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해서 세금내나" 1주택자 원성..정권 흔드는 '부메랑'으로

2020. 7. 23.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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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 '거위 깃털 증세' 중산층에 뭇매 맞으며 좌절
노무현 정부는 세금으로 부동산시장 맞서다 정권 넘겨줘
문정부도 재산세 30% 부담상한 맞은 중산층 저항 가속화
대통령 국정지지율 '흔들흔들'..조기 '레임덕' 이어질 수도

프랑스 루이 14세 시절 재무상 콜베르는 “예술적인 과세는 거위가 비명을 덜 지르게 하면서 최대한 많은 깃털을 뽑는 것과 같다”는 경구를 남겼다. 박근혜 정부의 경제수석 조원동은 박 정부 집권 첫해인 2013년 8월 세법 개정에 착수하면서 콜베르의 조언을 따랐다. 당시 박근혜의 주문은 ‘증세없는 복지’였다. 조원동은 연말정산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슬쩍 바꿨다. 민감한 세율은 손을 안 댔지만 사실상 세수를 늘려 복지 재원을 마련한 묘수였다. 그러나 가뜩이나 경기가 안 좋은 시기에 졸지에 ‘거위’가 된 중산층과 영세 자영업자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게 화근이었다. 그의 세법개정은 ‘성난 거위’들에게 몰매를 맞고 사흘만에 후퇴하고 말았다. 당시 야당인 민주당은 “털 뽑힌 거위들의 심정을 청와대는 아는가”라며 조 수석의 즉각 해임을 요구했다.

실패한 역사는 반복된다. 성난 거위들의 분노는 지금 박근혜 정권을 무너뜨린 문재인 정권을 향하고 있다. 고가·다주택자들은 정부가 취득세 양도세 보유세 등 부동산 관련 세금을 동시다발적으로, 그것도 역대급으로 올린 것에 대해 “집을 사지도, 팔지도, 보유하지도 말란 말이냐”며 목소리를 한껏 높이고 있다. 특히 징벌적 과세의 유탄을 맞은 1주택자나 실수요자들의 아우성도 점점 커지고 있다. 이들은 ‘세금’이 아닌 ‘벌금’을 내고 있다며 규탄 시위와 인터넷 실검 챌린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등 온·오프라인 공간을 넘나들며 ‘조세저항 국민운동’을 펼치고 있다.

중산층이 가세한 ‘조세저항 국민운동’은 정권에 치명타로 작용한다. 이미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도는 부정적 평가가 긍정적 평가를 밑에서 위로 뚫고 올라오는 데드크로스가 발생했다. 조세저항이 세를 얻으면 민심 이반과 레임덕 현상은 더 가속화한다. 납세자들이 ‘거위 깃털을 뽑는 게 아니라 거위의 목을 조르는 것 같다’는 위협을 느끼는 순간 돌아서서 정권의 목을 죄게 된다. 노무현 정부도 세금으로 부동산 시장과 맞섰다가 다음 대선에서 참패했다.

▶1주택 실거주 많은 서울 노원구, 재산세 30% 오른 가구 3년새 1000배 폭증

최근 3년 새 서울 매매 중위 아파트값이 50% 넘게 오르면서 9억2582만원( KB국민은행 지수)에 도달하자 재산세 오름폭 상한선인 30%을 더 내는 가구가 폭증하고 있다. 현행 법은 재산세가 급격하게 증가하는 것을 막기 위해 주택 공시가격 대비 60%인 공정시장가격비율을 적용해 과세표준을 산출하고, 공시가격 3억원 이하는 전년 대비 5%, 3억원 초과∼6억원 이하는 10%, 6억원 초과는 30%까지만 세금이 늘도록 하고 있다. 아파트 시세가 9억원을 넘으면 공시가격이 6억원을 넘는다고 봐야한다. 정부가 집값을 잡겠다며 재산세, 종합부동산세, 그리고 건강보험료의 부과기준이 되는 공시가격을 서울 공동주택의 경우 3년 연속 10% 이상 올리는 바람에 시세 대비 공시가격이 75∼80%로 높아진 아파트가 많아졌다.

‘2017~2020년 서울 재산세 세 부담 상한 30% 부과 현황’ 자료에 따르면 재산세가 30% 오른 가구는 2017년 4만541가구에서 올해 57만6294가구로 늘었다. 3년 만에 14배로 증가한 것이다. 올해 서울에서 주택분 재산세가 360만9000가구에 고지된 점을 감안하면 대략 5~6가구 중 1가구 정도가 크게 오른 세금고지서를 받아든 셈이다. 부과된 세금도 3년새 313억2450만원에서 8429억1858만원으로 27배 급증했다.

문제는 1주택 실거주자가 많은 곳도 재산세 폭탄을 맞고 있다는 점이다. 재산세 상한 30% 부담 가구 비율이 가장 많이 늘어난 곳은 노원구였다. 중계동 ‘롯데우성’ 전용 115.26㎡는 올해 처음으로 공시가격 6억원을 넘어서면서 재산세 상한을 맞았다. 이런 아파트가 2017년 2가구에서 올해 2198가구로 1099배나 늘었다. 강동구(31가구→1만9312가구), 광진구(28가구→1만6576가구), 동대문구(16가구→8110가구) 등도 큰 폭으로 증가했다. 정부가 부동산 관련 각종 세금을 대거 올리면서도 1주택자 등 실수요자 부담은 늘지 않는다고 항변해 왔지만 이들이 체감하는 세 부담은 가계를 압박하는 수준으로 커진 것이다.

▶정부 “1주택자 稅 부담 없다”하지만…시가 14% 오르면 보유세 64%↑

정부는 7·10대책에서 조정대상지역 2주택 이상(비규제 3주택 이상)에 한해 종합부동산세율을 현행 0.6~3.2%에서 1.2~6%로 최고 6%까지 올렸다. 양도소득세율(최대 72%)과 취득세율(8~12%)도 2주택 이상만 강화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년에 1주택자의 세 부담이 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우선 지난해 12·16대책에서 1주택 종부세율을 0.5~2.7%에서 0.6~3%로 올렸다. 인상 세율은 내년 6월 이후 적용할 예정이다. 과세표준을 정하는 공정시장가액비율도 내년엔 90→95%로 오른다. 종부세는 공시가격에서 기본 공제액(1주택자 9억원, 다주택자 6억원)을 뺀 뒤 여기에 공정시장가액비율을 곱해 과표를 정한다. 공시가격도 오른다. 국토교통부는 ‘2020년 부동산 가격공시 추진방안’에서 9억원 이상 고가주택부터 현재 시세 70% 수준인 공시가격을 점진적으로 시세 수준으로 현실화하겠다고 밝혔다. 공시가격이 오르면 종부세와 재산세 모두 올라 보유세 부담이 커진다.

정부가 스스로 모의계산한 결과에 따르면 올해 시가 15억8000만원 주택이 내년에 18억원으로 오르면(인상률 13.9%) 종부세 공제가 없다고 가정한 보유세(재산세+종합부동산세)는 올해 389만7600원에서 내년 641만8800원으로 64.7% 오른다. 고령자 우대 등 종부세 공제를 최대로 받아도 인상률이 34%로 나타났다. 또 신한은행(우병탁 부동산투자자문센터 팀장)에 따르면 올해 공시가격 10억7700만 원인 전용 84㎡ 아파트는 보유세가 227만5440원에서 451만2168원으로 2배 가까이로 오른다. 연령이나 보유기간 공제 혜택을 받지 않고, 내년 공시가격이 10% 올랐을 때를 가정한 수치다.

기획재정부 차관을 지낸 추경호 미래통합당 의원은 “재산세에 추가해 종부세 부담까지 가중된 1주택자의 부담을 덜어주려면 종부세 기본공제액을 12억원으로 상향조정하고, 매년 정부 마음대로 올리고 있는 공정시장가액 비율을 80%로 법제화해 정책의 예측가능성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창남 강남대 교수도 “과세의 타깃이 되는 고가 아파트 기준 9억원은 12년 전 정한 것으로 이제 서울 아파트 중간값에 불과하다”며 “최소한 토지가격 인상률이나 물가상승률을 반영해 기준을 새로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장기 거주 실수요자·은퇴한 고령 1주택자는 보유세 부담 확 낮춰야

7·10 부동산 대책 후폭풍으로 1주택 실수요자도 세금 부담이 무거워진다는 불만이 폭발하고 있지만 정부는 요지부동이다. 60세 이상 고령자 세액공제율을 현행 10~30%에서 20~40%로 올린 것으로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기재부에 따르면 서울에 공시가격 31억원 아파트를 10년간 보유한 65세 1주택자는 종부세가 올해 756만원에서 882만원으로 오른다. 변변한 소득이 없는 노인에게는 세금이 126만원 뛰는 것도 큰 부담이다. 세액공제 대상이 안 되는 1주택자의 세 부담은 훨씬 높다. 같은 가격의 아파트를 3년간 보유한 58세 1주택자는 내년 종부세가 2940만원으로 올해보다 1048만원 급증할 것으로 분석됐다. 집 한 채 외에 별 소득이 없는 은퇴자들 사이에선 보유세를 내기 위해 아르바이트 일자리를 찾아야 한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1주택 실수요자들의 원성이 커지자 야권에서도 이들의 목소리에 동조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지금 가격과 숫자에 대해 모두 중과해서 문제가 되고 있다”면서 “평생 1채 가지고 잘살아 보겠다는데 집값 올랐다고 마구 (세금을) 때리면 안 된다. ‘실거주 1가구 1주택’에 대해서는 오히려 세율을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추경호 의원도 “60세 이상 고령 1주택자는 세액공제율을 연령별로 50~90%까지 대폭 높이는 등 세부담을 확 낮춰야 한다”며 “은퇴로 인해 소득이 없거나 크게 줄어든 1주택 고령자는 가장 대표적인 실수요자”라고 강조했다. 문호진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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