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월세 전쟁, 국토부에 맡겨선 안되는 이유

김준형 경제부장 2013. 9. 6.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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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으로 본 세상]

[머니투데이 김준형경제부장][[돈으로 본 세상]]

중앙정부 공무원 A국장은 지난달말 '기적적으로' 전셋집을 구했다. 세종시 출퇴근이 편한 지금의 동네를 떠날 수 없었던 그는 집을 비워달라는 주인의 말에 몇날 며칠을 헤맨 끝에 겨우 부동산 중개업소에 막 나온 매물을 발견했다.

혹시나 주인이 맘 변할까봐 조건 따질 것 없이 일단 계약금을 송금했다. 아니나 다를까 집주인은 중개업소를 통해 다음날 곧바로 "금액을 더 올려서 일부를 월세로 돌리자"는 전화를 걸어왔다. 중개업자가 위약금을 물어줘야 한다고 중재에 나서자 주인은 "그럼 다음번 계약 때 올려달라"라며 못내 아쉬운 듯 계약을 체결했다.

'8.28 전월세 대책'이 예고돼 있던 시점이지만 전세값이 안정될 것이라는 생각은 집주인에게는 남의 나라 이야기였다. A국장 역시 '조금이라도 더 오르기 전에 계약한게 로또 당첨된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이사철 되기 전에 전월세 잡으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명에 따라 발표된 8.28대책이지만, 대한민국 정책을 이끌어가는 최고 엘리트 공무원조차 그 효과를 믿지 않는 것이다.

왜 일까. 8.28 전월세 대책은 '전월세 대책'이 아니라 '매매활성화 대책', 다시 말하면 주택가격 부양책이기 때문이다. 집값이 오를 것이라는 기대가 살아나면 전세를 얻으려는 사람들이 집을 사려고 방향을 틀 것이니 전세수요는 줄고 매매는 늘 것이라는 계산이다.

전세 세입자들이 집을 구입할 밑천을 대 주기 위해 1%대의 초저금리 '수익·손익 공유형 모기지'가 비장의 카드로 등장했다. '천정부지 전셋값'의 압박과 '초저금리 대출'의 유혹이 공유형 모기지의 흥행을 일단 성공시킨 듯 하다.

하지만 수익공유건 손익공유건, 집값 상승분을 나중에 정부와 나눠야 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초저금리'라기보다는 이자부담을 이연시켜 준 것이나 마찬가지다. 손익공유의 경우는 20년 뒤 집을 팔아서 정부와 이익을 나누거나, 집을 팔기 싫으면 어디선가 돈을 또 빌려서 정부에 줘야 한다. 집값 상승 하락률을 두고 '다운계약서'가 다시 활개치고, 정부와 민간이 다툼을 벌여야 하는 '아수라장'이 될 수도 있다.

반대로 집값이 오히려 떨어진다면 정부 말 듣고 빚내서 집 샀더니 자산가치가 떨어졌다는 원성이 하늘을 찌를 것이다.

여하튼 집값이 올라야 부작용이 상대적으로 덜 할 것이니 정부로서는 어떻게든 집값을 '펌프질'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우리의 '전월세 대책'이 이처럼 '집값 부양'에 맞춰야 할 상황일까?

1인당 국민소득이 4만7000달러에 달하는 미국의 7월말 현재 주택 중간 가격은 21만4200달러, 우리 돈으로 2억원이 조금 넘는 수준이다. 지난 6월 말 기준, 우리 국민의 절반이 모여 사는 수도권의 30평대(99∼132㎡) 아파트 전세값(매매값이 아니다)은 2억1650만원이다(자료:부동산 114).

'미국의 8학군'이라고 불리는 뉴저지주 버겐 카운티의 '방3개, 화장실2개' 단독 주택도 50만달러 정도면 살 수 있다. 반면 여전히 국민소득 2만달러 수준인 한국의 '8학군' 지역 전용면적 84㎡(공급면적 33평) 아파트 가격은 8억~10억원에 달한다.

미국에선 1인당 연간 소득을 한푼도 안쓰고 5년 모으면 집을 사지만, 한국은 5년간 다 모아봤자, 전셋값 마련하기도 힘들다. 평생 '집의 노예'가 되다 보니 다른 데 쓸 돈이 있을 턱이 없고 사회의 '유효 수요'가 형성될 수가 없다.

이런데도 집값이 더 올라야 전월세난과 주택문제가 해결된다는 전제 아래 정책을 만들어야 할까.

'전월세 상한제'같은 방법이 시장논리에 어긋난다고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가격을 올리는 일방적인 공급자 우위의 전월세 시장 역시 '시장논리'가 작동하는 곳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당장 전월세 대책으로 집값이 꿈틀거린다고 하니 그나마 매물로 나왔던 집들도 호가를 올리고 시장에서 거둬들이고 있다고 하지 않는가.

정부의 정책이 '성공'해 집값이 오르면 다시 전월세값은 거기 맞춰 상향 조정된다.

집값이 오르게 부추기고, 능력없는 사람들에게 돈 대줘서 빚으로 집사게 만드는게 시장논리가 아니다. 가격이 비싸서 사람들이 집을 살 엄두를 못 낸다면, 가격이 떨어져서 "이제는 떨어질만큼 떨어졌다"는 생각이 확산돼야 수요가 늘고, 전세수요가 매매수요로 돌아선다. 그게 시장논리다.

그런데 왜 정부의 대책은 '집값 부양'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전월세 대책을 만드는 주체가 국토교통부이기 때문이다. 과거 수십년간 집값은 '올라야 했고', 아파트 건축경기가 살아야 경제가 돌아가는 걸로 알아온 타성때문이다.

기획재정부 부동산 담당 부서는 국토부에서 가져온 '대책'에서 '거품'을 걷어내는 것이 주업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이번 전월세 대책에서도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같은 금융규제 완화 대책이나 미분양 아파트 해소방안이 걸러진게 그나마 다행이다.

주택정책의 본질은 종합 경제대책이다. 장기적 관점에서 경기 사이클, 국민소득과 소비, 복지수준, 나아가 사회통합에 이르기까지 고려해야 한다.

이사철 되기 전에 전월세를 잡으라고 한 대통령의 '지시'는 정치적 수사라고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집값이 더 오를테니 지금 사라"는 건, 대책이 아니라 '협박'이다.

1차 대전 당시 프랑스 총리 조르주 클레망소는 "전쟁은 군인을 믿고 맡기기엔 너무 중요한 문제"라고 했다. 지금 대한민국 국민들은 '집과의 전쟁'중이다. 국토부에 맡기기엔 너무 중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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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김준형경제부장 navi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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