기고, 공항이 생기면 대구에서 백화점 갈 사람들이 일본 백화점에 간다. 사회기반 인프라는 이미 상당히 구축돼 있다. 문화·교육·생활 인프라가 많이 깔려야 집도 팔리고, 사람도 굳이 서울에 올라오려 하지 않는다.”
-행정수도 이전은 어떤가. 균형발전이나 부동산 시장 안정의 효과가 있을까.
“국회나 청와대가 세종으로 내려가면 서울 집값이 안정될 거라고 보는 건 너무 순진한 생각이다. 호주가 수도를 캔버라로 옮겼지만 여전히 시드니 집값이 제일 높다. 지금 세종시 집값만 올려놨다.”
-대통령이 공공임대주택을 중산층까지 살 수 있는 ‘질 좋은 평생 주택’으로 확장하겠다고 했다. 주거복지를 위한 해법을 제안해본다면.
“북유럽의 보편적 주거복지 모델처럼 공공임대를 많이 늘려서 시세보다 일정 정도 저렴하게 공급하고, 누구든 들어와서 살게 하겠다고 하면 싫어할 사람 없다. 그런데 먼저 그게 단숨에 이뤄지지 않는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2025년까지 공공임대주택 240만호를 확보하겠다는 목표는 현실적이지 않다. 1년에 20만호씩 확보해야 하는데, LH가 1년에 공급할 수 있는 모든 물량을 합쳐도 8만호 정도다. 공공임대를 지속적으로 늘리고 점차적으로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 둘째로는 강남이나 중산층 이상이 사는 집값이 오르는 것을 문제 삼지 말고 집값이 오르는 대로 차곡차곡 보유세를 걷어서 그걸 공공임대 쪽으로 넘겨주는 정책을 펴야 한다.”
-교수님의 공동 저서 중에 ‘정직한 내 집 마련’이라는 책이 있다. 어디까지가 ‘정직한’ 내 집 마련인가.
“주택도시연구원에서 국민들이 정부 정책을 잘 믿고 따라오면 자기 집을 마련할 수 있다는 걸 알리기 위해 만든 책이었다. 지금도 국민들이 정직한 내 집 마련 방법을 세울 수 있도록 정부가 해줘야 된다. 싱가포르는 두 번의 불로소득을 통한 내 집 마련을 정직한 것으로 인정한다. 싱가포르 주택청에서 시세보다 저렴하게 분양하는 주택을 분양받아 5년을 살면 양도세 없이 팔 수 있고, 또 한 번 분양을 받을 수 있다. 그럼 이 사람은 두 번 공공분양을 받아 자산을 마련해 일반 주택을 살 수 있다. 우리도 전세 끼고 집을 사서 집값이 오르기를 바라는 게 자연스러웠는데, 이제는 그게 불로소득이고 정직하지 않다고 한다. 정부의 취지는 공감하지만 정상적인 시장의 힘을 빌려 자가주택을 마련하려는 사람이나 주택을 넓혀 갈아타기를 하려는 사람까지 피해를 보게 해서는 안 된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의 ‘천박한 서울’ 발언으로 논란이 있었는데, 도시공학적으로 또 도시계획상으로 서울은 어떤 도시인가.
“유럽이나 일본의 도시에 비하면 서울은 세계적인 도시치고는 외관상으로 뒤떨어지는 게 맞다. 그런데 그게 과거 우리가 가지고 있는 역량 내에서는 최선이지 않았을까. 도시계획을 충분히 감안할 여력이 없었고, 단기간에 급격한 성장을 하다 보니 외국의 큰 도시에 비해 부족한 도시가 됐다. 그런 점을 지적하려다 그런 표현이 나왔을 텐데, 천박한 게 아니라 부족한 도시라는 게 맞다. 계획과 조화가 부족한 도시. 그런데 이제는 역량이 있는데도 이번 태릉과 용산 계획처럼 그렇게 막 짓겠다면 더 부족한 도시가 되고, 도시계획적으로 정말 천박하게 될지도 모른다.”
만난 사람=권혜숙 인터뷰전문기자 hskw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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