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렁에 빠진 수수료 비즈니스]수수료 받아 떵떵거리더니 컨설팅·법률자문 호시절 '끝'

2013. 8. 30.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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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스펙에 고급 브랜드 양복 차림으로 수제가죽 서류가방을 들고 프리미엄 세단에서 내리는 신사. 변호사, 회계사 등 전문직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다. 세간의 이미지와 달리 그들이 말하는 실상은 진흙탕 싸움에 진배없다. 입찰공고가 뜨면 벌떼같이 달려드는 건 기본. 저가 수수료에 연장근무 수당은 꿈도 못 꾼다. 그럼에도 매년 1000여명씩 또 새로운 법조인, 회계사가 시장에 쏟아진다. 컨설팅 분야에선 국가 공인 경영지도사가 매년 200여명이 배출된다. 국가 공인이 아니어도 '컨설팅'이란 간판을 내건 자문업종 창업자 수는 증가일로다. '공급과잉' 탓에 생활고를 호소하다 범죄의 길로 들어서는 사례도 종종 언론 지면에 소개된다. 위기에 봉착한 수수료 비즈니스의 단면이다. 이들에게 퇴로는 없는 것일까.

생존 급하다 보니 영역 파괴는 기본 '저가 수주 OK' 회계법인 별명은 쿠팡

# 최근 대형 회계법인들 별명이 새롭게 붙여졌다. 나라장터(조달청 국가종합전자조달 시스템)에서 OO용역을 수행할 회계법인을 찾는다는 공고가 뜨면 예전에는 쳐다도 안 보던 대형 회계법인들마저 뛰어들기 시작했는데 문제는 워낙 저가 수주에 열을 올린다는 것. 덕분에 '쿠팡(수임료를 업계 평균 단가의 반값으로 부른다는 의미)' 'SNL(Saturday Night Live·저가로 대량 수주하는 바람에 토요일 밤에도 야근해야 하는 회계법인을 뜻함)'이란 불명예스러운 별명이 붙었다. 그런 별명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대형 회계법인의 저가 수주 행보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후문이다. 최근 H공기업에선 심리적 마지노선마저 무너졌다. 감사 회계법인을 바꾸려고 4대 회계법인 위주로 입찰을 진행했는데 한 회계법인이 업계 암묵적 수수료로 알려진 10억원 미만을 제시, 타 업체들의 비난 속에서도 결국 수주에 성공했다.

# 사모펀드 H사가 국내 업체 인수전에 나서기 위해 기업 실사 컨설팅을 하려고 입찰공고를 했다. 3주 프로젝트인 데다 피인수 기업 규모도 크지 않아 3~4년 전만 해도 외국계 컨설팅 회사들은 쳐다보지도 않을 딜이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최저 가격을 써낸 곳은 외국계 모 회사. 하지만 우선협상대상자는 해당 회사 사정을 잘 아는 국내 업체로 선정됐다. 업계 관계자는 "그 글로벌 컨설팅 회사는 최근 외국계 가구회사 국내 진출 전략 컨설팅 입찰에서도 최저가를 써냈지만 떨어졌다. 연말 성과에 따라 구조조정을 할 거란 말에 그 회사 컨설턴트들이 저가라도 수주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계속 실패하고 있어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고 전했다.

# 최근 지방 소재 법률사무소 소속 변호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경찰은 생활고를 비관한 자살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변호사와 생활고는 언뜻 잘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지만 이 때문에 범죄에 가담한 변호사 수 역시 증가세다. 모 변호사는 가석방을 미끼로 의뢰인으로부터 8000여만원을 받았지만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다 사기혐의로 불구속기소되기도. 그는 신용대출 등 2억5000만원의 채무에다 사무실 월세도 못 내는 처지였다. 대한변호사협회에 따르면 집행유예 이상의 형이 확정돼 변호사 등록이 취소된 변호사 수는 지난해 27명으로 전년 대비 2배 이상 늘었다. 어려운 경제 사정이 첫째 이유로 꼽힌다.

전문자격사들의 수난시대가 본격화되고 있다.

이들은 각종 프로젝트를 수주해 이행보수 혹은 성과보수를 받는 사업모델, 즉 수수료 비즈니스가 주력이다. 그런데 이 시장이 흔들리고 있다. 지난해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국세청 표본수 기준 변호사의 16.1%가 연 매출 2400만원 이하 신고자였다. 변리사 10.3%, 회계사 8.7%, 관세사 5.8%도 월 200만원 벌기가 쉽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원인은 복합적이라지만 대부분 전문가와 해당업 종사자들은 공급과잉을 1순위로 꼽는다.

변호사의 경우 2010년 1만명을 돌파했는데 5년 내 2만명 시대가 되는 건 시간문제다. 매년 사법고시를 통해 1000여명이 쏟아지는 데다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한 로스쿨 졸업생 1300여명까지 더해지면서 지난해에만 공급된 법조 인력은 2000명을 훌쩍 넘겼다. 전체 변호사 수가 최초로 1000명을 넘어섰던 1981년에 비하면 격세지감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변호사 1인당 사건 수임 건수는 현저히 줄어드는 추세다. 2003년 서울 지역 변호사 월평균 수임 건수는 3.2건이었지만 지난해 1.8건으로 급감했다. 거리가 먼 단어로 여겨졌던 '구직란' 역시 이제는 업계에서 공공연히 도는 말이 됐다. 국내 10위권 로펌의 경우 신입 3명 뽑는 데 300명이 넘는 변호사가 지원해 할 수 없이 인턴으로 10명을 선발한 후 1년 후 3명을 채용하는 방식으로 바꾸기도 했다.

변호사 출신, 7급 공무원에도 지원

공공기관, 일반 회사로 눈길을 돌려보지만 처우는 예전같지 않다. 올해 5월 부산광역시의 변호사 7급 공채 사건이 대표적이다. 부산시는 올해 초 7급 공무원직에 변호사 자격증 소지자를 대상자로 한 채용 공고를 냈다. 로스쿨생들은 "말도 안 되는 처사다" "철저히 외면하자" 등 자기들끼리 들어가는 인터넷 게시판을 뜨겁게 달궜다. 이들의 공분을 샀다던 7급 공무원직은 그러나 여러 논란에도 불구, 로스쿨 출신이 입사하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통상 변호사 자격을 얻으면 5급 사무관으로 가는 게 관례였다. 하지만 지난해 국민권익위원회가 변호사를 6급 주무관으로 채용하면서 그 관례가 무너졌다. 더 나아가 부산광역시 채용으로 인해 6급 관례마저 사라졌다.

일반 기업도 마찬가지다. A대기업 관계자는 "예전에는 변호사 출신은 최소 과장 직급부터 시작하도록 배려했으나 지금은 신입사원에 응시하는 변호사 자격증 소유자도 있다"고 귀띔했다.

회계사 업계도 사정은 별반 차이가 없다.

올해 1월 기준 국내 회계사 수는 1만5767명(한국공인회계사회 자료)에 달한다. 2002년 5890명에 비하면 3배 가까이 불어났다. 매년 1000여명 가까이 선발하다 보니 숫자는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는데 문제는 영업이다.

주력 업무인 감사보고서 작성 관련 일은 경쟁이 워낙 치열하다 보니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보인 지 오래. IMF 외환위기 이후 기업 실사, 가치 평가 등 M&A 업무의 한 영역을 꿰차며 성장을 도모했던 대형 회계법인마저 최근엔 저가 수주 경쟁으로 보유 회계사 수를 줄이는 판이다.

"회계사가 200명 이상 입사하지만 이 중 파트너(경영진 주주)에 오르는 사람은 소수다. 파트너가 된다 해도 개별적으로 인당 연간 얼마 이상 일을 수임해오라는 게 있다. 기존에는 전임자가 자신이 영업하던 곳을 물려주는 전통도 있었는데 요즘엔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그러다 보니 경쟁을 못 견뎌하는 이들이 다른 일을 알아보거나 파트너로 살아남은 이들은 어떻게든 연명하기 위해 저가 수주전에 뛰어드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한 대형 회계법인 임원의 전언이다. 실제 한국공인회계사회 등록회원 중 5089명, 즉 30%가 넘는 이들이 휴업 중이다. 이런 상황이 알려지자 지원자 수도 점점 줄어드는 추세다. 공인회계사 1차시험 지원자 수는 2011년 1만2889명에 달했지만 지난해 1만1496명, 올해는 1만634명만이 지원했다.

한때 선망의 직업으로 분류됐던 컨설턴트도 비슷한 처지다.

김기령 타워스왓슨코리아 대표는 "IMF 외환위기 이후 선진 경영기법을 배워보자는 대기업들의 니즈(욕구)와 중소, 중견기업의 성장 등으로 컨설팅 업계는 그야말로 초호황기를 구가했다. 2000년대 초중반만 해도 해외파 컨설턴트들은 수억원대 연봉을 받으며 기업 현장에 투입, 전성기를 누렸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 전후 글로벌 전략 컨설팅 업체에 의존했던 대기업들이 하나둘 실적이 둔화하거나 몰락하면서 그들의 자문을 맡았던 컨설턴트를 보는 눈도 싸늘하게 바뀌었다. 예전엔 컨설팅 회사 출신이라는 말 한마디에 기업들이 임원으로 모셔갔지만, 지금은 컨설팅 회사 임원이라도 대기업 차장으로 이직하면 잘 갔다고 얘기할 정도가 됐다"고 말했다.

국가가 컨설팅 인력을 키우겠다며 만든 경영지도사의 현실은 더욱 심각하다. 국가 공인 자격증 제도로 출범한 후 1만4000여명이 배출됐지만 1년에 한 건도 업무를 수임 못 하는 이들이 1만명을 넘었다는 게 업계 시각이다. 그나마 정부가 발주하는 저가 용역에 참여하는 경우는 다행이란 얘기마저 돈다.

컨설팅 업체를 이용하는 기업 입장에서도 할 말이 많다.

"예전에야 해외파 출신들이 새로운 시각으로 전략을 제시하면 끄덕였지만 요즘엔 컨설턴트 출신들도 회사에 많이 들어왔고 임원들 역시 글로벌 감각이 있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컨설팅 의존도가 현저히 떨어졌다. 거래은행, 금융회사 등이 서비스 차원에서 기업컨설팅을 무료로 해주는 경우도 있는데 품질이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 기업을 가장 잘 아는 건 그 기업의 임직원인 만큼 내부에 이미 있는 답을 찾아내는 역할을 해주는 정도면 충분하다." (중견기업 임원 A씨) 한때 전문자격사 중 1인당 매출액 1위를 기록했던 변리사도 옛날을 그리워해야 할 판이다. 변리사는 2001년부터 매년 200명 가까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특허출원 숫자가 변리사 증가율을 따르지 못하다 보니 공급과잉 얘기가 나오고 있다.

M&A시장은 로펌·회계법인 간 격전

동종업계 전문자격사들끼리의 경쟁도 경쟁이지만, 눈길 끄는 건 생존이 급하다 보니 '영역 파괴' 현상도 빚어진다는 점이다. 특허 사건에서 변리사는 물론 변호사, 컨설팅 회사가 자문을 맡으러 들어가 경쟁구도를 형성하는 일은 이제 흔하디흔해졌다. 변리사들도 가만있지 않는다. "현행법은 변호사에 의한 소송대리만을 인정하고 있지만 법률전문가인 변호사와 기술전문가인 변리사가 전문성을 상호 보완해 소송당사자의 권리구제를 좀 더 효과적으로 지원할 수 있으므로 변호사와 변리사의 공동 소송대리를 인정해야 한다"며 법률 개정을 강력히 요구하고 나선 상황이다.

M&A 자문 시장은 더욱 치열하다. 회계사를 보유한 로펌과 변호사를 영입한 회계법인, 두 직업 종사자를 모두 영입한 컨설팅 업체들이 M&A 자문 시장에 동시다발적으로 명함을 내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예전에는 기업 실사는 회계법인, 법률 검토는 로펌, 전략은 컨설팅 업체가 나눠서 했는데 요즘엔 한곳에서 '원스톱'으로 처리해주겠다는 식으로 '영역 파괴' 식 영업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 로펌 관계자는 "자문료 총액은 줄어들더라도 개별적으로 자문을 맡겠다고 들어가는 것보다 수주할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라고 귀띔한다.

세무 분야도 마찬가지다. 세무사가 가장 잘 아는 분야 같지만 박근혜정부 들어 경제민주화, 지하경제 양성화 등의 구호가 강조되자 로펌들이 이 시장 진입을 위해 세무대, 국세청 출신들을 대거 뽑았다. 법무법인 세종이 지난해 국세청 조사국 출신인 하병만 전문위원, 국세청 조사반장 출신의 임종현 세무사를 영입한 게 대표적이다. 법무법인 광장은 김앤장에서 조세팀을 창설해 21년간 근무한 경력의 이종열 박사(공인회계사), 국제조세 분야 권위자인 심재진 변호사를 스카우트해왔다. 분루를 삼키던 김앤장은 최근 이지수 전 국세청 납세자보호관, 최정미 전 조세심판원 조사관 등을 영입하며 전열을 재정비했다.

이렇듯 현장에선 피눈물 나는 경쟁을 펼친다지만 우리 사회가 이들을 바라보는 시각은 그다지 동정적이지만은 않다.

'고소득에 비해 그간 너무 쉽게 영업을 했다' '지금까지 고자세로 고객들을 대했다면 앞으로는 보다 더 치열하게 경쟁해야 서비스 질이 올라갈 것이다' 등 고객 입장에서는 여전히 할 말이 많다는 분위기다.

대기업 B임원은 "비용을 지불하는 고객임에도 그동안 '전문영역이니 우리에게 맡겨달라'고만 하지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한다'는 걸 꼼꼼하고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나마 경쟁 체제가 심화되면서 최근에서야 조금씩 바뀌는 추세"라고 꼬집었다.

정부 역시 이들 직업군에 대해 따뜻한 시선을 주지 않는다. 세원 마련에 두 눈이 붉어져 있는 기획재정부와 세정당국은 전문자격사들을 여전히 탈세 원천 고소득 영업자로 보고 고강도 세무조사를 벌이는 실정이다.

한 변호사는 "세금 성실신고확인 대상자의 범위가 1년 수입금액 합계액 7억5000만원 이상인 전문직에서 올해부터 5억원으로 낮춰지자마자 세무조사를 받는 변호사가 급증했다. 나도 비용처리를 한다고 했지만 관련 서류 미비로 수억원대 과징금을 부과받아 폐업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업황이 안 좋다고 두 손 두 발 들 수만은 없을 터.

전문자격사들은 나름의 퇴로 확보에 여념이 없다. 대표적인 게 해외 진출이다. 국내 대형 로펌, 회계법인들의 중국, 동남아 진출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됐다. 국내 컨설팅 회사 중 리비아, 이란, 카자흐스탄, 미얀마 등 저개발 국가에 한국 기업 경영 노하우를 전수하는 식의 비즈니스 모델을 선택하는 곳도 생겨났다.

협회 차원의 지원책도 속속 나오고 있다. 대한변호사협회가 지난해부터 취업 사이트를 본격적으로 운영하기 시작했는가 하면 정부, 기업, 지자체에 변호사 진출을 장려할 수 있도록 법 개정도 추진 중이다.

위철환 대한변협 회장은 "준법감시인 요건 완화, 입법담당관 신설 등 변호사들의 업무 영역을 다변화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 강화에 힘쓰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공인회계사회도 협회 차원에서 중소형 회계법인 등에 적합한 비즈니스기법과 업무수행기법을 개발해주는가 하면 회계법인 사무직원들에 대해 회계, 세무 실무교육, 법률 서비스 지원 등을 통해 자체 경쟁력을 키워나가도록 돕고 있다.

[취재 : 박수호 기자 / 사진 : 류준희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722호(13.08.28~09.03 일자)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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