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8.25 대책이 보여주는 것

박민하 기자 2016. 8. 30.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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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5는 왜 실패했나


8월 25일 정부가 발표한 ‘가계부채 관리방안’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시장도 갸우뚱한 모양이다. 주택시장이 럭비공처럼 튈 조짐을 보이자 정부가 나섰다. 29일 김경환 국토부 제1차관은 간담회를 자청했다. 김 차관의 발언, 국토부의 입장을 중심으로 대책을 뜯어봤다.

● 가계부채 대책 X, 부동산 대책 O

‘8.25 가계부채 관리방안’은 이런 표현으로 시작한다. “가계부채 대책으로는 최초로 주택공급 관리 포함”. 이 순간 가계부채 대책은 부동산 대책으로 치환됐다. 공공택지 공급물량 조절, PF대출 심사 강화, 중도금대출 부분 보증(=은행의 사업장 심사 강화)는 모두 한 곳을 향한다. 2~3년 뒤 주택공급을 줄이겠다는 것이다. 실제 금융 부문에서 동원할 수 있었던 새로운, 또는 강해진 가계부채 대책은 사실상 없었다고 봐도 무리가 아니다.

● 투기 억제 X, 경착륙 방지 O

상당수 사람들은 부동산 대책이라고 하면 투기 억제책을 먼저 떠올린다. 공교롭게도 8.25 대책 전날 고분양가 논란을 빚었던 강남 개포 주공3단지 일반 물량 청약은 100대1이 넘는 경쟁률을 기록했다. 중도금대출을 못 받는데도. 정부 대책에 투기 억제책이 포함될 것이라는 선입견은 그렇게 강화됐다. 전매제한, DTI·LTV 강화, 집단대출에 대한 DTI 적용, 이런 것들을 떠올렸던 거다. 완벽한 착각이었다. 정부의 걱정은 따로 있었다. 부동산 경기가 꺼지는 게 더 무서웠던 거다. 국토부는 참고자료를 통해 이번 대책을 “급격한 주택시장 하방 리스크를 사전에 예방하기 위한 정책”이라고 규정했다.

● 엄살 X, 진짜 위험 O

주택시장 하방 리스크가 커졌다는 건 집값을 떠받치려는 속내를 감춘 엄살인가? 그건 아니다. 김경환 차관은 “지난해 주택 인허가와 분양이 급격하게 증가했다. 올해도 지속된다면 2~3년 후에 공급과잉이 가시화될 것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올 들어 7월까지 누계로 볼 때 인허가물량(41만 6,696호)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8% 늘었다. 특히 미분양 우려가 큰 지방은 24%나 늘었다. 분양은 7월까지 3.9%밖에 줄지 않았다. 김 차관은 “전망했던 것보다(국토부는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올해 분양 물량이 25~30% 줄어들 것으로 봤다) 인허가와 분양이 계속해서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는 것이 중요한 포인트”라고 했다. 오판을 순순히 인정할 만큼 상황이 녹록치 않다는 뜻이다.

이런 시각에는 상당수 전문가들이 동의한다. 현대경제연구원도 대책 발표 하루 전 이런 요지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현재 부동산 경기는 정점을 지나 후퇴기에 진입해 있다. 수도권은 여전히 부동산 호황기가 지속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되지만 지방의 경우 이미 수축기에 진입했다. (전체적인) 부동산 경기는 수축국면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최근 이례적으로 늘어난 부동산 시장의 공급과 비교하여 가계의 부동산 수요가 미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 강남 과열? X, 아직 아냐! O

언제부터인가 강남 아파트값이 부동산 시장의 과열여부를 가늠하는 선행지표가 돼 버렸다. 김 차관은 강남 집값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올 들어 7월까지 강남지역 아파트값 상승률은 2.41%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는 6.4% 올랐고, 연간으로는 9.7% 올랐다. 일부 강남 재건축 과열현상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전체적으로 강남 아파트값 상승률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훨씬 낮은 수준이다” 지난해 상승률의 절반도 안 되는데 과열이라고 규정하기 어렵다는 뜻이겠다.

이어 “올해 말까지 예정된 강남·서초지역 재건축 일반 분양물량이 280세대, 송파가 380세대다. 이것이 강남 3구 주택가격에 얼마나 큰 파급효과를 줄 수 있을지는 예단하기 힘들고, 여기에 대해서는 앞으로 진행되는 상황을 모니터해 가면서 필요하다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과열에 대한 대응책을 검토할 수도 있다”라고 덧붙였다.

시장의 관심, 또는 시장의 관심을 빙자한 언론의 관심이 모델하우스에 입장하려 길게 늘어선 사람들과, 재건축 아파트 경쟁률에 맞춰져 있지만 그런 국지적인 현상이 전반적인 주택가격의 상승으로 수치화되지 않는 이상 쉽게 나서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겠다. 한 줌 정도에 불과한 강남 재건축 과열이 강남, 나아가 전체 주택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아직 크지 않다는 게 국토부의 인식이다.

● 공급 줄어 가격 오를까봐? X 집값 안 떨어뜨리겠구나! O

취재를 위해 만난 개포 지역 공인중개사는 “대책 발표 직후 개포 재건축 아파트 집 주인들의 매물 회수도 실제로 있었고, 호가를 높인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미분양을 안고 있던 수도권 공공택지지구의 아파트 단지 시행사 관계자도 “8월 들어 계약이 거의 없었는데 지난주 금요일 이후 하루에 6~8건씩 했다”고 말했다.

실제 공급이 줄면 가격이 오를테니 집을 샀다고? 일부의 이런 움직임은 중개업소와 건설회사들이 과장했거나 조장한 측면이 없지 않다. 실제 일부 중개업소들은 8.25 대책 발표 직후 “공급 줄면 가격 오릅니다. 빨리 결정하세요”라는 식으로 집을 살 지, 말 지 저울질하던 사람들의 불안 심리를 자극했다.

이번 대책이 시장에 공급 감소로 나타나는 것은 최소 2~3년쯤 뒤의 얘기다. 더구나 강남을 비롯해 서울권은 공공택지가 거의 없는, 그래서 이번 대책의 직접적인 영향에서 비껴서 있다. 그런데 왜?

최경환 전 부총리 이후 공식화된 이 정부의 의지를 다시 한 번 확인한 게 더 큰 이유일 것이다. ‘부동산 경기는 절대 안 꺼트리겠구나, 가계부채 문제가 심각하다고 아무리 떠들어도 집값 받치기가 우선이구나’ 이런 믿음의 재확인 말이다.

그게 전반적으로 부진한 경기 상황에서 믿을 건 부동산 뿐이어서건, 이 정권의 속성이건 관점의 문제일 뿐 부차적이다. 전매제한, LTV·DTI 등 대출규제 강화는 당분간 없다는 강력한 신호. 초저금리 아래 시장은 무언가 불확실할 때 이리 재고 저리 재는 것이지, 확실만 하다면 언제든 돈 되는 곳으로 몰려갈 준비가 돼 있는 법이다. 

● 어디서 꼬였나?

8.25 대책은 극히 일부(강남 재건축 등)만 뜨겁고, 나머지 대부분은 차갑게 식어가는 시장에 대한 맞춤형 고육책일 수도 있다. 국토부의 기대대로, 청약시장으로 몰리고 재건축 아파트값이 더 뛰는 시장의 반응은 일시적인 신경과민으로 끝날지 모른다. 하지만 8.25 대책의 실패는 시장과의 소통과 메시지 관리에 있다.

우선 주택공급 예측 실패를 자인하면서까지 주택공급 축소를 크게 떠들어야 했는지 의문이다. 사인만 떨어지면 언제든 튀어나갈 수 있는 막대한 부동자금을 앞에 두고 주택공급을 줄이겠다는 대범한(?) 발표를 하려면, 일부 지역일지라도 투기 억제에 대한 과장된 제스처라도 보여야 했다. 시장은 강남 등 뜨거운 곳을 쳐다보는데 정부는 차가운 지방을 바라보니, 아예 시선이 맞을 리 없었다. 정부가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시장이 움직인 건 당연한 일이었다. 

* 사족 - 개인적으로 흥미로운건 ‘화살 돌리기’다. 11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가계부채 증가세를 억제하려고 정부가 여러 조치를 내놨지만 가시적 성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가계부채 폭발적인 증가의 근본 원인이 초저금리에 있는데 기준금리를 줄기차게 내려 온 한국은행이 강 건너 불구경하듯 이런 얘기를 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노골적으로 화살의 방향을 정부(금융위원회)로 틀어 버리자 12일 금융위원회는 “여신심사 가이드라인의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반박 아닌 반박을 한다. 그리고 한국은행의 ‘2분기 가계신용’이 발표되는 25일, ‘가계부채 관리방안’이 함께 나올 것이 예고된다.

그리고 금융위와 국토부가 배턴을 이어받는다. 두 기관의 옥신각신이 흘러나온다. 전매제한을 받니, 안 받느니 하는 식으로. 25일 발표된 ‘관리방안’은 사실상 ‘부동산 대책’이 됐고, 지금 화살은 국토부를 향하고 있다. 관계기관들이 돌아가면서 화살을 맞는 동안 문제는 희석되고 있다. 효과가 의심스러운 초저금리는 정말 피할 수 없는 선택인지, 가계부채는 이 상태로 면밀히(?) 모니터링만 해도 되는 것인지. 책임의 주체도 모호해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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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하 기자mhpark@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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