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이전" 사흘만에, 세종집값 1억 급등

안준호 기자 2020. 7. 23. 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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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7억에 팔린 85㎡ 아파트, 올해 9억에 거래, 현재 호가 11억

여권(與圈)에서 '행정수도 이전론'이 나온 후 세종시 집값이 급등하고 있다. 22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 시스템에 따르면, 작년 10월 7억2000만원에 팔렸던 세종시 새롬동 T아파트 전용면적 85㎡(14층)는 지난 6월 9억1500만원에 거래돼 7개월여 만에 2억원 치솟았다. 지난 20일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가 세종시 '천도(遷都)론'을 꺼낸 후엔 이 아파트 호가(呼價)가 11억원까지 올랐다. 집주인들은 매물을 거둬들이고, 호가도 사흘 만에 대부분 1억~2억원 급등하고 있다.

세종시는 이미 2017년 '8·2 부동산 대책'으로 투기과열지구·투기지역으로 중복 지정된 뒤에도 집값과 전셋값이 전국에서 가장 가파르게 치솟고 있는 지역인데 천도 논란이 일면서 집값은 날개를 달고 있다. 지난주(13일 기준) 주간 아파트값 상승률(한국감정원 집계) 전국 1위 지역도 세종시로, 전주(前週) 대비 1.46% 올랐다. 그 전주에도 2.06% 오르는 등 5주 연속 상승률 1위였다.

세종시 전셋값도 폭등, 상승률 전국 1위 - 22일 오후 세종시의 한 부동산 공인중개업소에서 매물을 찾는 고객과 중개업소 관계자가 지도를 보며 대화하고 있다. 여당이 행정수도 이전 방침을 밝힌 후 세종시 일대 아파트 주인들은 매물을 거둬들이거나 호가를 올리고 있다. /연합뉴스

세종시뿐 아니라 정부가 택지 개발을 추진 중인 태릉골프장 주변 집값도 술렁이고 있다. 정부가 집값을 잡겠다며 여기저기를 들쑤셔 되레 집값을 올려놓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평소엔 문의 전화가 20통 정도였는데, 행정수도 이전 얘기가 나오면서는 50통 이상 걸려와요. 정부가 온갖 규제를 쏟아내 세금 부담이 늘어도, 국회나 청와대·정부 부처 등이 실제로 이전해 오면 집값이 더 뛸 거라고 생각하는 거죠."

22일 세종시 어진동 A공인중개업소 대표는 "아파트를 내놨던 집주인들도 행정수도 이전 얘기가 나오면서 매물을 급하게 거둬들이고 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대책 나올 때마다 집값 상승… 수도권 분산 효과 미미

정부가 부동산 대책을 내놓을 때마다 세종시 집값은 더 뛰었다. 지난 '6·17 대책'에서 대전 지역이 종전 비(非)규제지역에서 조정대상지역 및 투기과열지구로 묶이면서 기존 규제지역이었던 세종시와 비슷한 규제를 받게 되자, 대전으로 몰렸던 자금이 다시 세종시로 몰려 집값이 뛰었다. 지난달 29일 기준, 세종시 아파트 값은 전주 대비 1.48% 상승했다. 반면 대전은 0.05% 오르는 데 그쳤다. 여기에 '천도론'까지 나와 세종시 집값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

세종시의 B공인중개업소 대표는 "투자자들은 대전이나 세종이나 어차피 같은 규제지역이면 세종에 투자하는 게 낫다고 본다"며 "세종은 여전히 개발 호재가 많은 데다 행정수도 이전까지 이뤄지면 집값 상승세는 대전 등 다른 지역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시 집값이 치솟으면서, 시세보다 저렴하게 특별공급 분양을 받은 공무원들과 공기업 직원들만 시세 차익을 챙기게 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인터넷 포털사이트 등에는 "집값 잡는다더니 세종시 집값 불질러 공무원들 배만 불려준다" "공무원 분양이 아니라 공무원 집단 투기"라는 등의 글이 올라왔다.

아파트 값뿐 아니라 전셋값도 폭등하고 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7월 둘째 주(13일 기준) 전국 전셋값은 0.14% 올랐지만, 세종시 전셋값은 1.36%나 치솟았다. 상승 폭도 전주(1.31%)보다 확대됐다. 전국에서 전셋값 상승률이 1%를 넘은 곳은 세종시가 유일하다.

문제는 세종시가 서울이나 수도권 등의 인구 과밀 분산 효과를 거의 내지 못하고, 대전·청주·공주 등 주변 지역 수요를 흡수하는 데 그친다는 점이다. 이상우 인베이드투자자문 대표는 "국회나 청와대가 세종으로 간다고 서울 등 수도권 시민들이 세종으로 가겠느냐"며 "행정수도 이전은 수도권 분산 효과는 없이 세종시 집값만 더 올리고, 공주·청주 등 세종시 인근 지역의 공동화(空洞化)를 가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태릉골프장 주변 지역 집값도 들썩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일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 보존 방침을 밝히면서 주택 공급 확대 방안의 하나로 콕 집어 언급한 태릉골프장 주변 집값도 출렁이고 있다. 태릉골프장과 맞닿아 있는 경기도 구리시 갈매지구 아파트 호가도 뛰고 있다. 현지 중개업소에 따르면 갈매동 I아파트 전용면적 84㎡는 문 대통령 발언 다음 날인 21일 9억2000만원에 매물이 나왔다. 이 평형의 직전 실거래는 지난 13일 7억7000만원(22층)이었다. 일주일 새 1억5000만원이 오른 것이다. 인근 S아파트, Y아파트 등도 호가가 5000만~1억원 정도씩 뛰었다.

갈매동 S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태릉골프장 개발이 확정되면 집값이 더 뛸 것이란 기대감 속에 집주인들이 매물을 앞다퉈 거둬들이고 있다"고 했다. Y공인중개업소 대표는 "어제만 해도 일주일 전보다 3~4배 더 많은 문의 전화가 왔다"며 "당장 계약을 하겠다고 나서진 않지만 다들 매수 타이밍을 재고 있는 분위기"라고 했다.

태릉골프장 주변 주민들은 "주요 간선도로망이 엉켜 있어 지금도 출퇴근 시간이면 정체가 심각한데, 신도시가 들어서면 '교통지옥'이 될 것"이라며 "태릉골프장에 주택을 지으려면 교통편 확충 계획도 함께 내놓아야 한다"고 했다.

권대중 명지대 교수는 "정부가 도심 고밀(高密) 개발, 재건축·재개발 규제 완화, 그린벨트 해제 등 확실한 공급 대책은 내놓지 않고, 엉뚱한 대책만 거론해 그 주변 지역 집값만 올려놓고 있다"며 "당·정·청 간 조율되지 않은 설익은 대책은 불안 심리를 부추겨 '패닉 바잉(공황 구매)' 현상을 심화하고, 다시 집값 상승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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