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듯 다른 프랑스와 한국의 부동산시장

최정민 프랑스 통신원 2020. 1. 19.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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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낮은 이자율과 인구 증가로 집값 폭등
한국과 달리 부동산 보유세는 오히려 낮춰

(시사저널=최정민 프랑스 통신원)

'대단히 역동적인' '행복이 충만한' '눈부신'. 이 말들은 모두 2019년 프랑스의 부동산 경기를 두고 쏟아져 나온 수식어다. 프랑스는 한국 못지않게 수년째 부동산 과열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나라다. 지난해 11월 프랑스 경제지인 라 트리뷴이 '상승세가 꺾일 수 있다'는 조심스러운 분석기사를 내놓았지만, 이를 제외한 르 피가로·르몽드·레 제코 등 주요 종합지 및 경제지에선 일제히 이 초유의 부동산 호황세가 당분간 계속될 거라 예측했다.

프랑스의 부동산 경기는 대략 3년 전부터 본격적인 호조를 보였다. 그러다가 지난해 정점을 찍었다. 이는 두 개의 상징적인 수치로 증명됐다. 먼저 파리의 집값이다. ㎡당 가격이 1만 유로(약 1300만원)대를 돌파했다. 단순히 부동산 가치만 껑충 뛴 건 아니다. 지난해 9월 프랑스 공인중개사연합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7월까지 거래물량이 100만 건을 돌파하기도 했다. 12월까지 매매 건수는 107만5000건에 이르렀다. 전년 대비 11.4% 증가한 수치다. 지난 3년간의 호황으로 주춤할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계속 상승세를 이어간 것이다. 2018년 11월부터 연말을 뜨겁게 달군 '노란조끼' 시위와 파업 등 혼란도 주택시장의 상승세에 전혀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는 점에서 이는 흥미로운 결과로 평가되고 있다. 부동산 투자 전문가인 토마 르페브르는 "2020년에도 2019년의 호조를 계속 이어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프랑스는 한국 못지않게 수년째 부동산 과열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나라다. 전대미문의 호황 원인으로는 낮은 이자율과 인구 증가, 취업률 상승 등이 꼽힌다. ⓒ REUTERS

"2020년에도 프랑스 부동산 호조 이어갈 것"

전대미문의 호황 원인은 뭐니 뭐니 해도 낮은 이자율이다. 프랑스 최대 부동산 체인인 '센추리 21'의 로랑 비몽 대표는 "1%대의 대출이자율이 구매력을 확대시켰다"고 진단했다. 예를 들어 1%의 이자율로 20년 상환조건으로 매달 1000유로(130만원)를 갚을 경우, 21만2000유로(약 2억7700만원)의 주택을 매입할 수 있는 것이다. 이자율이 4.5%에 이르던 시절엔 매달 1000유로씩 갚아도 살 수 있는 주택이 고작 17만2000유로(약 2억2500만원)짜리 정도였다.

그러나 무엇보다 주택 구매자들의 진입 장벽을 낮춘 것은 초저금리로 줄어든 월 상환금액이었다. 프랑스의 은행에서 대출을 받으려면 매달 상환해야 하는 금액이 수입의 3분의 1을 초과할 수 없다. 다시 말해 월별 상환금의 3배 이상을 벌어야 돈을 빌릴 수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그동안 대출 자격을 갖추지 못했던 많은 구매자에게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좀 더 거시적으로 보면, 부동산 경기 상승을 견인하는 데는 취업률과 인구 증가라는 두 가지 요인도 크게 작용했다. 이러한 분석은 프랑스 주요 도시별로 나타난 주택 가격 상승률이 뒷받침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가장 높은 집값 상승률을 보인 프랑스 남부 도시인 리옹이다. 8%의 상승률을 보인 수도 파리를 앞지른 것이다. 물론 ㎡당 가격이 4596유로(약 600만원)로 파리의 절반 수준이지만, 2019년 프랑스 전체 평균 집값 상승률이 2.2%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어마어마한 상승률을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리옹의 상승폭에 대해 주택 가격과 지역경제의 상관관계를 분명히 보여준다고 지적한다. 먼저 리옹의 실업률은 7.5%로 프랑스 평균 실업률인 8.5%보다 낮다. 프랑스 전 지역 중 가장 낮은 실업률이다. 이는 바이오·디지털·화학 등 유망직종의 산업군이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또한 프랑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2011년에서 2016년까지 리옹은 인구가 약 5% 증가했다. 즉 낮은 실업률과 안정적인 인구 증가가 구매력과 수요를 뒷받침하며 부동산 경기를 끌어올렸다는 것이다. 조선업으로 유명한 도시 낭트도 마찬가지다. 9.5%로 리옹에 이어 높은 집값 상승률을 기록한 낭트 역시 신진 산업군을 기반으로 최근 몇 년간 안정적인 인구 증가를 보였으며, 현재 초유의 부동산 경기 부흥기를 맞고 있다.

과열되는 부동산시장에 대해 최근 프랑스의 최고 금융 감시기관인 '금융안정고등위원회'(HCSF)는 집값 폭등 조짐이 보이는 부동산시장에 대한 감시를 한층 강화하겠다는 방침을 천명했다. 이들은 은행권이 대출 심사에 좀 더 신중해 줄 것을 요구하는 등 단속에 나섰다. 그러나 다수의 전문가들은 이러한 컨트롤이 부동산 경기 둔화를 가져올 가능성은 지극히 낮을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의 '거주세 폐지'는 정치적 결정

최근 부동산시장 활성화와 함께 이야기되는 것은 현재 추진되고 있는 '거주세 폐지' 정책이다. 프랑스에서 부동산과 관련된 세금은 크게 '토지세'(Taxe Foncier)와 '거주세'(Taxe d'habitation)로 나뉜다. 토지세는 빌딩·주택 등 모든 영구건축물을 소유한 이들에게 매기는 세금이다. 거주세는 실제 주택에 거주하고 있는 집주인·세입자 등에게 부과하는 세금이다. 거주세는 집주인과 세입자 모두 1년에 한 번씩 내는데, 이렇게 매해 거둬들이는 금액만 약 22조원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2020년까지 프랑스 가정의 80%가 이를 면제받도록 하며, 2023년까진 전면 폐지할 계획임을 밝혔다. 집값을 잡기 위해 부동산 보유세(재산세·종합부동산세)를 높인 한국 정부와는 반대 방향을 택한 것이다. 마크롱 정부는 왜 이 같은 결정을 내렸을까.

거주세 폐지는 지난 대선 때 마크롱이 내세운 대표적인 공약 중 하나였다. 당시 마크롱은 침체에 빠진 프랑스 경기를 회복하기 위한 대책으로 거주세는 물론 법인세 등 세금의 대폭 감면을 약속했다. 당시 서민들을 위한 좌클릭 복지정책이란 평가와 함께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받았지만, 마크롱은 이것이 곧 중산층의 구매력을 높여 경제 전반에 활력을 줄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 집권 초부터 보인 마크롱의 이 같은 기조로 경제가 어느 정도 회복세를 찾았다는 평가도 있다. 그러나 이번 거주세 감세가 마냥 환영할 정책만은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감세 정책이 정부로선 전혀 손해 볼 것이 없는 정치적 결정이었다고 지적한다. 거주세는 지방세다. 따라서 없애더라도 정부로선 크게 손해 볼 것이 없었다는 것이다. 반면 지방정부는 거대한 수입원을 잃게 된다. 벌써부터 프랑스 지방정부는 중앙정부의 이번 결정에 난감함을 표하고 있다.

정부의 이번 결정이 결국 토지세를 상승시킬 것이란 우려도 있다. 정부 입장에선 '과감한 감세 정책'이라는 홍보 효과를 톡톡히 누렸지만, 낮은 금리와 거주세 감세로 인해 집값은 더욱 오를 것이란 지적이다. 따라서 주택 가격의 50%를 기준으로 책정되는 토지세는 자연히 전대미문의 상승 국면에 놓이게 된다. 토지세는 세입자가 아닌 집주인에게만 부과되는 만큼 집주인들의 부담은 오히려 커질 거란 예상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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